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쓰민 Feb 29. 2024

난 네가 글을 쓰면 좋겠어

안 쓰면 후회할 사람들

기능을 상실한 사람.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


글쓰기는 물론 누구나 써도 좋은 일이지만 특히나 이런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꼭 글을 써보라 권하고 싶다.



17년 차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한동안 자연인 내 이름 석자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명분이 있어 버틸만했다. 백수가 더 바쁘다고 재테크 입문에 독서 모임 등으로 자기소개할 시간마다 “퇴사 0개월 차고요. 시험관 준비 중입니다.”라며 하는 일을 시험관 준비 중으로 대답했으니 얼마나 웃긴 대답인가!


난 결국 임신은 하지 못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출산 경험은 없다. 3년간 쉼 없는 시도와 실패는 당당했던 마음과 건강한 몸을 마디마디 부러뜨려 놓았고, 꽤 오래 그 시간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 시도 속에 딱 한 번 산모 수첩을 받아 보았다. 아기집이 보이면 내지는 심장 소리가 들리면 받을 수 있는 까다로운 기준에 비할 데 없이 초라한 산모 수첩 말이다. 그래서인지 기쁨보다 ‘산모’라는 저 두 글자 때문에 귀한 몸이 된 수첩이 괜스레 밉기도 했다. 그 마음이 들켜버렸는지 오래지 않아 그 수첩은 쓸모를 잃었다. 기념하긴 너무 짧았던 찰나의 기쁨과 버릴 수 없는 미련 때문에 꽤나 오래 서랍장 깊숙이 묻혀있던 수첩은 결국 얼마 전 이사 때 마침내 버릴 수 있었다. 미련도 기념도 아닌 그냥 있었던 일로 인정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요즘이야 불임을 단지 여성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지만 왠지 착상 이후는 오롯이 나의 영역인 것 같았다. 규정할 수 없는 원인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지만 실패가 쌓일수록 내 문제라는 확신이 짙어져 그때마다 나의 여성성이 한 거 풀씩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난 퇴사의 명분도 잃었고, 더 이상 여자도 아닌 그런 잉여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렇듯 일도 없고 아이도 없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은 자존감과 자존심이 서로 바닥 찍기 시합이라도라도 하듯 깊은 상실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글쓰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냄으로 나조차 스쳤던 감정과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글을 씀으로 나와 분리되고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험. 그로 인해 우린 그 이야기 속에서 사건과 감정을 떼어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나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또 글쓰기는 영원한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 우리의 이야기가 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어 줄 수 있고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할지언정 위안은 줄 수 있지 않을까? 

생명을 잉태하지 못한다는 핸디캡은 매일의 창작으로 영원히 남을 글을 기록하고 그 이야기로 나를 찾고 바로 세우울 수 있다는 것은 기능을 상실한 사람.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에겐 가장 큰 희소식일지도.

작가의 이전글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