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화초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에 의해 처음 사용된 '자아 존중감'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존중하는 주관적인 마음’을 뜻한다. 내가 나 자신을 보았을때 얼마나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 소위 스스로 ‘얼마나 내가 (나 자신에게 있어서) 괜찮은 사람인가’, 또는 얼마나 나 스스로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인가’를 이야기할때 자신의 자존감의 척도를 대략 측정할 수 있다. 여기서 '얼마나'는 자기 자신의 자존감 평균 (또는 기준)치를 나타낸다. (만약 자존감이 최대로 충만했을 경우가 10이고 자존감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경우가 0이라고 했을때 0과 10 사이에서 자신의 현재, 또는 평균적 자존감을 가늠할 수 있다.)
자신의 자존감을 측정할 수 있는 예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를 (얼마나) 존중한다.
나는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얼마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자존감은 어떻게 성립되는 것일까? 흔히 자존감은 ‘스스로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존감의 건강함은 오로지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 한 생물심리사회적 모델의 예제와 같이 자존감은 나 자신의 생물학 (유전적인 요소)와 정신적 (또는 심리적인) 요소 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요소가 함께 포괄적으로 작용하여 생성된다. 다시 말해 사람은 특정한 자존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닌, 유아기 시절부터 만들어가는 것이고, 특히나 유아기, 유년기 환경적 요소 (부모님의 양육방식 / 사회적 / 문화적)는 자존감의 성립에 큰 영향을 차지한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자존감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바꾸어가야 할 것들도 물론 있겠지만, 환경적, 그리고 사회적 배경이 뒷받침 해 주어야 한다.
‘칭찬’을 예로 들어보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 솔직한 감정의, 노력을 지향하는 칭찬은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인간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한 자존감을 성립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누가 보아도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를 생각한다면, 칭찬을 망설일 이유가 없겠지만, 타인을 칭찬하는 행위는 우리에게 다소 낮설은 행위이다.
토론토에서 간혹 한국 가족분들과 상담세션을 하게되면 공통적으로 느끼게 된 것이, 한국 부모님들께서는 칭찬의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을 떠나, 칭찬 차체를 매우 아끼신다, 는 점이었다. 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은 아마도 문화적 차이;자신 개선 (self-enhancement)에 초점이 맞춰진 문화와 칭찬으로 인한 사회적 경쟁구도에서 도태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녀에 대한 염려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염려로 인한 지속적인 꾸중은 '부모님의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라는 요소가 자녀의 자존감의 일부로 생성된다. 같은 이유로 지나치게 결과에 치우친 칭찬 또한 자녀에게 부담감이 될 수 있고, 불필요한 불안을 안길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자신의 가까운 주위 사람들 (예: 부모님)과 문화적 요소가 우리의 자존감 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이다. 또한 만약 앞서 말한 예의 부모님의 불안감을 동반한 자존감이, 자녀의 자존감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그에 따른 연쇄적인 작용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낮은 것은 내 책임이 아니지 않은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만약 나 자신의 자존감이 원하는 위치에 와 있지 못하다면, 그것을 끌어올리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우선적을 찾는것이 첫 단계이다. 변화에 있어서 불편한 진실은, 나의 내적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라는 점이다. 물론 우리의 자존감은, 타인과 주변 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외적의 영향력과 상관 없이 내가 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건강한 자존감을 유지해가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