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찾아온 자유도 끝을 향해
5월 중순에 쓴 지지난글(코로나시대의 일본 신문광고) 말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긴급사태선언이 이어지는 도쿄도 보이는 확진자수는 대폭 줄었다. 10명 안쪽으로 떨어졌다. 역시나 긴급사태선언해제에 맞춘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70명 이상 통계 누락이 뒤늦게 바로잡힌 일도 있었다.
대책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지만 이런 식의 자숙도 못 견디겠다며 '될대로 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듯하다. 인근 번화가를 가보면 의외로 사람들이 있음에 놀랐다. 그나마 통계상으로 확진자가 거의 없는 지역인 점도 작용했지 싶다.
개인적으로는 자영업자들과 달리 생업에 타격을 입은 것도, 수입이 줄거나 한 것도 없지만 기이한 형태의 자숙에 질린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머지 않아 다시 감염자수가 폭증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때 일본 정부나 지자체에 대책이 있을까. 일단은 잠시나마의 자유라도 즐기고픈 생각이 강하다.
딱히 거창한 '예언'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확진자가 제로가 될리는 없어보였다. 결국 이번주 들어서 일본 전국 곳곳에서 감염자가 다시 급증하는 상황이다. 도쿄는 최근 3일간 하루 200명을 넘었다. 이는 지난 4월을 뛰어넘는 가장 많은 수치다.
필자 개인으로서는 불안 속에서도 지난 6월 미뤄둔 '자유'를 즐겼다. 번화가에도 좀 나가보고 얼마나 가게들이 방역 대책을 하는지도 둘러봤다. 그러나 생각보다도 짧게 자유가 끝나가고 있다. 거주지 근처지역에서도 눈에 띄게 확진자가 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시간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되짚어볼까 한다.
5월말 이후 도쿄를 비롯한 각 지자체에서는 무섭게 '자발적 이동/점포이용 규제'를 풀어갔다. 경제지표가 나락으로 떨어져 더 버틸 수 없었다. 드디어 감염자 '0'가 나온 지자체도 있었다. 한국의 방역 성공을 영 아니꼬와하던 차에, 한국은 이태원에서 폭발하고 있었고 일본은 그에 반비례해 확진자수가 줄어갔다.
여기에 고무된 몇몇 친정권 보수 정치학자들은 "일본은 코로나 억제에 성공했다"며 '일본 모델'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건 3명으로, 북해도대학 스즈키 카즈토鈴木一人, 도쿄외대 시노다 히데아키篠田英朗, 게이오대학 호소야 유이치細谷雄一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문과생(국제정치학자)로 성향은 보수적이나, 한국에서 부르는 욱일기 휘두르는 극우와는 구별된다. 나름 이론 등을 거론하며 합리적으로 들리는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 네오콘하고 비슷한 점이 꽤 있고 아베 정권에서 각종 자문회의에 참석하는 이들이다. 또 한가지 특징으로는 이들이 소위 일본 도쿄/교토대 등 명문 국립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국립대 학자들의 리버럴한 학풍이 오히려 하나의 족쇄(?)가 될 수 있는데, 이들은 그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도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들의 주장에 감명을 받았는지 아베도 호응해 긴급사태선언 해제하는 기자회견에서 '일본 모델'을 언급하며, 성공을 자랑스러워한다.
일본정부는 성공을 기뻐하며 의료진을 응원한다는 이유로 항공자위대 곡예비행단 '블루 인펄스'을 도쿄 상공에 날린다. 필자 개인적으론 '저렇게 좋아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 하고 기가 찼지만 일본 시민들도 대체로 승리감에 젖어갔다. 트위터상에서 꾸준히 일본의 방역대책을 비판하던 사람들도 수위를 낮춘다.
주변에서는 "왜 일본이 성공했지?"하며 의문을 가지면서도 성공이라는 전제에는 대체로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다.
필자는 전형적인 문과에 역학(疫学)이나 수리 계산에 대한 지식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과연 이대로 끝난 걸까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5월초에 터진 한국의 이태원 클럽발 확산이다. 한국은 일본의 몇 배에 달하는 검사역량이 갖춰진데다가 인권침해 지적이 나올 수 있는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추적하는데도 뜬금없이 확산이 시작됐다. 게다가 퍼지는 속도도 빨랐고 상상치 못한 장소에서도 집단감염이 일어났다. 그러나 일본은 명백한 환자마저도 검사가 늦고 결과마저도 오래 기다려야 했다. 일본의 뭘 믿고 확진자가 줄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최근 도쿄대 모 교수가 라디오에서 뒤늦게 자신의 4월 확진사실을 밝히는 걸 들었는데 마침 지도학생 중에 지인이 있었다. 교수는 라디오에서 "가족들한테도 검사를 해달라했지만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받지 못했다"라고 검사체제를 비판했다.
필자는 지도학생인 지인이 이때까지 밀접접촉자였던 걸 모르다 뒤늦게 상황을 물어봤다. 대답은 "지도교수와 회의를 같이 하다 뒤늦게 교수의 확진 판정 얘기를 들었지만 자발적 자가격리만 했지 검사는 받지 못했다" 였다. 이런 상황에 확진자가 제로가 될 수 있을까? 된다면 오히려 '기적'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자발적 락다운'이 생각보다 효과를 발휘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번화가나 사람이 모이는 곳의 밀집 정도를 기존의 80%까지 줄여야 한다는 수리역학자의 지적이 있었고, '과연 될까' 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4~5월 실제로 번화가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그만큼 줄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벌금을 매기는 락다운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일본인의 민도가 높다'고 하면 그 말 그대로겠지만, 이 역시 말을 잘듣는 국민이 있기에 가능했다. 정부의 정책적 성공이 원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이게 왜 의구심의 근거가 됐을까. 단순하다. 경제를 돌리려면 집에 틀어박힌 사람들이 다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80%까지 줄여놓은 걸 다시 서서히 되돌려야 하는데, 지자체들은 굶은 사람마냥 규제를 확 풀어갔다.
그렇다고 그동안 검사 역량이나 추적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개선됐을까? 그렇지도 않은 상황이다. 현재 도쿄는 양성률이 5% 이상으로 올라갔다. 오사카도 비슷하다. 특히나 오사카를 비롯한 간사이권은 검사숫자 자체도 거의 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이번주 들어선 도쿄에서 연일 200명을 넘기며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는 중이다. 아마도 일/월/화 3일은 주말이라는 이유로 다시금 발표숫자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사실 긴급 상황에 한가하다고밖엔 할 수 없다.
불안감을 안고 슬슬 동네 재즈바를 다니면서 여기에 좀 고풍스러운(?) 글을 쓰려고 나름 준비중이었는데 동선을 당분간은 크게 늘리지 못할 상황이 됐다. 코로나로 사망할 확률이야 낮겠으나 올해 끝내려 하는 학업에 지장이 생기면 안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난주 일요일(5일)에는 도쿄도지사 선거가 있었다. 그러나 딱히 분석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코이케가 압도적으로 이길 게 뻔해서다. 야당성향 후보 2명은 분열해 있었고 자민당도 암묵적으로 코이케 지지를 선언했다. 게다가 도쿄도민의 상당수는 코이케를 '우익'으로 보지 않는다. 여성들은 코이케에게 강한 여성상을 투영해서 계속해 지지하고 있다.
10년넘게 도쿄도지사를 한 이시하라 신타로처럼 우익적인 발언을 하지도 않았고, 눈에 띄는 극우행보를 보인 것도 없다(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모를 안했지만 안타깝게도 일반 일본인이 그런 것까지 고려해 투표하진 않는다 ). 그렇다고 실제 우익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아베 신조같은 '이념형 우익'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주장을 오고가는 '기회주의적 우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이 생각은 3년전(도쿄의회 코이케 '압승'의 의미)과 다름 없다).
한국에서는 야마모토 타로에게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확장성이다. 무당층에게 어필해야 하나 야마모토가 뺏어오는 표는 지난 참의원선거나 이번이나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야당과 나눠먹기, 공멸을 할 수밖에 없다. 두고봐야겠지만 아직까지 '포퓰리스트적 역량'은 부족하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향후 일본 전체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는 아베 정권이 취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도쿄나 수도권에서 폭증하는 확진자에 관해선 버티기 힘든 임계점이 곧 찾아올 수밖에 없다. 수도권 중심의 이동제한조치는 불가피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뒤늦은 검사확충(그마저 여전히 부족한)은 보이는 숫자를 더 크게 늘려버리는 딜레마를 가중시키고 있다.
'일본 모델'이 강조한 집단감염 추적은 감염경로불명이 절반을 넘는 현 상황에선 의미가 없다.
코이케나 코로나 대책을 맡은 경제재생상(장관)이나 '밤의 환락가'에 가지 말라고 외쳐댔지만 이미 감염은 곳곳으로 퍼져가고 있다. 학교나 보육원에서도 터져나온다. 어제는 도쿄 보육원 한 곳에서 20명이 넘는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심지어 대다수 감염자는 보육원 아동들이다. 이런 상황에 낮은 사망률 운운하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지난 7일 니시무라 경제재생상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다음과 같은 기고를 실었다.
일본은 어떻게 락다운 없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승리했는가
한국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비슷한 글을 기고한 다음날 서울에서 감염자가 100명 넘게 나왔다면 망신을 면치 못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몇몇 비판자가 조롱했으나 구렁이 담넘어가듯 넘어가는 분위기다.
글에는 깔 거리가 가득하지만, 적어도 일본이 락다운을 하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다. '강제적인 락다운'은 없었을지언정 '사적 감시'를 통한 '자발적인 락다운'은 있었다. 이 모델은 강제조치를 해도 락다운 반대시위를 하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서구나 애초에 강압적인 통치를 하는 개발도상국에는 적용하기 힘들다. 한국에서라면 가능할지도?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많은 나라에서 모방가능한 보편적 모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은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코로나와의 싸움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난번은 경제를 포기했었던 방역이라면 이제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과연 가능할까? 지난번처럼 강한 의구심이 드는 한 편으로 길게 이어질 '자숙'에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