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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Mar 22. 2020

해야 하는 것 말고, 하고 싶은 것 하기  

목표 설정의 아이러니

 책 한 권 집필하기 vs 내가 좋아하는 주제의 글 쓰기


'책 한 권 집필하기'와 '좋아하는 주제의 글 쓰기' 두 가지 목표 모두 해당 outcome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글'이라는 output을 생산해내야 하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최종 목표의 뾰족함의 정도는 그것을 달성하는 과정에 있어 많은 차이점을 가져온다.


목표가 책 한 권 집필하기라면, '작가' 타이틀을 달고, 출간 소식을 주변에 알리는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리면서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강한 동기 부여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과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책의 첫 챕터 시작 조차 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나의 목표라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취향을 신경 쓰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주제가 떠오르지 않고, 다른 일에 바빠 글 쓰기에 쓸 시간이 없어진다면 해당 목표 달성은 흐지부지해질 가능성이 크다.


좋은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좋은 것일까?
아니면 모호할수록 좋은 것일까?



2020년에는 조금 더 목표한 바를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기 위해 열정에 기름붓기에서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클럽_기름붓기(목표 달성) 모임에 참여 중이다. 4회 차 모임의 후기를 적어본다.  




"왜 독일어 공부를 하시는 거예요?"



팀원 중에 '독일어 공부'를 목표로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오늘 우리 모임에 놀러 오신 분*이 "왜 독일어 공부를 하시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했다. 예전에 독일 취업을 꿈꿨다가 그 꿈을 실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독일어 공부를 그만두었던 나도 그분의 동기가 몹시 궁금했다.

*크리에이터 클럽에는 본인이 속한 모임 외에도 다른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놀러 가기'라는 문화가 존재한다. 


'제2외국어를 배우고 싶었고, 많은 옵션 중에서 독일어가 가장 매력적이어서 선택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현재 업으로 삼고 있는 일이 독일과는 관련도 없고, 가까운 미래에 독일 이민을 꿈꾸는 것도 아니지만, 너무 깊게 생각하면 결국 시작조차 하지 못해 그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그분의 답변이 인상 깊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생각해보니 한국 특유의 천편일률적이고 경쟁적인 사회에서 자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나의 목표로 삼으며 그를 달성하기 위해 참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은 'in 서울'하기 위하여 수능 공부를, 대학교에서는 '대기업에 취업' 하기 위하여 각종 자격증 취득 및 대외 활동을. 목표가 나의 안위와 관련된 거창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것이라면 굳이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독일어도 마찬가지였다. 에스토니아에서 2013년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독일인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독일어에 처음으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순수한 마음으로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독일어 공부에 더욱더 재미를 들이니, 독일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2번째 교환학생에 도전하여 독일의 브레멘(Bremen)이라는 도시에서 5개월간 교환 학기를 보냈다.


독일어도 여전히 너무 좋고, 여유로운 독일의 삶이 너무 좋아서 독일에서 아예 취업이 하고 싶어 졌다. 그런데 독일 취업은 녹록지 않았다. 현지에서 취업을 할 만큼 독일어를 잘하지도 못했고, 외국인 신분에, 석사 학위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인 독일에서 학사 학위만 달랑 가진 나는 취업 시장에서 너무 경쟁력이 떨어졌다.


꿈이 꺾인 채 한국에 돌아온 나는 그래도 어떻게든 독일어를 이어가려고 했지만, 나의 생계와 관련되지 않은 독일어는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결국에는 그 끈을 놓아버렸다. 지금도 제2외국어는 배워야 할 것 같은데, 그 목표에 투자해야 할 마땅한 이유를 못 찾아서 책만 사두고 시작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하기


한창 독일어에 빠졌을 때 공부하는 게 정말 재밌었다. 친했던 독일 친구의 생일이라고 페이스북이 알려주면, 그 친구의 담벼락에 가서 "Viel Glück zum Geburtstag" (생일 축하해)라고 글을 남기고, 독일에서 잠깐 살 때는 카페에 가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독일어로만 주문을 무사히 해도 깊은 성취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독일어를 좋아하니 실력도 빠르게 늘어 독일에 있는 동안 B1 자격증(일상 회화가 무리 없이 가능한 intermediate 수준)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한때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사실이 창피할 정도로 기본적인 독일어 단어 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그때 '독일 취업'을 욕심부리지 말고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이어갔다면 그래도 지금 그 실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제는 그만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를 놓아주어도 될 것 같다. 마땅히 해야 하는 것보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실천하고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거창한 '목표' 달성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즐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므로. 그리고 또 모른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결국 그 목표에 한 발 가깝게 다가설 수도 있는지도.


지금도 여전히 독일어가 참 좋다. 아직도 서울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독일 관광객들이 독일어로 대화하는 소리를 들어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하고 그들의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독일어 공부, 다시 한번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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