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화초
한 나라 서점의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성향과 전반적 사회의 트렌드를 알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매번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꼭 찾는 곳이 있다면 아마 대형 서점일 것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한국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있다면 아마도 심리 치료, 특히 자가 치유에 관련된 서적들이었다. ‘내 멋대로 살기’, 또는 ‘적당히 생활하기’ 같은, 남의 시선에 의식하지 않고, 사회의 암묵적인 강요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 한 편으로는 미니멀리스트적인 일러스트들과 잘 어우러진 짤막한 글들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과연 이런 책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걸까?’라는 궁금증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책들을 통해서 '어떠한 변화'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타인의 생활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원하는 걸까. 마치 퇴근 후에 피곤한 몸을 소파로 옮겨서 맥주 한 잔과 함께 보는 수목드라마처럼 말이다.
이러한 책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주제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자존감 치료였다.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의미하는 자아 존중감(이하 자존감)을 보다 효과적으로 성장시키는 방법에 관한 글들이 한 섹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유행처럼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게 되었고, 관심 또한 크게 늘어났다. 분명히 한 개인의 정신건강에 큰 기능을 하고 있는 자존감에 대한 관심 증가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한때 유행했던 ‘웰빙’ 열풍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시들해지는 것은 아닐지, 또는 유행이라는 이유로 정신 건강이 우리 모두에게 끼치는 영향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 염려가 되기도 한다.
정신장애의 원인을 설명하는 구조 (Framework)중 하나인 생물심리사회적 모델 (Biopsychosocial Model)에 따르면 질병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초래된다고 이야기한다. 자존감 또한 이 모델에 비추어 설명할 수 있는데, 한 사람의 자존감은 개인의 성향과 주어진 환경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잡혀가게되고, 그것은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궁극적인 정체성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 느끼는 삶의 만족감이나, 긍정적 또는 부정적 사고방식 또한 자존감의 건강함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심리치료를 이야기 할 때, 자존감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자존감을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존감이 성장해야한다는 것을 인지한다 하더라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고, 또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하나씩 들추다보면 그 방대함에 스트레스를 받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존감이 건강함은 내담자 심리 치료의 진행 속도에도 영향을 키친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자존감은 충분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자존감은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걸리는 감기처럼 갑작스럽게 아프고, 약을 먹으며 며칠 푹 쉬고나면 금새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존감이라는 이 커다란 존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나는 종종 내담자와 이야기를 할때 자존감을 화초에 비유하곤 한다. 햇빛이 잘 드는 온실 창가에 자리를 마련해주고, 매일 꾸준히 알맞는 양의 물을 주었을때 화초는 건강히 자랄 수 있다. 자존감 또한 화초를 기는 것 과 같 보살핌 필요하다. 단기간에 변화를 바라기 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한 관심과 정성으로 보살피는 것이, 자존감을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알맞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자존감이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앞으로 더 자세하게 설명 할 자존감 성장 환경 조성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가게 된다.
첫째, 현재 내가 가진 자존감의 건강 상태를 인지 (Recognize)
둘째, 나의 자존감 성장을 위한 적절한 환경을 설정 (Set a goal)
셋째, 내 자존감의 건강 상태를 이해 (Understand)
넷째, 나의 자존감의 성장 요령을 터득 (Troubleshoot)
이러한 단계를 충실히 밟아갈때, 궁극적인 다섯째, '나와 나의 자존감이 서로를 신뢰하는 유대관계 형성' (Rebuild the relationship)을 이룰 수 있다. 여기서 다시한번 유의해야 할 점은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는 점이다. 하루 열심히 화초를 가꾼다고 화초의 건강이 갑작스레 좋아지지 않는 것 처럼, 자존감 또한 작지만 확실하고 반복적인 성공을 거두어, 타인과 환경으로 인해 변화하는 것이 아닌, 나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자존감을 확립하는 것이다.
자존감은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걸리는 감기처럼 갑작스럽게 아프고, 약을 먹으며 며칠 푹 쉬고나면 금새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 치료는 말 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만약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화초를 가꾸는 것 처럼, 내 페이스에 맞추어 자존감 가꾸기를 실천해 본다면, 훗날 좀 더 파릇파릇하고 생기있는 자존감 화초가 되어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