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가 검사를 최대한 억제했다는 '고백'도 등장
일본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관련해 '검사를 안한다'는 얘기는 한국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느낌이다. 이전 글에서는 주로 '올림픽 개최'를 이유로 들면서 검사 능력 문제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두 개가 맞물려 '검사수 억제 참극'이 빚어지지 않았나 싶다.
일본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간단히 정리할까 한다.
①당초 올림픽 개최와 중국인 관광객을 고려해 일본 정부와 주요 지자체는 굳이 코로나로 시끄럽게 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강했다
- 이게 대략 1-2월 상황이다. 당시 우한 봉쇄가 이뤄졌지만 주요 국가에게 코로나19는 '중국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로 나타는 폐렴 자체도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는 인식이 많았다. 중국이 '뭔가 문제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방심도 없다고 하긴 힘들다.
- 이 때문에 일본은 처음부터 코로나 검사를 굳이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본다. 대부분 경증이고 증상이 강할 때만 전염된다는 '확증편향적 믿음'하에 대응책을 짠다. 미리미리 검사 대응체계를 갖추는 일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검사나 병원 시설을 확대한다는 게 알려지면 오히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는 불안을 자아낸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②초기 방침에 대해 일본 정부는 3월 이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 일본에서 주로 논의된 대책은 이른바 후생노동성 내 '클러스터 대책반'을 중심으로 마련됐다. 감염병 전문가로 구성된 클러스터(집단감염) 대책반은 중증 환자나 집단감염원에 힘을 쏟고 일반적 확산 가능성은 낮게 봤다. 이 대책은 일본 정부 방침과도 맞아떨어진다. 검사수가 억제되면서 자연히 감염자수도 늘어나지 않게 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수가 '자연치유'됐을 가능성도 있다
(현 시점에 이들의 전략은 사실상 파탄이 났으나 여전히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뒤로 빠지고 이들이 홍보활동에까지 나서며 총알받이가 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의도적인 수수방관이 있다고 느껴지는 지점이다)
-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이 2~3월에도 나라 문을 열어놨다는 데 있다. 뜬금없이 3월 초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만 사실상의 입국 금지(비자 제한 조치)를 했지만 당시 환자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지역(주로 유럽)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것도 올림픽을 고려한 조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일본이 앞장서서 서양 국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예를 들면 쉽지 싶다. 한여름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집에 있는 모기만 잡고 있던 꼴이다.
③예상치 않게 서양에서 환자수가 급증했고 국내서도 '클러스터 대책'만으로 막기에는 한계가 왔다
- 3월 마지막 주, 일본은 올림픽 연기를 결정한다. 올림픽을 포기해서 환자수가 급증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지금 시점에는 그 반대가 아닐까 하고 보고 있다. 즉 일본 내 코로나를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수준까지 왔고 다른 여건이 완전히 망가졌기에 올림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단 얘기다.
- 왜냐하면 도쿄나 오사카와 같은 주요 지자체 PCR 검사수가 생각보다 많이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이 두 거대 지자체 PCR 검사 양성률은 30% 안팎에 이른다. 한국 기사나 SNS의 일본 정책비판론자들 지적을 보면 10%만 넘어가도 숨겨진 환자가 굉장히 많다고 한다. 그런데 여전히 30% 안팎이란 건 말이 안 된다. 검사가 실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도쿄나 오사카 발표를 보면 감염자 중 '감염경로 불명'이 60-70%에 달한다. 이미 지역 사회에 코로나가 만연했음에도 일반인들의 인식은 여전히 안일하다. 일본 정부가 계속해서 어중간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 이 시점이 되면서 적은 검사는 단순히 '일본정부의 억제 욕구'뿐만 아니라 검사체제 미비가 동시에 작용했음이 드러난다. 사실 둘은 불가분의 문제기도 하다. 검사 억제를 하려면 당연히 검사체제를 갖출 필요가 없다. 그게 지금 완전히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얕본 태도'가 완전히 독이 되고 있다.
④그 와중에 일본 정부가 내놓는 정책은 '방역'보다 '경제'에 맞춰지고 있다
- 4월 7일 '긴급사태선언'이 나왔지만 대책에 실제적인 강제 권한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굳이 따르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는 상황이다. 필자도 되도록 집에 있으려 하지만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러 나가도 큰 문제는 없고 사람들도 많이 나다니고 있다. 마스크 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 자민당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민에게 '와규', '생선상품권'을 지급하자는 황당한 정책이 나오거나, 주요 업종에 대한 자숙 요청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미용실, 이발소, 파칭코를 자숙 대상에 넣느니 마니 하는 걸로 다투거나, 이자카야를 완전히 닫는 것도 아니고 오후 9시까지는 영업해도 괜찮다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대책이 계속되고 있다. 미용실은 웃긴 게, 자숙 대상에 안 넣자고 한 당일 후쿠오카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여전히 일본 정부는 '생각의 전환'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 대응도 제각각이다.
-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어제 트위터에 "미국에서는 코로나와 전쟁에서 CDC 소장에게 지휘권을 넘겼는데 왜 일본은 경제재생담당대신이 지휘하는 걸까... 게다가 휴업보상을 꺼리면서 80% 접촉 줄이는 게 가능할까"라고 남겼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⑤대비 안된 상태에서 감염자가 폭증하면서 의료체제에 한계가 오고 있다
- 일본 우익이나 친정부인사들이 떠들어대던 '검사수 증가=의료붕괴'가 사실이었다는 게 역설적으로 점점 확인되고 있다. 검사수가 소폭 늘었음에도 환자수가 급증하면서 대비 안된 병원들이 위기에 빠지고 있다. 게다가 병원 내 감염이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 한국 전문가 인터뷰를 보니 코로나 대응에서 중요한 건 전체 병상수보다 중환자실(ICU) 여유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구 대비로 보면 일본은 이탈리아의 절반 수준이고 한국보다도 중환자실이 적다. 다행히 아직 중증환자 숫자는 많지 않으나 이런 추세로 환자가 늘면 '경증->중증'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의료붕괴 현실화 가능성이 크다.
대략 이런 상황까지 온 듯 싶다. 일반인 외출과 상업활동 자제가 현재 대응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적지 않은 회사는 재택근무를 하지 않고 있다. 과연 긴급사태선언이 얼마나 효과 있을지 미지수다.
어제는 검사 억제를 시인하는 보건소장 발언이 처음 나왔다. 이전 글에서 제기했던 의문(일본 정부의 코로나 대응 중간 평가)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다음 기사다(번역. 불필요한 부분은 삭제).
사이타마시에서 PCR검사가 2개월 동안 171건에 그친 데 대해 니시다 미치히로 보건소장이 10일 기자단 취재에 "병원이 (환자로) 넘쳐나는 게 싫어서 검사대상 선정을 다소 엄격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는 사이타마시보다 인구와 감염자가 적은 치바시 검사수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니시다 씨는 경증이나 무증상 환자로 병상이 다 차버리는 걸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검사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필요치 않아도 입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늘게 된다"라면서 체재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증을 모두 입원시켜야 한다'는 방침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환자가 늘어나자 도쿄와 오사카에서 별문제 없이 '경증환자는 호텔로'라는 방향 전환이 이뤄졌다. 한 마디로 다 '핑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뭐가 먼저인지 판단을 보류한 채 질질 끌다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전 글에서 수 차례 '3월 말, 4월 초가 걱정된다'고 말미에 적었다. 이미 위기는 시작됐다. 개인적으로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고 보고 있다.
※트위터 등을 통해서 코로나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만, 혹시라도 일본 거주자중에 필요하신 분 있으시면 메일 주세요. 제가 아는 한에서 '제대로 된 정보 발신' 계정을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