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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열 Jan 26. 2019

3. 나의 자존감 화초는 얼마나 건강한가

자존감 화초



S양이 처음 상담소를 찾아왔을 당시 그녀는 20대 중반의 회사원이었다. 부모님과 남동생과 생활을 하다 몇 달 전 만나던 남자 친구와 함께 동거를 시작한 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실수를 할까 항상 걱정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두려워 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일쑤라고 설명했다.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다른 사람의 그녀 대신에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비록 그것이 그녀의 생각과 불일치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자신이 참아서 문제가 긍정적으로 해결된다면 그것으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자신의 의사 결정권이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는 연인 관계에서도 이어진다고 말했다. 


"제 남자 친구는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영어를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지금 학교에 들어가 있는데 종종 제게 숙제를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가 있어요. 처음에는 저도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어요. 저는 일을 하고 있는데 회사가 시외에 있어서 늦게 집에 돌아오는 날이 많은데, 그런 때는 퇴근 뒤에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남자 친구는 제가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있지요. 자신의 숙제를 도와주기를 바라면서... 물론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매번 저에게 부탁하는 것은 너무 스트레스가 되어요" 


"혹시 남자 친구에게 부담이 된다는 표현을 한 적은 있었나요?"

"당연하죠. 너무 피곤해서 웬만하면 그냥 제출하라고. 하지만 그러면 항상 다툼이 생겨요. 제가 자기를 무시하고 있다고 말하죠. 자기가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결국은 다투다가 죄책감이 들어서 도와주게 돼요. 하지만 항상 마음은 편치 않죠. 그래도 계속 싸움이 나는 것보다는 일단 도와주면 해결되니까, 라는 생각으로 하게 되어요." 


"S양은 숙제를 도와주는 것이 괜찮으신가요?"


"괜찮지 않아요. 하지만 달리 도리가 없는 것 같네요"


"S양이 피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숙제를 계속 도와달라고 한다... 그게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S양이 저번 시간에 가족들이 자신을 과잉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했어요. 부모님과 있을 때에도 자신의 의사 결정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고요. 설령 자신이 옳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의 의견에 반하는 행동은 더 큰 다툼을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싫더라도 부모님의 의사를 따르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할 때가 있다고 했어요. 그렇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종이를 내밀어 그녀를 포함한 그녀의 주위 사람들을 그려보라고 부탁했다. - 나는 종종 상담 시간에 미술을 사용하는 편이다 - 그녀는 그녀 자신을 왼쪽 편에 그리고 그 가운데 부모님과 동생, 남자 친구를 그림에 넣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S양의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녀는 주저 없이 부모님과 남자 친구 가리켰다.


나는 잠시 그림을 관찰한 다음 그녀에게 질문했다. 


"여기 그림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S양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녀는 잠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고는, 


"... 아무도 없네요"


라고 대답했다. 



위에서 S양은 자신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 중에서 S양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만약 S양의 의사 존중이 자존감이라는 화초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그 화초를 보살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당연히 보살핌이 없는 화초는 생기를 잃는다. 자존감 화초를 키우는 데 있어서 가장 첫걸음은, 현재 나의 자존감 화초가 생기를 잃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를 통해 자신의 자존감이 건강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존감이 건강하지 못한 경우, 우리는 '감정적 불편함' (emotional discomfort) - S양의 경우 다툼을 피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느끼는 감정 - 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존중하는 주관적인 마음’을 뜻한다. 내가 나 자신을 보았을 때 얼마나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이야기할 때 자신의 자존감의 위치를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내담자에게 물어볼 경우에는 조금 더 이해하기 쉽도록 스스로 ‘얼마나 내가 (나 자신에게 있어서) 괜찮은 사람인가’, 또는 얼마나 (나 스스로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보라고 설명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자존감은 어떻게 성립되는 것일까? 흔히 자존감은 ‘스스로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존감의 건강함은 오로지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 한 생물심리사회적 모델에 비추어 설명한 것과 같이 자존감은 나 자신의 생물학 (유전적인 요소)와 정신적 (또는 심리적인) 요소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요소가 함께 포괄적으로 작용하여 생성된다. 다시 말해 사람은 특정한 자존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닌, 유아기 시절부터 서서히 만들어가는 것이고, 특히나 유아기, 유년기 환경적 요소 - 부모님의 양육방식 및 사회적, 문화적 영향 - 는 자존감의 성립에 큰 영향을 차지한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자존감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바꾸어가야 할 것들도 물론 있겠지만, 환경적, 그리고 사회적 변화도 함께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S양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부모님의 과잉보호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언급이 된다. 그녀와 그녀 부모님과의 관계 그리고 그녀와 그녀 남자 친구의 관계를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그녀의 자존감 성립에는 - 그녀가 의사결정권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 감정 - 그녀의 환경적 영향력 (부모님)도 함께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존감이 낮은 것은 내 책임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자존감 성장의 목적은 누군가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자존감이 원하는 위치에 와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끌어올리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변화에 있어서 불편한 진실은, 나의 내적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점이다. 물론 우리의 자존감은, 타인과 주변 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외적의 영향력과 상관없이 내가 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건강한 자존감을 유지해가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아닐까? 



Exercise:  지금 나의 현재 자존감을 측정해보자. 종이에 아래와 같이 10cm의 선을 긋고 왼쪽 끝을 0, 오른쪽 끝을 10으로 표기한 후, 다음 문장들에 얼마만큼 동의하는지 표시해보자. 마지막으로 세 항목의 수치를 합산한 후 3으로 나누면 자존감 평균치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얼마나'라는 질문에 최대로 충만했을 경우가 10이고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경우가 0이라고 했을 때 0과 10 사이에서 자신의 현재 자존감을 표기하면 된다.)


a.  나를 (얼마나) 존중한다.

l-------------------------------------------------------------------------l

0                                                                                                    10


b. 나는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l-------------------------------------------------------------------------l

0                                                                                                    10


c. 나는 (얼마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l-------------------------------------------------------------------------l

0                                                                                                    10


나의 현재 자존감 평균 수치: a + b + c / 3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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