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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꾼 May 28. 2022

행복의 복리

선택이 만드는 기쁨

토요일 오전 아침, 눈을 뜨니 내 몸이 더 단단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의 뼈 마디마디는 헐거워도 근육만큼은 탄탄하고 부드러워진 게 며칠 사이 성큼 육중하게 자라난 플라타너스 같았다. 요즘엔 일이 많아서 목이 아프고 매우 피로하다. 요가는 여름이 다가오는 이 계절부터 찾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바삐 하루가 돌아간다. 



안녕, 요가선생 아티스트. 

어제 몇 주 전부터 시작한 코리아나 미술관 스페이스 씨에서 운영하는 클럽 리얼리티 프로젝트에 다녀왔다. 한 주간 어떻게 보냈지 다른 멤버들과 마주 보며 5분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요가 선생이라는 직업을 누드모델로 대체한 나는 이해와라는 가명으로 활동한다.

"어쩌다 누드모델이 됐어요?"



어쩌다 이 '일'이 '업'이 됐다.

"그게 이게 되어야겠다 하는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나와 맞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제쳐내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요?" 원하지 않는 공간이나 관계, 불편함이나 편안함의 기준으로 하나씩 하나씩 후보군을 접다 보니까 남은 게 이 '일'이었다. 상대는 이 대답에 물었다. "그럼 좋지 않겠네요?" 



아니, 좋다. 

오늘은 수업에 스물두 명 역대 최다의 수련생이 참석했다. 주말 아침에 수업을 간다는 건 전장에 나가는 퇴역병의 느낌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면 한밤 중에 눈에 불을 켜고 지뢰를 찾는 지명받은 수색병이 돼버린다. 한 사람이라도 불편함 없이 이 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일.



행복의 복리

많이 뜨겁지 않은 초여름의 햇살을 뚫고 저벅저벅 집으로 걸어간다. 내가 쌓아온 시간을 의심했던 시절, 불안과 함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상념에 사로잡혀 현재 그 어느 것도 집중하지 못했던 그때, 세상은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한 것처럼 보여 살기 싫었다. 누구는 직업이 있고 누구는 차가 있고 누구는 부자 엄마 아빠가 있고 누구는 스펙이 있고 누구는 자격증이 있는데 난 어느 것도 하나 특출 난 게 없다고 생각하며 망연자실했다. 이미 삶의 값이 종결됐고 우울하지도 않았다. 이성적이고 계산된 판단이기 때문에 더 비참했다.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당신에게 차선이 있다면 선택해야 한다. 목표했던 옆에 눈에 띈 차선은 진짜 당신과 닮은 무엇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가 나쁜 것도 아니며 선택의 보류가 당신을 환장하게 만드는 절대 이유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다'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자살을 떠올렸던 이유는 무쓸모로부터 왔다. 쓸모없는 인간, 세상의 무쓸모, 존재의 부정. 그런 생각에 시간까지 무가치하게 더해진다면 큰 악몽과 같은 삶을 단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 또는 무엇'이 있다면 알아차리고 배제하며 생각해보길)



선택은 다음 선택을 낳는다.

여기서부터 복리가 쌓이기 시작한다. 선택은 이자와 같아서 주도적으로 선택할수록 혜택으로 복리가 붙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어른들이 말하는 인생의 노하우, 경험치, 혜안, 지혜 같은 것이 해당한다. 바로 어른이 되는 길이다. 어렸을 때는 단순히 미디어 또는 대중(현재의 환경)에 노출되면서 가장 두드러지는 직업이 각광받는다. 그러다가 이십 대 초중반을 겪으며 혼란을 겪는다. 자신과 세상의 괴리도 크고 박탈감이나 현타를 겪으며 보통 이때 동굴로 들어간다. 동굴도 선택이다.  



자기 내면, 나는 누구지

누구라고 묻는 것보다는 무엇을 할까 곁길이나 대안을 찾아 움직이는 게 이 시간을 얼른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을 투자한다. 물을 주고 햇볕을 보고 바람을 쐬어주고 식물을 키우듯이. 성장의 첫 발, 지금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을 보면 어디든 발을 자주 딛었고 그 과정을 스스로 엮어온 모습을 볼 수 있다. 종종 뒤늦게 오춘기로 찾아오기도 하지만 이 과정은 행복의 필수이며 진리이다. 행복의 복리는 켜켜이 쌓여가고 자신이 선택한 일,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로 남는다. 분명 마주하면 직접적인 고통이 수반된다. 일도 대장 캡틴이 되어서 해보면 가장 힘이 드니까. 



고통 후 찾아오는 안정감

사랑을 쟁취할 때도 힘이 든다. 영혼의 단짝,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와 나를 통합시키는 그 과정은 두 이념을 하나의 신념으로 만드는 일만큼 어려운데 배팅하는 것이니 당연하다. 사랑을 잘 몰라도 좋지만 무작정 그 사람을 따라가지만 말아달라, 까다롭게 고민하고 솎아내면서 화해를 반복한다. 그게 사람이든 일이든 옷을 하나 사도 쓰레기를 하나 버리는 일도 의식적으로 행하자. 모르면 모르는 데로 두지 말고 시간이 날 때 드려다 본다면, 당신은 행복의 복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호사다마, 멋진 어른

매 달 초, 이번 달을 미리 가늠해보고 생각과 행동을 계획한다. 앞닥드릴 일에 마음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하면서 무엇을 놓치지 말고 경험할지 본다. 스스로 원하던 멋진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멋진 어른이란 관계 속에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무엇을 우선으로 가치를 둘지 배정할 수 있다. 하루하루 쌓여가며 잘 모르는 부분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공부할 수 있으며, 시간을 홀로 보내도 허둥지둥 대지 않고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또 누군가를 미워할 때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드려다 볼 수 있고 가라앉힐 수 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자극이 무엇인지 요리를 하는 즐거움인지, 걸으며 보고 싶은 게 개울인지 산인지, 클래식인지 클럽인지 선택하여 몸과 마음에 시간을 다스려 줄 수 있다는 것. 그게 큰 행복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너무 행복해서 전화를 걸었어."
"딸 행복할 때일수록 겸손해야 해."



"엄마, 매번 그 말 때문에 행복을 누리지 못했는데

이젠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말하고 이 기쁨을 마음껏 누릴 거야."



평생의 노력에 걸쳐 이렇게 튼튼한 정신과 육체를 만들어 오고 있는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쏘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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