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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Jan 23. 2021

독일 취재진의 '지역뽕'에 취한 것 같다

라이프치히 입단 후 한국 반응은 어때?
길에서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해줬어?

황희찬은 당황했다. 지난해 8월, 그의 RB라이프치히 입단 기자회견에서 한 독일 기자가 던진 질문이었다. 라이프치히 자부심이 가득 들어간 질문. ’겸손’이 몸에 배인 젊은 한국 축구선수는 얼버무리다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재은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내게 책임을 돌리다니! ‘으악, 얄미워’라며 고개를 푹 숙인 나는 우물쭈물하다 결국 이렇게 답해버렸다. “반응은 좋다. 라이프치히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 가며 강팀 반열에 올랐으니까.”


너무 솔직했나. 아마 독일 취재진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다. 그들에게 라이프치히는 챔피언스리그 4강이나 16강에 오르지 않아도 ‘강팀’일 테니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분데스리가는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 선에서 끝나는 걸. 라이프치히는 그나마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 지금은 첼시로 떠난 티모 베르너 덕분에 이름을 알린 정도지.




나는 이렇게 독일 취재진의 질문에 묻어나오는 지역팀(담당 구단)을 향한 자부심과 애정을 ‘지역뽕’이라 정의한다. '국뽕'과 결이 비슷하다. 어쩌면 당연한 분위기다. 서울에 살면서 전주, 부산, 수원, 제주도까지 출장 다니는 한국 취재 환경과 달리 독일은 지역별로 해당 지역 축구팀의 담당 기자가 있다. 독일이 워낙 커 우리나라처럼 가벼운 출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뮌헨을 예로 들면, 바이에른 뮌헨 담당 기자들은 대부분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개중 또 대부분은 바이에른의 오랜 팬이다. 축구가 문화로 자리 잡은 독일에선 흔한 일이다. 그러니 내 지역팀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클까. 더군다나 축구 좀 하기로 유명한 선수가 '우리팀'으로 이적 한다면. 당연히 그의 생각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엘링 홀란드가 도르트문트에 입단할 때도 도르트문트 담당 취재진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부심 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평소 도르트문트 축구를 봤나?”, “도르트문트의 환상적인 홈구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마르코 로이스, 제이든 산초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니 어때?” 등등. 마지막 질문에 “다 환상적이다. ‘모든’ 선수와 뛸 수 있어 기쁘다”라고 대답하는 재치있는(혹은 눈치없는) 홀란드를 보며 웃음이 났다.


킬 지역지 기자는 심지어 이재성에게 “이제 이곳이 너의 제2의 고향 같니?”라고도 묻는다. 이재성은 킬에서 뛰는 내내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지역 라이벌 함부르크가 이재성에게 관심을 보이자, 킬 담당 취재진은 “제발 함부르크만은 안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대놓고 드러낸다. 또 다른 일화가 생각났다. 백승호가 지난해 다름슈타트로 이적한 후 약 20분 동안 현지 취재진과 소박하게 미디어 데이를 가졌다. 바르셀로나부터 군대까지,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날 올라온 지역지 기사의 첫 줄. ‘조용하고, 평화로운 다름슈타트가 마음에 든 백승호.’



팀에 대한 애정, 지역 자부심을 함부로 드러내선 안 되는 국내 축구 현장의 분위기와 전혀 딴판인 분데스리가 취재 현장.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질문을?!’ 하며 화들짝 놀랐는데 이제는 좀 익숙해졌다. 그들의 '지역뽕'에 취했나보다. 무엇보다 나는 지역 애정이 아주 대단한(!) 뮌헨에 살고있으니 적응이 수월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황희찬의 입단 기자회견이 조금 후회가 남는다. 그때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현대 예술을 이끄는 라이프치히는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도시다. 분데스리가에 등장한 이후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RB라이프치히 역시 황희찬의 이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음... 너무 갔나?


사진=라이프치히 기자회견 캡처, 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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