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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Jan 12. 2018

교통 지연과 이용자의 '분통'

교통 지연에 따른 '분통' 조장하는 한국 언론 기사

전철이나 버스와 같은 교통 수단이 늦어지거나 두절되면 한국 언론보도에는 정해진 패턴이 있다. 승객들이 '분통을 터뜨린다'는 후속 기사가 반드시 나온다는 점이다. 기사 안에는 승객들의 다양한 사정이 나오고, 읽는 사람들에게 "참 안됐네"라는 반응과 대응이 미흡한 회사측에 대한 짜증을 유발한다. 아래는 관련된 기사들이다.


저가항공(LCC) 연착이 잇따르는데도 항공사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기사. 전형적인 '분통'형 기사다.


공항에 안개가 껴서 지연을 맞닥뜨린 승객들이 분통을 터뜨린다는 기사.


초대형 쇼핑몰이 생긴 뒤로 교통체증이 심해졌다는 분통 기사.

이같은 기사들 가운데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고, 관련된 회사나 행정단체가 제대로 조치를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만 윗 기사 가운데 '짙은 안개'로 운항 차질을 빚는다는 건 천재지변으로 불가피한 경우다. 안개를 무릅쓰고 사고가 나면 또 '무리한 운항'으로 비판기사가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해당 기사 댓글을 봐도 이같은 논조로 비판하고 있다. 기사가 사람들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한다고나 할까.


필자도 처음에는 '분통을 터뜨린다'는 반응에 익숙해져 있었다. 실제 같은 톤으로 기사를 쓴 일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공공교통에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원인 간단히 적고,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식으로 관행적으로 쓰게 된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승객들도 자연스레 '분통'을 터뜨리고 강하게 항의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다 일본에 와서, 이같은 논조가 반드시 어디서나 같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 한국보다 훨씬 잦은 전철 지연을 겪음에도 '분통 터지는 시민'이라는 논조의 기사가 잘 눈에 띄지 않다는 점에서다.


도쿄를 운행하는 JR이든 사철이든 아주 사소한 일(승객의 요청이나 점검 등)이 있어도 열차를 일단 세우고 본다. 철로 내 자살 등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노선이 아예 2~3시간 멈추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당연히 승객들은 짜증이 날 테고, 대체 노선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럼 일본 언론들은 이를 어떻게 보도할까. 구글로 검색을 한 번 해봤다. 키워드는 '운전 연기(運転見合わせ)' + '승객(乗客)'이라고 했다. 아래는 산요신칸센이 2번 멈춘 이유와 관련한 기사들이다.


맨위 기사는 아사히신문으로 '노선에 승객의 개, 행방불명에 산요신칸센 2번 멈춰', 그 밑에는 '신칸센 플랫폼에서 개 탈주... 2번 멈춰 JR오카야마 역, 3만명 넘게 영향' 'JR서, 강아지 동반 룰 주지시키기로 오카야마역 노선 침입은 여전히 불명' 등등 원인은 알려주고 있지만 승객이 '분통 터뜨렸다'는 류의 제목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래는 신칸센이 단선사고로 멈춰 승객이 지쳤다는 내용의 기사다. 제목은 '차내에 3시간 넘게 꽉 찬 상태로... 승객 '돌아가고 싶다'" 이라고 돼있다. 기사 내용은 한국에서도 보자면 승객의 분통으로 점철될 법한데, 상당히 차분한 논조로 적혀있다. 회사를 비난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 한국어로 옮겨본다.


東海道・山陽新幹線で21日夜に起きた断線事故は、深夜になるにつれて運転見合わせ区間が拡大。復旧の見込みが立たず、立ち往生した車両から、救援に来た新幹線に乗り換える異例の作業も行われ、乗客は疲れた表情を見せた。【藤河匠、高嶋将之、大東祐紀】


도카이도 산요 신칸센에서 21일 밤 발생한 단선사고는 심야가 되면서 운전 지연 구간이 확대. 언제 복구될지 확실치 않은 가운데, 멈춰선 차량에서 다른 신칸센으로 갈아타는 이례적 작업이 진행돼 승객들은 피곤한 표정을 보였다.


東京発新大阪行き「のぞみ241号」に乗り合わせた名古屋市の男性会社員(44)によると、午後7時半ごろ、新大阪駅に近づいた大阪府高槻市付近で新幹線が停車。大雨でダイヤが乱れたためと聞いたが、約30分後に照明が消えて「停電しました」と車内アナウンスがあった。日付が変わった午前0時以降も缶詰め状態が続いた。照明は途中で復旧し、空調も利いていたが、再び停電。いら立って乗務員に詰め寄る乗客もいた。体調不良を訴える人も出て、換気のためにドアを開ける措置も取られたという。


도쿄발 신오카카행 '노조미 241호'에 탑승한 나고야시 거주 남성회사원(44)에 따르면, 오후 7시반쯤 신오사카 역에 다가선 오사카 타카츠키시 부근에서 신칸센이 멈춰섰다. 큰 비로 열차 시간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들었으나, 약 30분후 조명이 꺼져 "정전됐습니다"라는 차내 방송이 있었다. 날짜가 바뀐 오전 0시 이후에도 차량이 가득찬 상태가 이어졌다. 조명은 복구돼 에어컨도 작동됐으나 다시 정전. 짜증을 내며 승무원에게 따지는 승객도 있었다. 몸상태 이상을 호소하는 사람도 나와 환기를 위해 문을 여는 조치도 취해졌다고 한다.


下り線で立ち往生した別の新幹線には、新大阪から来た上り線の移送用車両が横付けし、乗客を移して京都駅まで運んだ。JR東海によると、こうした対応は「極めて異例」という。


하행선에서 멈춰선 다른 신칸센에는 신오사카에서 온 상행선 열차가 옆에 서, 승객을 옮겨 교토역까지 실어날랐다. JR도카이에 따르면 이같은 대응은 이례적이라 한다.


(중략)


妻を迎えに来ていた男性(68)は「もう2時間ほど待っている。車内の妻から『(運転)再開のめどは立っていない』とメールが来た。具体的な情報がなくて困っている」と不安そうに話した。東京から大阪に出張中の男性会社員(26)は「名古屋に行く予定だったが、今日は大阪に泊まる。これから宿を探す」と疲れた表情を見せた。


아내를 맞이하러 온 남성(68)은 "벌써 2시간 기다리고 있다. 차내의 아내에게 '운전 재개가 언제 될지 알수 없다'"는 메세지가 왔다.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곤란한 상황"이라고 불안한 듯이 말했다. 도쿄에서 오사카로 출장중인 남성회사원(26)은 "나고야에 갈 예정이었지만 오늘은 오사카에서 묵을 생각. 지금부터 숙소를 찾는다"고 피곤한 얼굴을 보였다.


静岡から新大阪まで乗車予定だった兵庫県川西市の男性会社員(57)は京都駅で降車した。「京都駅の手前で新幹線が止まり、2時間ほど閉じ込められた。電気もクーラーも正常だったのでつらくはなかったが、驚いた」と話した。


시즈오카에서 신오사카까지 승차예정이었던 효고현 카와니시시의 남성회사원(57)은 교토역에서 하차했다. "교토역 바로 앞에서 신칸센이 멈춰 2시간 정도 갇혀있었다. 전기도 에어컨도 작동해 힘들지는 않았지만 놀랐다"고 얘기했다.


東京から京都へ向かう下り新幹線に乗っていた飲食店経営の女性(45)=奈良市=も京都駅の手前で3時間以上閉じ込められた。「車内は落ち着いていたが、仕事の関係先に電話をしている人が多かった。なんとか今日中に帰りたい」とうんざりした様子だった。


도쿄에서 교토로 향하는 하행 신칸센에 탔던 음식점 경영의 여성(45)도 교토역 바로 앞에서 3시간 이상 갇혀있었다. "차내는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일 관련된 곳에 전화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떻게든 오늘중에 돌아가고 싶다"며 질린 모습이었다.


기사 내용은 JR을 비난하면서 승객 대응을 탓하는 부분보다는 당시 상황을 차분히 전하는 데 맞춰져있다. 무조건적으로 '분통'을 강조하기보다, 상황이 발생한 것을 전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다. 


이런 반응을 단순히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비해 상황에 '순응적'이라고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두 조금씩 참으면서 짜증이 줄어드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한 사람, 두 사람 짜증 내고 따지고 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덩달아 전염돼 분노는 커져간다. 어차피 그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데 말이다.


멈춰선 야마노테선. 출처: http://www.iza.ne.jp/topics/events/events-6691-m.html

물론, 승객 대응이 허술하고 미흡한 데 대해 언론이 비판하는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무조건적으로 '승객 분통'을 강조해 클레임을 조장하는 보도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댓글에서 보듯이 무조건적인 분통 보도는 이제 지양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안전을 생각하면, 교통 기관측이 무조건 단기적 대응에만 매달리는 결과가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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