조난 당할 뻔한 뉴질랜드 산행
너무 짧게 끝난 오전 빙하 헬기 투어가 아쉬워 오후에는 여유 있는 산행을 즐기고 싶었다. 프란즈 요셉 타운 인근의 등산로를 구글 지도에서 처음 봤을 때 그게 유명한 '로버트 포인트 트랙'인 줄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로버트 포인트 트랙의 초입인 더글라스 워크(walk)였다. 코니가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내 위치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도록 핸드백에서 GPS 수신기를 꺼내준다.
차에서 내렸을 때 도로에서도 핸드폰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코니는 4시에 나를 데리러 오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등산로 양편으로 무성한 고사리를 보면서 여유롭게 걸었다. 하지만 1시간이 넘도록 등산객 하나 볼 수 없자 살짝 불안해졌다. 핸드폰은 당연히 계속 먹통이고.
평탄한 등산로가 끝나는가 싶더니 경고표지판이 나타난다. 하지만 건성으로 지나쳤다. 이런 표지판은 늘상 있지 하면서. 숙소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 후 내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알았다. 로버트 포인트 트랙은 매우 위험한 등산코스였다. 종종 조난과 사망사고도 발생하는 곳이라니.
등산로는 곳곳에 물이 흐르고 이끼가 끼어 아주 미끄럽다. 간간히 개울과 계곡도 지나야 한다. 이런 곳을 운동화에 평상복 차림으로 걸었으니 무사히 하산한 것 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곳곳에 통행 인원이 제한된 출렁다리가 있는데, 삭은 널빤지 바닥은 위태롭다. 건너며 아래를 내려 보니 더욱 아찔하다.
출렁다리를 건너자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하산하는 등산객 무리를 만나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나 묻자 두시간은 걸린다면서. 비 내리는 하늘과 내 차림을 번갈아 보더니 하산을 권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닌 포기다. 잠시 고민 후 발길을 돌렸다. 로버트 포인트에서 빙하 감상은 포기했다.
코니가 데리러 오기로 한 도로까지 다시 왔지만 코니는 안 보이고 시간은 이미 6시다. 핸드폰도 불통이고 차도 없다. 숙소까지 걷기는 너무 멀다. 마침 우리나라 사람 같아 보이는 중년 남녀가 차에 타고 있어 물으니 세종시에서 왔단다. 반가운 마음에 혹시 숙소가 있는 프란즈요셉에 데려다 줄 수 있냐고 묻자 일정이 있다며 거절한다. 겨우 차로 10분 거리인데. 인심 사납다.
결국 네덜란드에서 여행 온 가족에게 사정해 차를 얻어 타고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무사히 돌아온 나를 보더니 코니가 환하게 웃는다. 만나기로 했던 곳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나는 보이지 않고 연락도 안돼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로버트 포인트 트랙은 도전해 볼만하지만 준비를 단단히 해야된다. 그냥 들뜬 기분에 섣불리 나설 등산 코스가 절대 아니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