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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Jan 28. 2021

글 쓰는 축구선수 이재성, 어쩜 이렇게 한결같을까


지금까지 다양한 선수의 집을 방문했다. 중요한 경기나 훈련을 앞두고 있는 선수들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집 밖에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 그들을 인터뷰하기에 최적화된 장소는 집이다. 선수 입장에선 인터뷰를 위해 따로 준비하고, 어딘가로 나가지 않아 편하고, 취재하는 입장에선 환경에서 일어나는 각종 변수가 최소화돼 편하다. 


지난해 1월에는 이재성 선수의 집에 방문했다. 내가 인터뷰를 가장 많이 진행한 선수 중 하나다. 그의 집은 킬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했다. 선수들의 집을 샅샅이 살펴보는 건 아니지만 타 선수들과 다른 점 하나를 발견했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노트북과 책, 그리고 노트.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사진을 업로드하는 방법 등을 전혀 모르는 선수들을 종종 본 적이 있어 이재성 선수의 식탁 위 풍경은 더욱 생경했다. 평소에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독일어 공부도 하고,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연재하는 <이재성의 축구일기>를 위해 틈틈이 메모한다고 했다. 


이재성의 독일어 노트

그 이야기를 듣고 되물었다. "아, 메모한 걸 보내면 거기서 정리해서 송고하는 건가요?" 이재성 선수는 대답했다. "아니요, 그걸 토대로 제가 직접 다 써요. 담당자님께 보내드리면 거기서 좀 어색한 문장만 수정하는 정도예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본인이 직접 쓴다고? 나는 이제껏 축구일기를 대신 써주는 사람이 있는 줄 알았다. 이런 형식의 일기(칼럼)는 '보통' 선수의 구술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정리해 내보내기 때문이다. 축구선수나 감독의 자서전도 마찬가지고, 과거 야구선수 류현진의 MLB 일기도 그랬다. 운동으로 시작해 운동으로 끝나는 프로 선수가 시간을 내 노트북을 두드리는 건 쉽지 않으니까. 그런데 평소에 이렇게 메모까지 해두고, 그 긴 일기를 다 쓴다니.


이 축구 일기는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팬분들은 좋아할 거야'라던 지인의 말에 시작됐다. 처음에는 부담도 되고, 자신이 없었지만 그 말에 용기를 내 축구 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놀란 한편, 참 '이재성스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이재성은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다. 2017년, 전북현대에서 뛸 때 했던 인터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축구 매거진 <포포투>에서 일하던 시절이다. K리그 최고의 구단 전북현대 특집호를 기획해 기자 선배와 함께 클럽하우스를 찾아 하루 종일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 클럽하우스 관계자를 만나 인터뷰했다. 그때 이재성 선수를 처음 만났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전북이 FA컵 32강에서 떨어진 이야기가 나왔다. FA컵 탈락은 아쉽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K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이지 않냐고 물었다. 이재성 선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히려 힘들어요. 전북이라는 팀은 그렇게 늘 세 대회를 치르는데 익숙해서 제 몸 컨디션과 패턴도 거기에 맞춰져 있어요. 항상 주중과 주말에 경기를 치르는 게 익숙하죠. 그런데 FA컵에서 탈락하며 그런 패턴이 어떻게 보면 망가진 거잖아요. 제 몸은 더 많은 경기수와 훈련을 원하고 있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컨디션 유지에 특별히 더 신경을 써야 해서 더 힘들어졌어요. 전북 선수들끼리 자체 경기를 치르면서 그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사실 자체 경기가 더 빡세요, 하하." 그의 대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주중과 주말에 계속 경기를 치르느라 지치고 컨디션 관리가 어렵다는 타 선수들의 목소리, 선수들 체력 관리나 부상 관리 때문에 스트레스라는 감독들의 불만만 들어왔는데. 아, 이재성이 괜히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니구나. 이 사람 참, 꾀가 없다.


재작년에 잠시 한국에 들어갔다. 마침 분데스리가 휴식기라 이재성 선수도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독일에서 첫 시즌을 보낸 그에게 인터뷰 요청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이재성 선수가 한국에 들어온 다음 날 오전, 그와 만났다. 한국에서 일정을 물었다. 나와 인터뷰를 하고 또 JTBC 방송국에 가서 인터뷰를 하고, 다음 날 또 인터뷰 일정이 있단다. 들어오자마자 그렇게 인터뷰를 많이 하면 피곤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또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저는 사실 인터뷰를 좋아해요. 기자분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저 또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저도 몰랐던 점들을 알아가기도 하고요." 보통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하는 선수는 대부분 신인이거나, 어리다. 빨리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인터뷰 언제 해요?"라며 눈을 반짝이는 풋풋한 이들. 반면 이재성은 프로 데뷔 7, 8년 차다. 국가대표이자 스타 반열에 오른 선수다. 그런 선수가, 저런 이유로 인터뷰를 좋아한다니. 괜히 기자 앞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재성의 친형 이재혁 씨가 증인이다. "재성이는 인터뷰 웬만하면 다 하려고 해요. 거절을 잘 안 해요. 야, 너 힘들지 않겠어?라고 제가 물어보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배움의 자세를 갖췄다는 점이다.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나 필요한 점도 당연히 알고 있다. 그걸 덮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고 늘 열린 자세로 주위를 경청하고 경험한다. 거기서 얻는 배움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이재성 역시 이런 배움의 미학을 아는 사람이었다. 

 

서울 어딘가에서 만났던 이재성

짧은 일화가 하나 더 떠올랐다. 독일 매체 <킬러 나흐리히텐>이 이재성과의 인터뷰를 기획했다. 독일어가 아직 유창하지 않은 이재성 선수를 배려해 <킬러 나흐리텐>의 기자는 나와 함께 인터뷰를 구성해 한국어로 질문을 보냈다. 이재성이 여기에 한국어로 대답하면 내가 독일어로 번역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이재성은 독일어로 답변을 보내왔다. 독일 기자도, 나도, 많이 놀랐다. 답변 속에는 자신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올 시즌에는 독일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던 이재성은 자신의 다짐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람 참, 변함없이 우직하다. 


그가 연재하는 <이재성의 축구 일기>는 이런 그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지점이다. 2019년 2월에 시작한 <이재성의 축구 일기>에는 벌써 33편이 올라와있다. 일기는 짧지 않다. 똑같이 반복되는 축구선수의 일상 속에서도 이재성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려 노력한다. 일기에서 그의 말투가 고스란히 묻어나와 진정성이 더 느껴진다. 최근에는 Q&A 코너까지 만들어 독자들과 소통도 활발히 한다. 배움의 시간까지 더한 셈이다. 일기 한 편 쓰는데 얼마나 걸리냐고 묻자 2, 3시간 정도란다. 앉아서 생활하는 게 익숙한 나도 그만큼 집중해서 글 한 편을 쓰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가 평소에 일기를 위해 틈틈이 기록해두는 시간까지 더하면 4, 5시간은 될 거다. 이재성은 "뭐든 처음이 힘들지 하다 보면 적응이 돼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이렇게 오래 앉아있던 적이 너무 오래돼서... 지금도 가끔 힘들지만 생각하고 글 쓰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그리고 킬에서 알고 지내는 학생들과 어울리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저 역시 좋은 영향을 받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치여 지내다가 저의 축구 일기를 읽을 때면 편안해진다는 말이 참 좋았어요!"라며 신나 한다. 이렇게 이재성은 글의 힘을 배웠다. 


일기와 메모의 습관 덕분일까? 나는 이재성 선수와 인터뷰하는 시간이 지루했던 적이 없다. 그렇게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늘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꾸밈없이 또 부족함 없이 전달한다. 보통 선수들과 인터뷰를 할 때 내 질문에 충분한 답변이 오지 않으면 뉘앙스를 바꿔 다시 질문을 던지는데, 열에 아홉은 방금 전과 같은 대답을 한다. "아까도 말했지만"이라는 문장과 함께. 이재성은 다르다. 그 뉘앙스에 어울리는 색다른 대답을 한다. 아마 이재성을 인터뷰한 모든 이가 느꼈을 거다. 취재진이 원하는 이상의 답변을 해주는 이재성 덕분에 늘 풍성한 인터뷰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이번 브런치 글을 위해 이재성 선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쉬는 날 좀 귀찮게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에요. 질문은 항상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이유가 되어서 기뻐요!" 


사람 참, 한결같다. 




사진=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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