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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꾼 Feb 03. 2022

동생의 통장 잔고, 그리고 빚쟁이

무기력의 근거



명절이 끝이 났다.

수요일에 8시간 30분 정도 정체를 겪고 컬투쇼의 인기 에피소드를 모조리 들으며 올라왔다.

여동생과 나, 남편은 동지였다. 서울 동지. 


작년부터 어른들은 친가와 시댁을 연휴기간 모두 오가기 버겁지 않냐는 말씀을 하셨다.

그 거리도 멀고 바쁘게 보내지 말고 쉬자는 의미로 설에는 우리 집 친정, 추석에는 부산 시댁 이렇게 가기로 했다. 


이번 설은 목포행. 서울 동지 셋은 오미크론이 많다는 전남권을 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아빠의 만류도 있었지만 언제까지 살 줄 알고 가족 얼굴을 보지 않으랴. 코로나에 매우 무심하게 대처하는 타입의 나는, 아빠에게 헤벌쭉 웃으며 "아니~ 갈 거야."라고 단속시켰다.


그러던 며칠 전 여동생과 통화를 했다.


"언니. 나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는데 내려가도 될까? 오늘 음성이 나오긴 했는데.. 잠복기면 어떡해."

이번 명절은 길었다. 약 6일의 밤을 동생은 회사 출근 없이 원룸 방에서 지내야 했다. 여간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같이 내려가지 말고 지난번처럼 서울 동지끼리 명절을 쇨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과 우리 가족은 얼굴을 보지 못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내려갈까 했지만 대설주의보가 꼼짝없이 말렸다. 결국 집에서 남편과 우리 가족이 친해질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을 그리워만 했다.




그렇게 명절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온전히 쉬던 수요일. 

남편은 세차를 마치고 돌아와 내게 물었다.


"신용 대출? 그거 얘기하자고 하지 않았어?"

전날, 막히는 차 안에서 앞으로 우리가 갚아야 할 신용대출의 상환방식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제안했다. 

"응! 맞아. 이번 달에 이자율이 몇 프로였어?"

"응. 4.01%였네? 지난달에도 4프로대였고."

"음.. 처음에 빌렸을 땐 3.95%였나 그랬었던 것 같은데 금세 올랐구나. 그럼 우리 이 돈을 한 번에 중도상환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다달이 얼마씩 상환하는 게 좋을까?"


어떻게 상환하는 게 좋을지 현금 보유와 이자로 새는 돈 사이에서 계산을 해보고 싶었던 나는 수학에 머리가 좋은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대뜸 남편이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집을 구입하면서 나가고 있는 지출의 일부를 왜 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내용은 이미 상의된 부분이었다. 갑자기 당황한 나는 가계부를 들고 와서 이번 달 수익과 지출에 대해 설명했고 한참을 보던 남편은 내가 학자금을 갚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유되고 있는 부분들도 살다 보면 놓치기 마련이다. 

그렇게 돈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갔고 남편은 장난스럽게 해서는 안될 말들을 늘어놓았다.


"빚쟁이네. 근데 네 동생은 몇천만 원 모았다잖아." 


그랬다. 서울 동지 셋은 올라오는 차 속에서 재테크 이야기를 했고 대기업의 일꾼인 동생은 내가 모은 돈보다 훨씬 큰돈을 갖고 있었다. 





- 마음의 무기력함은 매콤하거나 강한 자극을 원한다. 마음에서 해소되지 않은 것은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며 대체하려고 한다. (라면 2개.. 후르릅 챱챱 '염분은 저 주세요.')





명절이 모두 끝난 오늘, 목요일.

난 하루 종일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했다. 공기의 흐름도 없이 온 세상이 멈춘 기분. 어떤 향기도 어떤 내적 동함도 일지 않았다. 무엇도 하기 싫었다. 낮잠도 오지 않았다. 행복하지 않았다. 우울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딱히 어떤 일이 벌어지진 않았으니까. 단지, 중지 버튼이 눌려졌고 그대로 몸이 우걱우걱 아래로 아래로 끊어져 내리는 기분이라 입도 벌어지지 않고 손가락도 들어지지 않는 상태.


왜일까?


당신은 당신의 무기력의 근거를 찾기 위해 애쓰는가?


나는 애쓴다. 그게 나에겐 마음 챙김이다. 명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속으로 되뇌었다. 왜 이렇게 무기력할까. 왜 아무것도 하기 싫을까. 왜 바보가 된 기분일까. 일과 일을 더하면 무엇일까. 머리가 회전되지 않는 기분이다. 내 마음을 내가 알기 어려운 상태라서 앉았다가 누웠다가 핸드폰을 꺼냈다가 책을 좀 펼쳤다가 반복만 하다 계속 무한정 속절없이 시간을 내보내고 내보내고 내보낸다. 


'설마, 내가 그 말을 들었다고 이렇게 자괴적이게 바뀐다고?'


아니라고 말할 순 없지만, 우리는 자신의 무기력의 근거를 명료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분명 나는 그 말에 흔들렸다. 동생과 나를 비교한 말 마디, 그 말은 '사실'일뿐이다. 수학적으로 사실이다. 빚을 졌으니 빚쟁이가 맞고 동생보다 저축한 돈이 적으니 비교했을 때 옳은 말이다. 그 말을 들여다보라.... 왜 그 말에 내가 흔들렸는지. 그 안에는 남편이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과거에 동생에게 돈으로 자존심 상했던 에피소드들이 뭉탱이로 딸려오는 법이다. 


이 말이 소화되려고 오늘 하루가 걸렸다..




말을 소화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자.

말 안에 담긴 나의 과거의 정서와 감정을 알아차림에 감사하자.

예전 같았으면 숨거나 포기하거나 뒤돌아 섰을 텐데, 현명하게 남편에게 말을 하고 사과받은 것에 감사하자.

예쁜 뒷모습의 동생을 내 카메라 속에 콕 찍어둔 것에 감사하자, 돈을 많이 모은 만큼 동생이 흘렸을 괴로운 눈물을 내가 헤어 린다는 그 자체에 감탄하며 기뻐하자.




당신의 오늘은 어땠나요?

외부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나요. 당신의 길을 가려다 방황을 선동당하지 않았나요?

저는 그랬습니다 오늘이. 분명 나는 잘하고 있어요. 내 길을 개척하고 있어요. 스스로 성공한 일에 집중하세요. 해낸 것을 보고 깨달으세요. 내가 얼마나 소신이 있게 나를 가꾸고 있는 사람인가를. 유튜브를 보면서 수많은 정보와 자극에 현혹되며 조급히 휘둘리지 않고 정리하면서 자기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게 어려운 것처럼


당신 귀로 들어오는 말에.. 당신의 하루를 내어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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