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살이라는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다
풋살에 입문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첫 소셜 매치*에 참가했다. 그때 당시 속했던 왕초보 풋살 모임은 혼성 팀이고 그래도 나보다는 신체적인 능력과 실력이 훨씬 좋은 남성들 사이에서 하다 보니,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매치에서는 그래도 좀 잘하지 않을까? 자만했던 것 같다.
*소셜 매치: 풋살은 특정 인원이 모여야만 플레이가 가능하다 보니 플랩풋볼, 퍼즐풋볼 같이 사람을 모아주는 소셜 매치 플랫폼이 존재한다.
그런데 웬걸. 여자들끼리 하니까 더 치열하다. 그래도 남자분들과 공을 찰 때는 배려를 해주셔서 내가 공을 잡았을 때 심하게 압박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여자들끼리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몸싸움을 걸어온다. 나름 승부욕이 발동해서 주눅 들지 않고 나도 더 열심히 뛰었다.
그러면서 무리를 했던 것 같다. 갑자기 '뚝' 하고 뭔가 근육이 나간 소리가 났다. 물론 실제 소리가 들린 건 아니었지만 진짜 들린 것 같았다. 그 뒤부터 왼쪽 앞 허벅지에서 난생처음 느껴보는 통증을 느꼈다. 걸을 때마다 그 부위가 아파서 절뚝거렸다.
경미한 부상을 통해 평생 모르고 지냈던 근육의 존재를 알았다. 그 이름은 대퇴사두근. 허벅지에 있는 네 개의 근육을 통틀어 일컫는 용어로 간단히 말하면 걷고, 뛰고, 점프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근육이다. 실제 축구 선수들이 흔히 겪는 부상이라고 한다. 까불거리다가 엉뚱한 곳을 다쳤다면 억울했겠지만, 축구를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부상을 입으니 이렇게 풋살인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나름 뿌듯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각 운동 종목마다 각기 다른 근육이 쓰인다. 머리로는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느낀 적은 없었는데.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다는 건 평생 살면서 한 번도 안 아팠던 근육이 존재감을 알리며 아파올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주변에서는 손상된 근육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푹 쉬고, 그 부위를 강화할 수 있는 근력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해 줬다.
몇 년 동안 헬스를 꾸준히 해오고 있었는데 등, 어깨/팔, 하체 3 분할 루틴 중 제일 재미없다고 느끼는 부위가 하체였다. 등과 어깨 부위는 근육이 작아서, 조금만 운동하면 근육이 빠르게 생기면서 달라지는 것이 보이는데 하체는 아무리 운동을 해도 겉모습으로는 큰 차이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하체 근육이 강해져서 더 풋살 잘하게 해 주세요
레그 익스텐션, 스쿼트, 레그 프레스, 런지 등의 하체 운동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마법의 주문을 건다. 그때부터 하체 운동이 할 맛이 나기 시작했다. 풋살 입문 초반에는 대퇴사두근 부상이 잦았었는데 열심히 하체 운동을 한 뒤로는 한 번도 부상이 찾아오지 않았다. 확실히 근육 부위를 강화한 것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때부터 다른 종목의 운동을 풋살을 더 잘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단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슈팅할 때 발목의 힘이 중요한데, 발목 힘을 기를 수 있는 발레를 배울까?’, ‘발을 뻗어 수비를 할 때 빠르게 사이드스텝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스쿼시를 다시 시작할까?’, ‘상체가 너무 뻣뻣한 편인데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댄스를 배울까?’
‘이걸 하면 풋살을 더 잘하는데 도움이 될까?’는 질문은 새로운 운동에 도전할 때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원래 살면서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은 운동인데, 배우면 덩달아 풋살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내가 4년 넘게 영등포구 지역 주민으로 눌러앉은 이유 중 하나도 풋살이다. 영등포는 풋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풋세권’으로 불린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타 지역 대비 풋살 구장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소셜매치에 가면 강남에서 영등포까지 단지 풋살을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다. 꼭 영등포가 아니더라도 용산, 상암, 가산 디지털단지 등 차만 있으면 어디든 20분 내로 갈 수 있어서 제격이다. 이사를 하면 이 모든 인프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니. 제대로 영등포구에 발목을 잡혔다.
회사에서 신규 입사자가 있으면 메신저에서 취미를 포함한 자기소개를 하는데, 간혹 가다가 ‘풋살’이나 ‘축구’가 등장하기라도 하면 해당 멤버의 프로필 사진과 이름을 다시 한번 보게 되고 우연히 회사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괜히 내적 친밀감을 혼자서만 느끼기도 한다.
풋살을 중심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 삶이 풋살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흔히들 사랑에 빠지면 느끼는 증상이 아닌가. 아무래도 풋살과 제대로 사랑에 빠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