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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꾼 Jun 07. 2022

자궁에 앱 좀

호르몬 탓하지 말기

잠을 자려고 누웠다. 마지막 휴일이니까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면 덜 싫겠지 싶었다.

잠이 오던 차에 드르렁 코골이가 시동을 살짝 걸자 눈이 쪽 떠졌다.

'에이 망했어.'


그리고 애먼 카톡을 열어보고 통장을 열어봤다가 노트북을 켜 <실망의 최후>라고 제목을 쓴다.

그리고 다시 지운다. <호르몬 탓하지 말기>로 바꿨다.




생리 불순 2달째

코로나의 영향인지 생리 불순이 이어지고 있다. 저번 달에 40일 넘어 찾아왔던 대자연은 이번 달엔 제 날짜에 찾아오겠지 했지만 역시 깜깜무소식이다. 웃긴 건 월경 예정일에 맞춰 입맛이 삭 돌고 식욕이 미친 듯이 솟는다는 것!   


마치, 대자연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묶어뒀던 금욕과 절제의 열쇠를 풀어주는 것과 같다. 일종의 모든 욕구 허용 프리패스가 등장한다. <PMS : 월경 전 증후군 '먹어도 괜찮아.', '예민해져도 괜찮아', '자도 괜찮아', '사도 괜찮아'>, 휴, 그러나 자궁은 전혀 월경할 생각이 없음. 심지어 현황 조회도 불가능하다.






염분 과다, 밀가루 2주째


그렇게 2주째, 몸이 염분으로 가득하다. 

어젯밤은 12시 7분 피자 한판을 시켜 혼자서 다 먹고 2시쯤 잤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새벽에 일을 마치고 들어온 남편이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혹시나 이 남자가 몇 시간 전에 시킨 피자 냄새를 맡았으면 어쩌나, 속으로 널브러져 자고 있는 나를 보며 못났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대단하다고 비웃었으면 어쩌나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이불을 내쪽으로 당겼다. 그리고 괜히 아침에 퉁퉁 부운 볼 따귀를 탱탱 치면서 "오빠~ 얼른 일어나" 하고 채근하듯 깨웠다. 이런, 미련 곰팅이.


왜 이렇게 마음이 조급했나 드려다 보면서 집 앞 호수를 걸었다. 결국 몸은 생리적으로 때 되면 알아서 다 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만 생각이 앞서 월경 예정일에 맞춰 스케줄을 조절하고 컨디션을 결정하고 잠자고, 먹고 눕고 참 매 달 이걸 반복하면서 왜 속고 또 속는지 모를 일이다.





 자궁에 앱 좀 설치해주세요.


글쎄 은행에 가지 않아도 자동이체를 하고 화장품을 사지 않아도 성분과 리뷰를 미리 보고 가상 소비를 할 수 있는 이 5G 시대에 내 몸의 사정을 바로 체킹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간혹 납득되지 않는다. 당연한 사실인데 매우 비현실 같고 적응이 안 된다. '이 데이터를 알고 싶은 욕구가 정상인가?'


아무튼 내 자궁은 지금 버퍼링에 걸렸다. 오작동 중인지 앱을 켜서 볼 순 없지만 미래를 조정하려고 애먹는 그 순간! 마음에서 실망의 씨앗은 싹이 튼다는 걸 놓치면 안 된다. 결국 자신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습관을 유발하고 자극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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