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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Aug 02. 2021

내가 기억하는 뮌헨의 냄새


후각의 힘은 강하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고소하게 마르고 있는 빨래의 냄새를 맡으면 서울 송파구에 살던 때가 떠오른다. 어린 동생과 거실에서 놀고, 엄마는 빨래를 널고 계신 주말 풍경이 그려진다. 한국에서 매주 가던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떠올리면 기자석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축축한 냄새가 코끝에 맴돈다. 냄새가 그날의 기억을 소환하기도, 그날의 장면이 후각을 자극하기도 한다.


뮌헨에 처음 도착했던 바로 그날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가 있다. 2014년 7월 말, 캐리어 두 개를 들고 뮌헨 공항에 도착했다. 친절한 버스 아저씨 덕분에 안전하게 공항버스를 타고 중앙역에서 내렸다. 이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할 자신이 없어 냉큼 택시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Messestadt West(메세슈타트 베스트)역에 있는 비즈니스호텔. 일주일 동안 머무를 곳이다. 유로를 처음 만져보는 나는 잡히는 대로 택시 아저씨에게 건넸고, 아저씨는 "이렇게 큰돈을 막 주면 안 돼"라며 거슬러주셨다. 방에 가서 짐을 풀자 저녁 6시가 넘었다. 상점이 모두 8시에 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근처에 있는 거대한 쇼핑센터로 가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샀다. 싱싱한 과일과 빵. 그걸 먹고 잠에 들었다. 시차적응이 안 되어 새벽 4시에 깼다. 가슴이 콩닥콩닥. 씻고, 준비하고, 조식을 먹으러 6시에 내렸다. 비즈니스호텔은 다른 호텔에 비해 일찍 조식을 시작하는 편. 난생처음 보는 치즈와 빵과 시리얼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대략 3접시 정도 먹은 것 같다. 커피도 맛있어서 웨이터가 커피잔을 채워주는 족족 쭈욱 들이켰다 (3일 정도 지난 후엔 아예 내 앞에 커피포트를 가져다줌). 배도 잘 채웠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내로 나갈 시간이다. 인터넷으로 지하철 티켓 사는 법을 다 조사해왔다. 위풍당당하게 Messestadt West역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훅- 하고 진하게 불어오는, 내 콧속 깊숙이 찌르던 강렬한 지하철 냄새.


그게 나에겐 뮌헨의 냄새가 됐다. 지금까지.



왜일까. 설레는 마음이 정점에 달했을 때 맡아서였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뮌헨 특유의 지하철 냄새가 있는 건 분명하다.


나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계속 과거로 소환된다. 물론 요즘은 마스크를 착용해서 힘들지만, 지하철 입구 바깥까지 냄새가 훅- 하고 올라올 때면 또 7년 전으로 돌아간다. 동시에 그때 가졌던 초심과 설렘, 이것저것 다짐하던 열정 넘치던 어린 내가 동시에 떠오른다. 이미 너무 익숙해져 가끔은 지루한 이곳에서 눈을 '번쩍' 뜨게 되는 순간. 그래,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뮌헨에 살기로 결심했지. 저 멀리 달아나던 초심의 뒤꽁무니를 덥석 잡는다. 후각의 힘은 정말 강하다.




요즘 <음악을 틀면, 이곳은>이라는 책을 읽는 중이다. 도쿄의 곳곳을 음악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쓴 책이다. 이걸 읽다가 문득 내게도 뮌헨을 떠올렸을 때 소환되는 무형의 무언가가 있나 생각에 잠겼다. 뮌헨의 어떤 촉촉한 풀냄새라든지, 그릴 하는 냄새라든지.... 뭐 그런 거였으면 더 낭만적이었겠지만 아쉽게도 내 콧속을 가장 강렬하게 찌른 건 지하철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 중에 언젠가 뮌헨에 오실 일이 있다면 꼭 한 번 맡아보시라. 뮌헨의 지하철 냄새. 



사진=언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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