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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배기 May 11. 2020

이사를 하며

집에만 있다가 문득.

이사를 위해 짐을 싸다 보면 묘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다.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오는 쓸 때가 있을 거라며 모아둔 물건을 시작으로 하나씩 짐을 비워 가다 보면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집에 이사를 왔던 순간 부터, 출근을 위해 이사온 집에서 처음 발걸음 나서던 순간, 힘들 일에 지쳐 누워 밤을 뒤척이던 시간까지.


좋은 집으로 이사 가야지 생각하며 늘 부득부득 이를 갈던 방이었지만 막상 이사 때 마다 매번 싱숭생숭한 기분이 든다. 자취 생활을 하며 꽤 여러번 이사를 다녔지만 전학가는 학생 마냥 드는 이 기분은 어떤 방에서건 마찬가지인 듯 하다. 


아마 본인 명의의 집이 없는 자취를 하는 20대 내지 30대에겐 한번 쯤, 혹은 그 이상 겪었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사란게 계약기간을 채워서든 부득이한 이유든 집이 없다면 자주 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또 사회 초년생이 집이 있을리도 만무하다. 더욱이 집이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무얼하든 약점이 될만한 부분인지라 억울한 경험들도 무시 못하게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집이란게 고를 때도 중요하고 얼른 구해야 할 중요한 부분 같은데 대게는 첫 직장에 나서며 집을 구할 때, 집은 그저 잠만자는 공간인걸요! 라며, 내가 유일하게 쉴 이 공간을 홀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사회 초년생이고 돈이 없다면 몸이라도 누일 공간 부터 구하는게 맞다. 하지만 이 각박한 세상에서 그 10평도 안되는 공간이 진짜 유일하게 눈치 안보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이 서울 땅에서 내 명의의 집 한채 가져보겠다며 좁은 방에서 웅크리고 잠을 청하고 출퇴근을 한다. 20대 30대에게 집은 단순히 주거 이상의 이유가 있는 공간이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는 없겠지만, 대부분은 결혼 전 까지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며 꿈을 키우는 공간이자 대피소다. 많은 사람들이 힘든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는 공간이란 이야기다.


근래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김영하 작가가 했다는 말인데, 전하면서 했던 말을 옮기자면.

( 작가 말투가 이랬다는 건 아니고.. 말을 옮기면서. )


"오래 살아온 공간엔 상처가 있데요.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어서 그게 집에 있으면서 보인다더라구요."


그렇다. 집은 그런 공간이다. 별 것 아니지만 시간이 묻어나는 공간이고 몸을 누이면서 자연스럽게 추억과 기억이 묻는다. 그렇기에 우린 좁아 터져서 짜증을 내고 , 피 같은 돈을 세로 내면서도 힘들어 했던 집을 떠날 때 묘하고 싱숭생숭한 걸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새 집에서 또 다른 기억을 쌓으며 지내고 있다. 비록 코로나란 요상한 질병 덕분에 재택근무하며 두달 넘게 밖에도 잘 안나가고 집에서 이일 저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 이사 땐 유독 독특한 기분이 많이 들 것 같다. 평생 없던 일을 같이 쌓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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