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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꾼 Mar 13. 2022

당신의 눈에는 무슨 아픔이 있을까

생일 축하해.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the artist is present, 2010




상대의 눈을 보고 있으면 어떠한 폭력을 과거에 경험했는지 알 수 있다.




얼마 전 나는 서른세 번째의 생일을 맞았다. 생일이라고 해서 별다른 일은 없었다. 친구들과 맛있는 평양냉면을 먹었고 차를 한잔 했다. 남편과는 전날 밤 족발을 먹으며 맥주 반잔을 들이켰다. 더 바랄 것이 없었다. 큰 고통이 없고 큰 아픔이 없다. 당장 시간에 쫓기거나 누명에 쓰여있지 않았으며 사투를 버리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가까운 이가 아파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지 않으며, 나의 탐욕이나 거짓이 드러나 스스로 배신감을 느끼지 않으며 모두 안일하고 평안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족했다.


당신은 상대의 눈을 보고 있으면 무엇을 느끼는가?

눈 속에 담긴 그 사람의 사정은 아픔에 차있거나 행복에 젖어 웃고 있는가. 눈은 정말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돈으로 나눠주고 스킨십으로 전달하는 행복만큼 눈을 바라본다는 건 접촉 없이 그 사람의 영혼까지 느끼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공감이라는 한 줄기에 함께 묶어는 행위이니까.


우리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폭력은 내가 지금 족발을 뜯고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는 싸우고 폭격이 벌어지는 것과 같다. 작은 일상에서 누군가는 웃지만 누군가는 울고 있을 현재가 모조리 폭력적이지만 일반적이다. 그만큼 우리는 운명에 취약하다. 나는 이따금 나의 행복 밑에 깔린 불안을 함께 느낀다. 내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으로부터 온 것은 아닌지, 내가 정말 행복해도 되는지, 내가 듣는 불안한 음성은 어린 시절 어떤 순간의 폭력을 목격하는 목격자와 행위자, 방관자로부터 온 잔상인가에 대한 생각..


운명의 여신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인간은 그만큼 나약한 존재다. 해고에 대한 불안, 신체의 질병, 경제적 압박 등 조금만 상황이 틀어져도 우리는 쉽게 무너진다. 아주 약간의 좌절만으로도 그렇게 된다. 따라서 이 같은 나약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별 큰일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하루에 진심을 다해 감사할 때 극복의 길이 열린다. 감사야 말로 불안과 두려움을 보내오는 운명의 여신에게 맞설 수 있는 인간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 알랭 드 보통



"생일 축하해줘서 고마워, 감사해!"


친구들의 축하는 몸 쓸 불안을 일으킨다. 배신에 대한 불안.

신뢰하는 사람들이 떠나간 기억들이 올라온다. 관계를 맺을 때 속을 모두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도 내비치고 싶지 않아 끙끙거리는 사람이 있다. 후자가 나다. 이 태도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치유해왔던 부분이긴 하나 역시나 오늘같이 친구라는 집단, 내가 소수가 되고 다수가 나를 인식하고 주목받는 특별한 날이 되면 난 매우 날카로워진다. 사실 쩔쩔맨다는 표현이 가장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대해 물으면 사람들은 '실연의 상처'를 말하고,

소속감에 대해 물으면 '소외'로 인해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말하더군요.

'연결'에 대해 물었을 때 사람들은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것의 연결에서 '수치심'을 발견합니다.

'수치심'은 간단히 말하면,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감정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각자의 고통스러운 '취약성'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와 진정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낱낱이 내보여야 합니다. 진짜 모습을요.


< 취약하다는 것의 힘 : 브레네 브라운의 강연, TED >



나는 아직도 운명의 여신이 주었던 작은 상처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끈질기게 상처의 근원을 찾기 위해 부정적이게 반응하는 나 자신을 목격할 때마다 질문한다. '왜 놀라니, 왜 그러니.' 하고.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하고 아물었을 어린 시절의 마음의 상처는 새살이 났다고 하더라도 자꾸만 그 자리 그곳이 아픈가 보다. 아마도 그 안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존재가 위협받는 그 상태 속에 참을 수밖에 없었던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있을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친구들과 싸우지 말라고 말했고 늘 착하고 성실한 아이가 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말도 있지 않겠나.


그렇게 지금껏 상처 마주 보기, 안아주기를 통해 자라왔고 스스로 평범한 일상의 감사함 속에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들을 개선해왔다. '나의 취약성 마주 보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너의 행복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다.

너는 행복할 자격이 있으며 행복하다고 뿌듯하다고 기쁘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가 너를 망가뜨리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너는 행복한 생을 살며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

너는 폭력을 잊을 수 있다.



"당신이 만약 폭력의 잔재로부터 아파하고 있다면,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어른이 되겠다고 약속하며, 당신을 꼭 끌어안고 위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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