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골방으로 들어간다. 안은 어둡고, 침침하다. 회색빛 콘크리트 벽으로 된 두 평 남짓한 크기의 빈 방 안에는, 문 반대편 벽에 어깨 높이로 달려있는 조그마한 창문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문을 닫자 순식간에 '소리'와 단절되는 경험을 한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소리'라는 사물을 빨아드린 것처럼,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순간 청력을 상실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불러본다. - 길버트 오설리반의 곡인데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이내 내 귀에서 내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어지간히도 방음이 잘 되는 것으로 보아 분명 견고한 문과 창틀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다,
잠시 비좁은 방을 시계방향으로 둥글게 걸어본다. 이러한 골방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방 밖에서 시달렸을 일에서 약간의 해방감도 느껴진다. 가끔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도 하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지금은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것 같다. 잠시 바닥에 누워본다. 바닥이 조금 차다. 바닥에 깔아놓을 담요도 덮고 잘 이불도 없다. 누워서 팔과 다리를 벌려 대(大) 자 모양을 만들어본다.
침묵,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시계가 없는 그 방에서 시간에 대한 관념을 점점 잊어버린 채로. 해가 지면 그나마 창문을 관통해 들어오는 빛도 사라지고 암흑에 잠긴다.
그렇게 첫 며칠이 지난다.
언제부터인가,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사실 이 작은, 완벽하게 밀폐된 골방에서 무언가 흥미를 끌 만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조차 빛이 들어오는 낮에나 가능한 것이지, 해가 지면 이 방은 완벽한 어둠으로 가득 찬다. 사실 빛이 있다고 해도 별반 다른 것은 없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모양의 정육면체의 방에, 바닥과 천정을 포함해서 특징이 있다면 문이 달린 한쪽 벽과 반대편 벽에 달린 작은 창문뿐이다. 회색이라 생각했던 벽은 때론 옅은 푸른빛을 띠기도 하는데 그것도 빛의 밝기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지라 그 색을 정의하기가 어렵다. 철로 된 문조차 벽과 같은 색깔을 띠고 있어 얼핏 보면 그것이 문인 지조차 알아채기 힘들지만 쇠로 된 문 손잡이와 경첩이 그 문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여전히 가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보지만,
이내 그만둔다.
한참 동안 창 밖을 바라본다. 분주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고, 그 사이에는 드문드문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도 보인다. 다들 바삐 어디론가를 향하고 있다. 하나같이 정돈된 머리에 갓 다리미질을 한 듯한 셔츠와 바지, 검은색 구두. 그리고 한 손에는 A4용지 사이즈의 골판지 색 서류철을 든 채 이 골방 옆을 지나간다. 저만치서 여럿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아는 사람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들리지 않는다. 귀를 창틀 가까이에 대 본다.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내 포기하고 벽에 기대어 앉는다. 이대로 해가 지면 잠이 들 것이다. 언제부턴가 방구석에 몸을 기대어 잠이 드는 습관이 생겼다. 춥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다. 단지, 좀처럼 바닥에 누울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문득 내 모습이 어떨까 궁금증이 든다. 하지만 거울이 없는 이 방에서 내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손을 얼굴로 가져가 더듬어본다. 얼굴이 차갑다.
회색 벽을 빤히 쳐다본다. 방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해가 지면 방이 소리 없이 조금씩 좁아졌다, 아침이 되면 이내 원래의 크기로 돌아오는 것 같다.
해가 지면 다시 찾아오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몸을 벽에 기대고 앉아서 철문 쪽으로 -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철문이 있는 쪽으로 생각이 되는, 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 시선을 가져간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문을 두드린 것이 언제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