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랑꾼 Feb 15. 2022

감각 단절 코로나 블루

우울을 호소하는 주변인

연기하는 어린 동생이 있다. 대학원에서 만난 예쁘장한 이 친구는 나와 네 살 정도 차이가 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저렴한 학관 카페에서 미래를 위한 자신의 신념이나 현재 스스로가 된 과거를 공유하며 진지하게 배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가 걔 스물넷, 나 스물 여덟즘 이었다. 


"뭐하니."

"응~ 언니. 그냥 집에 있어요."

"응. 그렇구나. 그냥 전화해봤어. 별일 없어?"

"어제는 내가 무기력한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서 새벽 늦게 노트에 글 좀 끄적여 봤어요."


스물아홉이 된 제이는 연기도 하고 유튜브도 하다가 최근에 들어 모두 잠정 중단을 했다. 서른을 앞두고 이제 진짜 뭘 먹고살아야 할지 고심하며 현실의 급물살을 맞았다. 인생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이상하게 휩쓸려가면 어쩌나 하고 걔나 나나 올망졸망 통화를 했다. 


"나는 있잖아. 이렇게는 못살겠어. 너무 춥고 외로워. 내가 사람 좋아하는 줄 몰랐데 진짜 좋아하나 봐."

"언니 사람 때문에 외롭다는 말 이 얘기 꽤 됐다. 언니가 코로나 터지고 얼마 안돼서부터 얘기했었는데."

"내가 그랬어?"


나는 얼마나 허전한지 티브이도 없는 거실 저녁부터 밤이면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이방 저 방을 옮겨 다닌다. 말을 하는 직업이라서 수련생들과 얘기 나누고 수업도 이끄는데 그래도 그렇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만 북북 쉰다. 제이는 자신도 어제 새벽부터 이 우울에 대해 고민을 했지만 그 답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집에서 불 꺼진 신호등처럼 멍하게 서있는 스스로를 볼 때마다 한없이 우울하다고 말하는데 공감이 돼서 눈시울이 찡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냉동실에 꽝꽝 얼려진 삼겹살을 꺼냈다. 명절에 들어온 선물이었는데 소분하지도 않고 바구니채 넣어둔 생고기다. 지금 당장 이걸 구워 먹기엔 돌 같은데 밤 아홉 시가 넘었다. 깨고 부수고 녹이고 하는 시간. 그러다 덧나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며 왠 생고기에 먹겠다고 화풀이를 하려고 하나 하면서도 손가락이 움직였다. 꽝꽝! 내리쳐도 보고 포기할까 싶었는데. '그럼 밤 9시부터 잠들기 전까지 뭐할래. 밥이나 먹어야지.' 이런 생각에 지지직 굽기 시작했다. 뭘 할까 빨래라도 돌리자 하고 세탁기를 켰다. 그리고 집을 환기했다.


웅------- 웅우웅ㅇ-------

바람소리가 세찼다. 회오리를 치면서 건물 외벽을 휘감는 소리가 세탁기 통에 집이 들어있나 싶었다. 맞바람 치는 창문 사이로 기름진 고기 냄새가 다 빠져나가길 빌며 차갑게 앉아있었다. 돌같이 굳은 삼겹살과 밥을 먹으며 턱운동을 했다. 그래 맛있네 이제 10시가 넘었네. 하고 생각이 바뀌는데 '벌써 열 시가 넘었어? 뭘 했다고.' 이렇게 우습다.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먹고 먹고 나니 심야의 고독한 시간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다니.


고기를 불에 올려둔 동안 인별을 보는데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인 친구가 포스팅을 올렸다.

"뭘 해도 나아지지 않네. 공연을 못 가서 그런가.." 그렇다. 이 친구도 우리와 같다. 많은 사람들과 목소리 데시벨 높이며 감정 진폭을 마음껏 쓰고 리듬감 최고조로 높여 웃고 떠들고 손뼉 치고 어깨 치고 팔짱 끼고 만지고 마스크 넘어 입꼬리 실룩실룩 다양한 입모양과 표정을 보는 일. 발그레한 얼굴과 기름 낄 때까지 노는 그 행복 그게.. 그리운 거다.



떠올랐다. 낮에 봤던 다른 친구의 인별 포스팅. 11월부터 2월, 일 년의 3분의 1이 우리나라 겨울이라고. 우린 어쩌면 몇 년째 마음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꽁꽁 얼은 채 갇혀있는지도 모르겠다. 우울하다는 말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던 남편이 며칠 전 자신이 우울증인 게 아닐까 싶다고 했으니까..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손 좀 들어봐 줘요.

그리고 나도 좀 행복하게 해 줘요.



언제 즘 이 고독이 자의가 될까...





작가의 이전글 임신 증상 놀이 재밌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