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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열 Feb 18. 2020

상대방에게 독심술을 강요하지 말자

생각

"너는 떡볶이를 좋아하지!"

대인관계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인지적 오류 (Cognitive Distortion)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독심술 (mind reading) 일 것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민감한 사람일수록,  사람의 마음을 읽어보려 부단히 노력을 한다. '내 말에 화가 났니', '기분이 안 좋니', '내 옷차림이 이상하니', '내가 체중 늘은 게 티가 나니', '범인은 이 안에 있니' 상담사 입장에서 내담자가 독심술을 익히려는 시도 (또는 연습하려는 시도)를 되도록 피하라고 권장하는데. 결과적으로 불안감을 자극하는 나쁜 습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의 마음을 읽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 독심술 시도를 포기하는(?)것만으로도, 불안감을 제법 줄일 수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당연히 그런 거 없다  불가능하다. 아마도 유일한 방법 - 그것도 확실한 방법이 아니라 그나마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 - 은 직접 물어보기 정도가 아닐까? (그마저도 상대방이 안알랴줌 솔직하게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면, 모든 것은 미궁 속으로...)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들 생각을 읽으려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잠시 반대로 생각해보자.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사람들 역시 내 마음을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때로 타인이 자신의 마음을 눈치채 주기 바랄 때가 있다. 전화를 끊고 싶은데 상대방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할 때나, 어서 술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가고 싶은데 다들 2차 3차를 부를 때, 불편한 질문들을 꼬치꼬치 캐묻을 때... '이제 그만 좀 했으면'이라는 신호를 몸짓 발짓을 해서 표현해 보지만 하지만 그 신호는 전달되지 못하고 공중에서 분해되어 사라진다. 마치 완벽한 방음이 된 공간에서 SOS 사람 살려! 를 큰 소리로 외치다가 포기하고 주저앉는 느낌. 그리고는 내 마음을 눈치채 주지 못한 사람들이 원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내가 직접 표현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사실 나 또한 이러한 인지적 오류 - 상대방이 나의 마음을 읽어줄 거라 바라는 마음 - 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번은  청소년 상담 세미나를 마치고 친구와 감자탕을 먹으러 자리를 뜨려 할 때, 자녀 걱정이 굴둑 같으신 한 부모님께서 나를 붙잡으시고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신 적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세미나 진행으로 지친 탓에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실례가 될까 말을 끊지는 못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 난처해하는 마음을 상대방이 읽어주기를 바랬다. 결국 세미나 주최자 분들이 '선생님 피곤하실 텐데 이제 그만 보내주세요'하고 대신 표현 해 주실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너무 길게 이야기를 끌었다'며 내게 고개 숙여 사과를 하시는 모습에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다른 사람이 나서서 대신 표현 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상대방이 눈치채 주기를 바라는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만약 내가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은 길게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요,  괜찮으시다면 여기로 - 명함을 건네며 - 따로 연락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라고 솔직하게 표현했더라면, 서로가 미안한 상황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도, 타인이 나의 마음을 읽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리 내어 말로 표현하기다.



2020년 신년 다짐으로 좋은 것은 좋고 싫은 것은 싫다고,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조금 더 명확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 보기로 했다. 가끔은 내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상대방은 내 마음을 읽을 수 없다'라고 나에게 일러줘 보기로 했다. 만약 누군가와 텔레파시(?)로 교감을 하려고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면, 스스로에게 '소리 내어' 표현해보자고 상기시켜주는 건 어떨까?




P.S. 친구에게 독심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신경을 곤두세워 서로의 눈치를 보는 썸 타는 연인이라면 상대방이 말하지 않아도 기분을 알아챌 수 있다!"라고 그가 설명했다. 물론 그러한 특수한 상황에서는 확률적으로 높아지겠지만... 우리가 세상 모두와 썸을 타는 게 아닌 이상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아니면 설마 너, 만인의 연인이 되려는 속셈인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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