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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꾼 May 08. 2022

엄마 맞이하기 엄마 사랑하기

가족과 함께 보낸 2박 3일

지난 금요일 저녁 엄마와 언니 조카가 새집에 놀러를 왔다. 결혼한 지 3년 차에 쫓기듯 전셋집을 빼면서 경기도로 빠져나와 남편과 갖은 실랑이 끝에 아파트를 샀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엄마는 '한번 가야지. 가봐야지' 전화 통화 말미에 했던 말을 5월에 지켰다.   



그 전 주부터 이불을 빨고 베개의 수를 샌다. '이불은 몇 개가 필요할까?', '베개는 없는데 쿠션까지 포함하면 괜찮겠지?', '그때즘이면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되려나.' 그리고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뭘 먹을지 어디를 가면 좋을지 가보고 싶은 곳은 없는지 상의했다. 그것도 몇 번씩.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할만한 2박 3일을 보내게 해주고 싶은 욕심에 고민을 하다가 이러다 내가 쓰러지겠구나 싶었지만, 이사 온 지 몇 개월째 밀린 베란다를 청소하고 있었다.    


허리가 아파서 그날 밤 파스를 붙였다. "엄마 온다고 베란다 청소했구나? 이러다 몸살 나는 거 아니야?" 남편이 묻는 말에 "아니야, 자기가 베란다 청소만 하면 너무 좋겠다고 해서 한 거야." 부끄러워서 대충 얼버무렸다. 그리고 밑반찬도 집에서 쉬는 시간에 짬짬이 만들어 놨다. 엄마가 날 위해 했던 수고로움이 떠올랐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차려졌던 곱고 예쁜 반찬과 오랜 시간 우린 고기찜이나 해물탕들. 먹으면서 "우리 엄마 참 손 커." 했는데 내가 똑같이 하고 있더라. 

















결혼하고 2년 차 되던 해에 딸 사는 집을 처음 보러 왔던 엄마는 행복하게 서울구경을 하고 내려갔다. 그때도 "이제 둘째 딸 걱정은 떨쳐버려도 쓰겠다. 이쁘게 잘하고 사네." 그 말에 어떤 대꾸는 안 했지만 속으로 다행이라고 느꼈다.   


'참 다행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잘 커서 참 다행이다. 큰 문제없이 꾸리고 살고 있어 다행이다. 행복해서 다행이다.' 


그렇게 2박 3일 우리 집 근처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내려보냈다. 이제 어두컴컴한 집에 혼자 덩그러니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남편이 와서 속삭였다. "고생했어 자기야, 좋았어?" "응~ 나  소원 풀었어." 하고 단잠을 잤다. 


첫날 저녁 식탁엔 고향에서 가져온 명물 낙지와 갑오징어 회가 올라왔다. 부부 단둘이 살던 집은 복작복작 경쾌하고 수다스러운 소리로 가득해졌다. 원탁에 둘러앉은 식구들.

"아마 내가 매년 자취방 옮겨 다니고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집을 구할 엄두도 못 냈을 거야 정말." 

"맞아. 염창동 그 오피스텔이 생각난다. 그때 엄마랑 언니랑 둘이 엄청 싸웠잖아."

작은 동생이 묻는다.

"근데 우리 왜 싸웠지?"

엄마랑 나는 말똥말똥 둘이 눈을 쳐다봤다.


이유가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 한 톨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땐 존재 자체가 부정될 만큼 내가 싫고 엄마가 미웠는데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니 놀라웠다. "아마.., 엄마가 날 챙기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불만이 쌓여 있었던 것 같아." 엄마는 그 이유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참 웃긴다. 자식 부모 간에 그런 게 어딨어? 부모는 자식한테 불만 없는데.", '아니 엄마도 외할머니한테 불만이 있으면서.' 하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화해는 이런 작은 노력들로 풀렸다. 엄마를 맞이할 준비, 식구들을 먹일 준비, 재우고 시간을 보낼 준비. 그 과정에서 말끔하고 깨끗하게 사랑을 베풀 자세를 배우고 예행한다. 행복한 식사를 상상하면서.


타지 생활을 오래 하면서 엄마는 나에게 돈만 붙여줬지 사랑을 붙여주지 않았다고 괴로워했다. 대학생활 4년, 자취 8년, 한 번도 내가 사는 집에 오지 않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제야 세월이 허락했다. 딸린 자식들의 대학 등록금을 벌지 않아도 되고 자식 셋의 용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고 학비로 밀린 대출금을 나눠 갚지 않아도 된다. 엄마의 몫은 줄었고 자식의 도리만 남았다.





드디어 엄마가 나의 공간에 와주었다. 소원을 풀었고 그들이 떠난 빈자리가 아름다워 사진을 찍는다.

행복했던 2박 3일이 꼭꼭 기억에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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