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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Mar 16. 2021

독일에서 실감한 BTS와 블랙핑크의 무서운 존재감

최근 내 또래의 독일인 친구를 새로 사귀었다.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전무한 토종 바이에른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한국에 엄청 유명한 보이그룹 있지?”라고 물었다. 나는 자연스레 방탄소년단(BTS)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오, 맞아! 그리고 여자 그룹도 있지?”라고 반응했다. 이젠 놀랍지 않다. “응, 맞아. 블랙핑크!”


장족의 발전이다. 그가 한국을 듣고 떠올리는 아이돌 그룹이 누군지 자연스레 맞히는 수준이 됐다니. 학창 시절 동방신기의 팬이었던 나는 그들이 2명, 3명으로 나뉜 후 아이돌에 관심이 사라졌다. 적어도 내겐 동방신기만한 아이돌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돌이 그저 그랬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원더걸스, 슈퍼주니어, 샤이니 등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아이돌 세대다.


BTS가 전 세계에서 난리라고 해도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축구기자로 지내며 그릇된 ‘국뽕’을 자주 경험했기에 BTS나 블랙핑크 신드롬도 결이 다르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독일 뮌헨으로 오기 전 ‘독일에서 방탄소년단이 그렇게 인기래’라는 말만 최소 다섯 번은 들었던 것 같다. 물론 난 냉소를 지었다.


2018년부터 뮌헨에서 살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있던 유유미(Yuyumi)라는 한식집에 갔다. 야외에 자리해서 비빔밥을 먹는데 옆자리에 10대 소녀 두 명이 앉았다. 가방에서 우리나라 아이돌로 보이는 사진들을 아주 소중하게 꺼내며 수줍게 웃었다. "꺄아악"하며 기뻐했다. 심지어 서로가 기뻐하는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곧 조용히 사진을 한 장 한 장 음미했다. 마치 어떤 의식 같았다. 나는 열심히 흘끔거렸다. 사진 속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하나는 캐치했다. 그들이 계속 반복한 단어. “베테에스(BTS의 독일식 발음)”였다. 난 친구에게 “야, 베테에스가 뭐야?”라고 물었다. 친구는 나를 원시인 보듯 쳐다봤다. 곧 “방탄소년단이잖아!”라고 다그쳤다. 방탄소년단이 BTS라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속으로 좀 놀랐다. 실제로 독일에서 BTS 팬들을 보다니. 그래도 냉소적인 마인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얄팍한 변명을 하자면, 한식은 독일에서 ‘힙한’ 음식으로 취급받는다. 대중적인 아시안 음식은 베트남식이고, 일식은 고급 음식으로 분류된다. 한국은 힙한 음식. 어딘가 마이너 하지만 마니아층이 탄탄한 이미지. K-POP도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한식당 정도는 가줘야 접할 수 있는 힙한 존재일 거라고.



나의 이런 마인드는 4년 동안 와장창 깨졌다. 뮌헨 스트릿 페스티벌에서 블랙핑크의 뚜두뚜두(DDU-DU DDU-DU)노래가 흘러나오고, 에데카(독일 대형 마트)에서 BTS 얼굴이 크게 박힌 매거진을 판매한다. 뮌히너프라이하이트역 광장에선 청소년들이 종종 춤 연습을 하는데 십중팔구 K-POP이다. 블랙핑크의 뚜두뚜두는 내가 듣고 싶지 않아도 뮌헨 곳곳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노란 머리의 독일 소녀들이 팔을 앞으로 쭉 뻗고 총 쏘는 듯한 춤을 추는 모습도 심심찮게 봤다.


독일인 남자친구는 가끔 내게 “아니, 우리 유튜브 순위 1위가 BTS 2위가 블랙핑크야. 이게 가능해?”라며 놀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의 유튜브 계정을 보면 정말 그렇다. 아마 그들이 신곡을  때마다 저렇게 덩달아 상위에 오르는  같다.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블랙핑크 다큐멘터리도 독일 미디어에서 앞다퉈 다룰 정도다.


특히 BTS의 인기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한창 유행했던 게임 어몽어스에서 BTS로 시작하는 아이디를 여러번 봤다. 내가 한글로 안녕 이라고 쳤더니 난리가 났다. 뮌헨에 있는 버블티 가게에서는 BTS 멤버의 생일에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바이에른주 지역 라디오 Bayern3에서 진행자 마티아스 마투쉬크가 BTS를 향해 "북한으로 2년 동안 휴가나 가라"식의 인종차별 발언을 던졌다. 소규모 라디오 방송이었지만 곧 마투쉬크의 개인 SNS에는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독일 유력지 <프랑크푸어터 알게마이네차이퉁>, <쥐트도이체 차이퉁>, <슈피겔> 등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결국 Bayern3는 공식 사과를 전했지만 이미지는 한순간에 추락하고 말았다. 화가 많이 나는 한편, BTS가 독일에서 가진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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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라디오 방송국이 세계적인 항의에 휘말린 이유'

나는 지금까지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국뽕 주사’는 손흥민이라고 생각했다. 토트넘에서 골을 끝내주게 잘 넣고 최고의 공격수 후보에 심심찮게 오르니까. 그 생각마저 바뀌었다. 독일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친구의 제안으로 ‘한국어 자기소개 콘테스트’ 심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6명이 있었는데, 개중 4명이 BTS를 좋아해 한글을 배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오. 마. 이. 갓.’이었다. 손흥민 때문에 한글을 배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


실제로 BTS와 블랙핑크를 좋아해 한글을 배우는 독일인이 급증했다고 들었다. 한글학교 선생 인력이 부족해 나에게까지 수업 요청이 들어왔던 적이 있다. 당장 언어교환 어플만 켜도 한글을 배우려는 독일인 프로필에는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 이름이 십중팔구 적혀있다. 뭐, 놀랍지도 않다. 구글 검색창에 Deutschland(독일) B 까지만 써도 연관 검색어로 Deutschland BTS와 Black Pink가 나란히 뜨는걸.




독일에서 4년 살며 경험한 그들의 인기는 이토록 어마 무시하다. 동방신기 이후 아이돌에 관심을 끊었던 내가 느낄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심지어 한국도 아닌 독일에서! 축구로 글 쓰는 입장에서 이렇게 비교하고 싶다. 한국의 K-POP은 독일의 분데스리가와 비슷한 것 같다. 우리가 독일 하면 맥주와 축구를 생각하는 것처럼, 외국인들은 한국 하면 BTS나 블랙핑크를 자연스레 떠올리니 말이다.


얼마 전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블랙핑크와 BTS는 굳이 팬이 아니어도 인정하고 응원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그 말이 딱 맞다. 지금처럼 건강하게, 멋진 퍼포먼스를 계속 전 세계에 뽐냈으면 좋겠다. 또 독일 유튜브 상위권에 우뚝 서는 저력을 보여줘. 제.한.B (제발 한국인이면 BTS와 블랙핑크를 응원합시다)!


사진=블랙핑크 공식 SNS, 방탄소년단 공식 SNS, <슈피겔>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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