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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열 Jan 08. 2019

1. '자존감'이라는 이름의 화초

자존감 화초

"자존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신학기가 시작되던 9월 (캐나다 대학교는 학기가 9월에 시작해 이듬해 4월에 끝난다), 상담소를 찾은 A군이 내게 물은 첫 질문이다. 사실 여타 강의 또는 워크숍에 나갔을 때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다. 


"왜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지요?"


"저는 금년이 졸업반입니다. 하지만 졸업 후 뭘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1학년 때만 해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죠. 의욕도 없고 걱정만 늘다 보니 잠도 잘 못 자게 되고, 최근에는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가 잠드는 버릇까지 생겼어요. 늦게 잠들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건 더 힘들고요. 이번 주에는 도저히 일어나지를 못 해서 오전 수업을 전부 결강을 했습니다. 집에 계시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도 들고, 점점 악순환이 되는 것 같아요" 


나는 노트에 적은 그의 이야기를 다시 그와 함께 정리해본다.


"A군은 지금 졸업 후 취업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어떠한 것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막한 기분과, 걱정이 앞서서 수면에도 지장을 주고 있지요. 그리고 지금은 새벽까지 게임을 하는 습관도 생기게 되었어요.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볼 때, 자존감의 저하가 큰 원인이 된다, 고 이해해도 될까요?"


"맞아요" 


"그렇다면 A군이 생각을 했을 때, 오늘, 지금, 여기서, A군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그걸 안다면 여기에 왜 왔겠습니까 선생님". 


내 질문에 그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 아까 A군은 '악순환'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자존감의 저하가 행동의 저하를 낳고 그것이 지속되면서 자존감이 더 저하가 되는 현상. 맞나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적인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만약 자존감을 회복하지는 않더라도, 현재 A군의 자존감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 제시간에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그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한다. 나는 그의 대답을 노트에 적으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A군의 자존감이 더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일찍 일어난다고 해서 제 자존감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네요" 


나는 그의 대답에 수긍하며 보기와 같은 그림 한 장을 내민다.



"A군은 화초를 길러본 적 있나요?" 


"화초요? 아니오. 제가 길렀다가는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릴 거예요."


그는 내 질문에 의아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사실 겨울이 긴 토론토에서 화초를 기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화초가 건강하게 자라는데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글쎄요... 물?"


"맞아요. 물도 반드시 필요하지요. 또 어떤 게 필요할까요?" 


"햇빛도 받아야겠죠." 


"맞아요. 화초의 건강을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것은 물과 햇빛이에요. 그리고 튼튼한 화분이 있어야 할 테고요."


내 말에 그도 수긍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화초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요?" 


"뭐, 잘 보살펴주어야겠죠. 시들었다고 직접 치료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수술 같은걸 말하는 건가요?"


나는 의사가 메스를 들고 수술하는 시늉을 하며 묻자 그는 '네'라고 짧게 대답한다. 


"맞아요. A군의 말처럼, 화초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어요.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화초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함에 따라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자세를 고쳐 이야기를 계속한다.  


"하지만 갑자기 처음 화초를 기르기 시작하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에요. 제가 오늘 A군에게 화초를 선물했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그 화초는 제법 건강하지만, 누르스름한 이파리가 군데군데 섞여있어요. A군은 제가 준 그 화초를 집으로 가져가서 기르기 시작하고, 곧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없던 가족이 생긴 기분이죠. 얼마만큼, 자주 물을 주어야 하는지, 햇빛을 얼마만큼 받아야 하는지, 처음에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물어보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되지요. 혹시 화초의 건강이 더 나빠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해요.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A군은 집에 있는 화초의 습성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저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받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화초를 키우는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스스로 능숙하게 키워갈 수 있는 것이지요. A군도 집에 있는 화초가 더 이상 거추장스럽지 않고, 화초도 A군의 집 창가에 자리를 잡아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내 이야기에 A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존감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자존감을 완성, 유지하기 위한 직접적인 치료방법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자존감은 능동적 '행위'가 아닌 수동적으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우리의 자존감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자존감을 증진하는 것 보다도, 자존감이 잘 증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존감이라는 화초에 매일 정성스레 물을 주고, 흙을 갈아주고, 햇빛을 쬐여준다면, 비록 그 변화가 바로 일어나지는 않더라도, 자존감은 조금씩 건강을 되찾게 됩니다." 


그는 내 말을 이해했다는 듯 수긍하며 자세를 핀다. 


"자 그러면 우선 지금 A군의 자존감 화초가 어떠한 환경에 놓여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할까요?" 


나는 그에게 건네준 종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묻는다. 





Exercise: 위의 그림과 같이 종이에 화초를 그려 항목들을 하나씩 채워가 보자. 자리가 모자랄 경우 항목들을 다른 종이에 적어보자. 


1. 뿌리- 내 인생에서 기억나는 큰 (좋은 또는 나쁜) 사건들을 적어보자.

2. 해 - 감정이 상하는 일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적어보자.

3. 화분 - 내 삶의 균형 (예: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적어보자.

4. 물 - 내 삶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적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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