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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꾼 Feb 12. 2022

임신 증상 놀이 재밌어요.

임신과 착상


이번 설날은 좀 특별했다. 바쁜 남편은 설에 쉴 수 있었고 1년 반 만에 우린 친정에 내려가 2박 3일을 보냈다. 십몇 년 연애한 우리는 결혼도 투닥거리면서 내가 하자고 우기고 또 꼬시면서 했다. 


"우리 이제 아기를 갖는 건 어때?"

"음."

"에이, 오빠 지금 애기 갖고 싶어. 근데 아니라고 저항하는 것 같은데.."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럼 왜 맨날 자기 전에 인별 그램으로 애기 동영상만 보는 건데."

"음..."

"맞다니까. 자, 이제 가질 때도 됐어. 오빠 이제 마흔이야. 엄밀히 말하면 마흔하나잖아."

"내가 왜 마흔하나야!!!?"

"그래. 마흔."


남편은 늙어버린 사회적 나이 언급에 불끈 반응했다. 신체 나이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물일곱에 머물러 있는 줄 아는 귀여운 남편. 이번 임신의 경우도 내 지휘 하에 꾸려나가야겠구나 하고 일찍 체념했다. 


설날에 우리는 담양의 죽녹원을 찾았다. 지난봄에 갔을 때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반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여기서 나왔는데 그땐 공부하느라 죽녹원 말만 들었지 너무 궁금했어."

"공기 좋은 것좀 봐."

"그러게. 이 대나무들은 진짜 춥겠다. 여름에 오면 진짜 좋겠다."

"어!? 임금님 귀다!!!! 오빠, 가서 얼른 소원 빌어봐~"


후다닥 달려간 남편은 귀에 대고 쫑알쫑알 속삭였다. 그리고 배시시 웃으며 달려왔다.


"뭐라고 빌었어?"

"황금이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달라고."

"뭐야~~~ 애기 갖기 싫다며~"


그렇게 우리는 서로 동의하에 2세를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임신 극초기 증상'이라고 포털사이트, 맘 카페를 열심히 리서치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입 밖으로 "저는 올해 엄마가 되는 게 목표예요."라고 말했다. 또 매일같이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배테기, 임테기, 입덧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1일 차, 

2일 차,

3일 차,


매일 몸의 변화를 아이폰 메모 앱에 적고 있다. 


"큰언니. 내가 매일매일 몸의 변화를 적고 있어. 나 아무래도 임신한 것 같아."

"벌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벌써 됐으려고?"

"응. 오빠가 왠지 우리는 한방에 될 것 같다고 했어."

"휴.. 너 그러다 엄청 실망한다. 그럼 어쩌려고 그래~ 걱정이다 걱정."

"아니야. 걱정할 건 없어. 우선 한번 지켜보자고!"


그렇게 일주일째가 됐다. 일주일 째인 태어나서 겪어본 적 없는 배꼽 아래 왼쪽에서 통증이 엄청나게 느껴졌다. 그리고 2시간 반에서 세 시간 정도 통증이 계속됐고 5시간 정도 앓아누워 있었다. 이 통증은 무엇일까? 하고 찾아보니 바로 '착상 통'이라는 것이었다. 관계 후 7일 전에는 세포 분열이 일어나고 일주일이나 10일 이후부터 난소에 안착하며 생기는 통증이다. 건강한 여성의 경우 이 통증을 느끼는 경우는 10-30%에 불과하다고 한다. 


"큰언니. 이건 착상 통인 것 같아!"

"휴. 내가 너 때문에 웃는다. 우선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 정말 네 말대로 하나하나 변화를 다 적어봐."

"응. 언니는 극초기에 증상이 어땠어?"

"너.. 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 나는 3개월째 됐을 때 알았던 것 같아."


나는 정말 세포 분열 전부터 느꼈던 걸까? 착상 전부터 모든 변화가 느껴졌다. 상상일 수도 있다. 혼자 적어 내려 가면서 이렇게 세세하게 느끼고 있는데 과연 무엇일까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리고 정말 극초기 증상은 임신이라고 명명하지도 않을뿐더러 느끼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대망의 생리 예정일 5일 전이 되었다. 마음이 급해서 얼리 테스트기를 샀다.


"큰언니. 나 내일 이거 해볼 거야."

"그래 해봐. 근데 너무 이른데...."

"그래? 5일 전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래 해봐."



새벽 세시반.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테스트를 해봤고 선명하게 변함없는 한 줄.


마음이 너무 찌뿌둥했다. 잠을 잤고 다음날 아침 출근을 했다. '왜지, 왜 아니지. 이 변화와 통증은 상상인가.....'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났다. 

지금은 어떻냐고? 잠자코 생리 예정일을 기다리는 중이다. 임신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몇 개월, 1년, 또는 몇 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생각났다. 다들 너무 힘든 시기였다라고 말하는 글들. 쉽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좀 웃펐다. 이렇게 간절히 아기가 생기기를 바라는 내가 스스로 신기했다. 만약 임신을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단지 남편과 아기를 갖기로 결정했다는 기쁨이 컸다. 공동의 의제를 합의했고 같은 목표가 생겼다는 게 흥미로웠다. 또 미래를 상상하니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까 책을 고르거나 임신, 육아 정보를 모으는 게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인간이라는 게 좋은 존재가 되기 위해 성장하고 분투할 때가 행복하지 않나. 목표의식이나 의지가 사라질 때만큼 무료하고 시간이 아까운데, 이렇게 무얼 바랄 수 있다는 건 참 큰 기쁨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내가 몸으로 느껴 적은 변화가 생물학적으로 근거 있는 기록이었는지 그게 매우 매우 궁금하다. 아니라면 스스로 상상력이 매우 풍부하며 글짓기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인정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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