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기"
아주 오랫만에 영화 한편을 느긋하게 봤습니다.
제목은 '메기' , 벌새와 함께 꽤 많은 조명을 받았던 독립영화 중 하나입니다.
독특한 제목만큼이나 영화는 첫 장면 부터 꽤 신선한 충격을 전하는 이미지들이 등장합니다.
불법 촬영물과 관련 범죄를 상징하는 듯한 첫 사건과 피해자도 아닌데,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는 주인공
윤영의 모습은 피해자에게 관심 가지는 사회의 모습, 피해자가 숨게되는 불편한 현실을 꼬집습니다.
그러나 꽤 심각해보이는 영화 속 중요 인물들 과는 달리 '메기'라는 독특한 화자와 나레이션,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인물과 상황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재미도 전달합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관통하는 주제는 '믿음과 의심' 그리고 영화 전반부에 등장하는 글귀입니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 구덩이를 빠져나오는 것이다'
맞습니다. 의심이 들면 그 의심은 항상 붙잡을 수 없이 커지고 부풀어오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린 그 의심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 진실을 알 순간을 놓치거나 잡아먹혀버립니다. 이미 벗어났어야 했다 생각했을 땐 늦었죠.
영화에선 내내 믿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윤영은 남자친구인 성원이 전 여자친구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원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엔 의심하던 남자친구 성원에게서 벗어나 마지막 순간 진실을 묻죠. 그리고 의심이 진실임을 알게됩니다.
반면 성원은 싱크홀을 메우며 윤영이 선물한 반지를 잃어버리죠. 같이 일하던 동료가 훔쳐갔을거라 의심하지만 결국 그건 진실이 아닌 걸 알게됩니다.
윤영이 끝없이 고민했던 여자를 때린 성원에 대한 의심. 어쩌면 진실에 대해 물어보고 해결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 내내 좋은 사람인 것 같다는 둥, 유쾌한 이미지를 던져왔던 성원이였고 폭력에 대한 어떤 낌새조차도 나오지 않았기에 윤영이 물어보지 못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고, 한번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 될 수 없는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윤영의 의심은 진실을 알기 위한 의심이 아니라 결심을 위한 의심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두 의심은 영화의 전반부 부터 결말부 까지 이어지는 가장 큰 의심의 두 가지 줄기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죠. 의심 덕분에 양쪽 다 상호간의 관계는 무너집니다. 회복할 수 없죠.
그리고 끝내 싱크홀에 빠져버린 성원과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는 윤영의 모습은 마치 서로 같은 동화에서 다른 결말을 선택한 사람 처럼 대비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말하는 이야기는 이 의심 하나에만 국한되어 있진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 초입에 메기가 나레이션으로 나지막히 던졌던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겠어요?' 라는 말 처럼, 끝까지 관객에게 의심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기에, 이 문제가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사실 살면서 우리는 윤영과 성원 처럼 의심의 순간을 여러번 겪습니다. 어릴적 학교에서, 혹은 직장에서, 의심이란 프레임에 갇혀 중요한 것을 못보고 있기도 하고, 잠깐 진실을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스스로를 더 깊은 어둠으로 끌어내리기도 합니다. 비단 윤영 처럼 어떤 충격적인 사실로 의심하고 있지 않더라도, 성원 처럼 그저 확인 되지 않은 의심으로 아니꼽게 누군가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시선은 누군가를 편협하고 차단된 시야로 보기 마련이구요. 직원들을 의심하던 부원장 경진이나, 성원을 의심하고 처음 부터 끝 까지 모든 태도가 아니꼽게 보였던 윤영 처럼 말이죠.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가 파 놓은 구덩이에 이미 빠져있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믿고 싶은 대로 사실을 편집하고 나몰라라 하고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게 당장은 편할지언정 앞으로의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만은 확실합니다.
어느 개그 프로에 나온 말 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정신차리고 살려면 구덩이에서 빠져나와봅시다. 빠져나온 세상이 온통 못 믿을 세상이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