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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Sep 16. 2024

기다림

24.04.22. 늦은 저녁

 악기 연습을 하지 않은지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마지막으로 악기를 불었을 때가 2월 중순 팀 연습 때였으니, 한 달 하고도 6일쯤 된다. 악기 소리가 그립다.

 몸상태가 영 좋지 않아 밀양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대구에 있는 집은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와 있다. 그리고 일부러 악기를 불지 않은지 한 달이 넘어간다.

 일부러 악기를 불지 않은 이유는 지금 불게 되어도 꾸준히 다시 불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오후나 되어서 일어나 아침을 먹는 상태로는, 그것도 늘 골골거리며 피곤한 표정으로 겨우 깨 책을 뒤적이는 상태로는 악기를 쉬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냥 하루에 네 시간씩 하던 악기연습을 더는 못하겠다고 판단한 거나 다름없다.

 누군가 대회도 시험도 없는데 왜 매일 악기를 연습하냐고 물으면 나는 '그 소리가 좋아서'라고 답했다. 그 소리가 좋다고. 창피하지만 내가 부는 내 악기 소리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다.

 지난여름 몸이 좋지 않을 때 악기를 너무 불고 싶어서 집에서 혼자 눈물을 삼켰던 경험이 있다. 나와 함께 머물던 내 소리가 너무도 그리워서 괴로웠다. 그 뒤로 악기 연습을 일부러 2주간 하지 않았다. 악기 소리와 내 생활이 너무 가깝게 붙어 있어 위험하다고 느꼈다. 나는 대금을 전공했지만 연주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내가 원하는 악단 취직은 현실적으로 힘들어서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말도 들었을 때였다. 그랬더니 아주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얼마간 지내는 걸 보고 선생님께서는 '얼른 다시 들으러 가라'라고 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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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국악개론 책 사이에 끼워두었던 포스트잇 한 장이 있다. 나는 그 포스트잇에 '그래도 소리 안이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그 문장을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래도 그 소리 안'이라고 생각하고 위안을 얻는다. 그러면 나는 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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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그렇다. 나는 연습한 지 한참이나 되었고, 악기 소리가 듣고 싶어 버티지 못할 때면 졸업연주 영상을 켜두고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내가 소리 내는 연습 중이라고 생각했다. 연습하고 있지 않으나 나는 소리 내기 위한 과정에 있다. 그래서 나는 소리 내는 연습 중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곧 있으면 여름이고, 쉬어갈수록 나는 활발해진다. 요즘은 깨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말 수도 늘었다. 곧 다시 연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난다면 많이 기다렸다고, 이제 떨어지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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