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을 경험과 바꾸다 엉뚱하게 UX를 생각하다 불편이 인사이트를 주다
우리나이로 서른 아홉 먹고 처음으로 뼈가 부러져봤다. 뼈가 '똑깍'하고 접혀 버린것은 아니지만 X레이를 보니 여러 결로 나누어 뼈에 금이 가 있었다. 덕분에 그간 해보지 못했던 깁스라는 경험을 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아프게 된 것 아픔을 통해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많은 경험을 적어 본다.
1. 글자를 단 한 글자도 제대로 쓸 수 없다.
왼손의 조작성에 대해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이다. 아래는 내가 정성을 다해 그것도 글씨가 잘써지는 수성펜으로 쓴 글씨다. 볼펜으로 쓰면 압력이 필요해서 더 참담한 글씨쓰기 수준을 보여준다. 업이 글쓰기인 사람들은 절대 손가락이 부러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추워도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없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나마 날이 추울때 손가락이 부러져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여름에 손가락이 부러지면 땀이 많이 나는데 겨울에는 그런 부분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근데 모든 것이 그렇듯 역시 이 부분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겨울에 손이 부러진 사람은 깁스 때문에 손을 주머니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옷을 골라 입을 때도 팔이 들어가는 소매 부분이 좁은 옷은 입을 수가 없다. 내 손은 계속 페이스북의 '좋아요' 혹은 '따봉'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춥던 덥던 손이 들어가는 옷을 입을 수 밖에...
그렇게 생각해보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3. 의외로 젓가락질은 올바른 폼으로 한다.
왼손 젓가락질은 최대의 난국이었다. 예상했던 것만큼 어려웠지만 대부분의 경우 포크를 사용하여 난국을 타계했다. 그런데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 바로 왼손 젓가락질 폼이 오른손보다 나은 것이다. 나는 오른손 젓가락질이 X자로 어리숙한데 왼손은 반찬을 잘 집지는 못해도 폼이 딱 어릴적에 젓가락질을 처음 배울때 나오는 자세였다. 이건 마치 타격폼이 좋은데 타율이 낮은 타자랄까? 내 오른손은 타격폼도 별로고 타율도 별로지만...
아무튼 젓가락질 초보자인 왼손이 폼이 더 좋다는건 충격이다.
4. 옷의 단추를 잠그는 것이 가장 어렵다.
최대의 복병이었다.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왼쪽 셔츠의 소매 단추 잠그기. 말이 필요 없다. 해보면 안다. 그 어려움. 그나마도 계속 하다보니 실력이 늘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옷을 입으며 단추를 잠그지만 그게 경우에 따라 얼마나 어려운일인지는 느끼지 못한다. 평범함 속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그래서 더 중요한 것 같다.
5. 한손으로 가능한 꽤 많은 일들이 있다.
청소기를 돌린다던지, 스마트폰의 타자를 친다던지, 책장을 넘긴다던지 하는 부분들은 큰 지장이 없었다. 물론 가벼운 물건을 드는것도 그렇다.
한편 타자를 치는 것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독수리보다 자연스러운 자세가 이내 곳 나왔다. 심지어 마우스 조작은 꽤나 정확한 Controllablity를 보였다.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탈때 서 있는 경우에도 팔이 부러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른 팔을 버스 안에 잡을 수 있게 세워져 있는 봉에 걸치고 서 있을 수 있었다. 역시 팔이 부러지지 않은게 천만다행이었다. 어쨋든 세상은 꽤 잘 설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6. 특정 동작후에 두 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치약 뭍히기 등에서 뚜껑을 들고 있는 과정은 생각지도 못했던 Pain Point였다. 한손은 무능력하고 다른 한손은 칫솔을 들고 있으면 치약 뚜껑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는 평소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적이 없다. 남자라면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서서 일을 보면서 폰으로 이런 저런 콘텐츠들을 보곤하지만 그 역시 불가능하다. 양 손이 함께 동작하는 모든 User Scene이 그렇다.
그런 상황들에서 우리는 입이나 옆구리 같은 보조 도구를 활용하게 된다. 바로 순망치한 [脣亡齒寒] 이다.
7. 뼈가 부러지면 피부가 멍이 들고 붓는다.
군대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그렇지만 보호관심사병 혹은 폭탄은 주변을 힘들게 한다. 뼈 역시 그렇다. 부러질꺼면 혼자 부러질 것이지 주변이 다 멍들고 붓기가 오른다. 하지만 그 손바닥도 손가락도 모두 오른손인걸 어떻게 하겠는가?
8. 오른손이 부러진 댓가를 내 왼쪽몸이 받게된다.
심오하다. 오른손이 부러졌는데 왼쪽이 괴롭다. 왼팔이 간지러운가? 왼손을 씻고 싶은가? 모두 불가능하다. 내 오른손 엄지를 탓해야할 뿐...
사회생활을 할때도 학교 생활을 할때도 군생활을 할때도 이런경우 참많았던 것 같다. 남때문에 댓가를 치르는 기분... 그런데 중요한건 그런 순간에 불평불만하는데 제일 쓸데 없는 것 같다. 모두가 편해지는건 부러진 오른손이 빨리 났게 도와주는 것 뿐이다.
사실 손가락이 부러지기는 했지만 삶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다. 배려도 많이 받고 격려도 많이 받고 있으니,
그리고 내가 완전히 오른손을 못쓰거나 왼손잡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지만 왼손사용의 삶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불편처럼 느껴졌다. 내가 주로 불편을 느낀 것은 왼손의 삶이라기보다는 한 손의 삶 쪽이었다. 한 손의 삶은 확실히 불편하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부분적 '한손의 삶'을 살게된 나에게 주변 분 중 한 분이 실제로 한손만으로 살아가야하는 분들을 위해 개발된 단추를 쉽게 채우는 도구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신것을 듣게되기도 하였다. 그 부분에서 아주 상투적이지만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서 이 세상은 결코 설계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만일 엄지손가락의 뼈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단추를 쉽게 잡글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은 영원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잠시 오른손의 부재로 인해 나는 잠시 왼손을 혹은 한손을 쓰는 사람을 살고 있고 이것은 3~4주가 지나 깁스를 풀면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손이 정상이 되고 나면 아마도 나는 구태여 엄지가 없이 단추를 잠그거나 왼손으로 글씨를 쓰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대신 내 뼈가 부러지고 나서야 알게된 내가 몰랐던 반대편의 세계에 대한 인사이트는 계속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