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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Jan 11. 2017

위안부 합의와 납치 문제

여론에 영향받는 외교가 반드시 나쁜 걸까?

논문을 쓰느라 업데이트가 매우 늦어져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맘속에서는 쓰고 싶은 거리 들이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만, 좀처럼 짬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논문이 막바지 단계라 최대한 자주 업데이트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15년 연말 이뤄진 한일간 위안부 합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부산 동구청 일본 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놓이면서다. 위안부 합의는 당초부터 한국 여론의 반발을 샀다. 지난해 갤럽 여론조사는, 한국인 56%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전한다. 긍정적 답변은 26%에 그쳤다.


이와 달리, 일본에서는 대체로 좋은 평가가 많았다. 직접적으로 주위 일본인들을 봐도 굳이 나쁘게 생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래 기사는 양국 여론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처음 합의를 접했을 때 이해가 안가는 항목이 적지않게 있어, 개인적으로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뒤집힐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最終的かつ不可逆的に解決されることを確認する)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


(韓国政府は,日本政府が在韓国日本大使館前の少女像に対し,公館の安寧・威厳の維持の観点から懸念していることを認知し,韓国政府としても,可能な対応方向について関連団体との協議を行う等を通じて,適切に解決されるよう努力する)


의 2가지다. 


최종적 및 불가역적이라는 게 실질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시됐고, 대사관앞 소녀상을 정부가 컨트롤 하는 것 역시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근본적으로는 '뭘 위해서' 급속하게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는지도 잘 알 수 없었다. '이면합의'가 있을 거란 추측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형식적으로도 양국 정상(대통령-수상)이 회담을 통해 서명한 게 아니라, 외무부장관과 외상이 만나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베 신조 입장에선, 당연히 위안부 합의에 담긴 내용도 직접 언급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박근혜에 대해선 현 상황에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본다.


실제 아베 신조는 합의뒤 국회에서 합의에 대해 설명하라는 야당의 요구를 대충 넘겼다. 


그 뒤 또 논란이 된 게 '한국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편지'도 단칼에 거절한 일이다(아래 동영상). 마지막에 반복해서 나오는 대로 '털끝만큼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애초 아베 입장에서도 내키지 않은 합의였음은 틀림없는 듯 하다.



일본의 이른바 리버럴계에서도 위안부 합의는 그런 대로 평가하는 입장이 많았다. 아사히신문도 줄곧 '이 이상의 합의는 더이상 쉽지 않다'는 논조를 내비쳐왔다. 


아사히신문 자체가 과거 위안부 존재 보도와 관련해 오보를 낸 적이 있어, 강하게 주장하기 쉽지 않은 상황도 있다. 강제연행을 증언한 취재원에 대한 기사가 증거부족이었다고 시인한 것이다.


아사히 신문의 오보 시인(2014년)을 계기로, 일본 보수 우익 사이에서 위안부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 분위기가 힘을 얻어갔다(아래 기사 참고). 물론, 아베 자신도 비슷한 부류라 볼 수 있다. 우익적 여론을 중시하는 아베 정부는, 위안부상이 확산되는 것에 과민반응해왔다.



그렇기 때문에도, 일본 우익들은 당초 위안부 합의 자체에 포함된 '군의 관여'(当時の軍の関与の下に)라는 문구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시간이 지나, 한국 내 부정적 반응이 커지면서 오히려 점차 수그러드는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최근 부산의 소녀상 설치에 대해서 일본 언론의 논조는 '여론에 휘둘려서는 안돼'다. 


비교적 균형잡힌 보도를 하는 니혼경제신문(닛케이)의 제목은 '한국, 합의보다 여론 위안부상징의 소녀상설치'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서울 일본 대사관앞에 이어 부산 일본총영사관앞에 종군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설치된 문제는, 강경한 시민단체, 여론, 야당의 강한 영향력으로 국가간 약속을 경시하기 쉬운 한국내 풍조를 그대로 드러냈다. 일본정부는 대항책으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대사 등을 일시귀국시켰으나, 양국의 위안부합의로 남겨진 현안 해결은 불투명해졌다.'

                                                                                  

'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に続いて釜山の日本総領事館前に従軍慰安婦を象徴する少女像が設置された問題は、強硬な市民団体や世論、野党の影響力が強く、国家間の約束を軽視しがちな韓国内の風潮を浮き彫りにした。日本政府は対抗して長嶺安政駐韓大使らを一時帰国させたが、日韓の慰安婦合意で残された懸案は解決の見通しが立たない'



즉, 여론과 강경한 시민단체로 인해 한일 합의가 번복되기 쉬운 구조라는 얘기다. 개인적으로는 정부간 합의라는 출발점 자체가 잘못돼있었기에, 예정된 결과라고 보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할 법할 주장이기도 하다. 


외교에 있어서의 협상이라는 게 애초 자기 유리한 대로 해석하기 쉽기도 하다.


아베 정부가 대사를 불러들이는 등 강경모드로 나선 데 대해서는, 한국과 미국의 권력 공백기를 노린 것이란 분석이 많다. 지금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인식의 발로라는 지적이다. 


물론, 실제 한국과 미국을 생각한 것뿐만 아니라, 일본 내 지지기반을 노린 것도 있을 것이다.


추가로, 확증은 없으나 대사를 불러들인 날 일본에서는 '공모죄' 법안 내용이 마무리됐다. 테러 등 범죄 행위에 대해 '공모 단계'에서 탐지해 체포하는 건데, 사실상 사상의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한국의 테러방지법처럼 표현의 자유를 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전에도 3차례 제출됐으나 당시 '일반 시민단체, 노동조합도 대상이 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결국 폐기됐다. 이번엔 '테러집단'에 한정돼있으나, 역시나 이런 법안 특성상 대상 확대의 가능성은 늘 있다. 


즉, 아베 정부의 강경 자세가 일종의 '국내 여론 물타기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치하에서 '북풍 물타기'를 몇 차례나 보아온 한국인으로선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강경모드는 국내여론용일 가능성이 훨씬 커 보인다.



그런데, 이번 '약속을 지키라'는 일본 정부를 보면서 떠올리는 일이 있다. 


2002년 9월 있었던 북일 정상회담과 그 진행과정이다. 당시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김정일이 직접 만나,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북한은 납치문제에 대해 서로 사죄했다.


그때까지 납치문제는 의혹제기만 있었지,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다. 하지만, 김정일이 스스로 인정하고 생존자 5명, 사망자 8명이 있었다며 납치 문제 관련자들을 처벌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양국의 수교를 향해 계속 협의하자는 '평양선언'이 발표됐다. 물론, 김정일과 고이즈미가 직접 서명했다.


01~06년 재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양국은 합의에 의해 납치피해자 5명을 일본에 일시귀국시키로 했다. 북한에 의한 납치는 당연히 범죄이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지만, 양국이 합의한 건 어찌됐든 '일시귀국'이었다. 


하지만 실제 이들이 일본에 도착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TV는 귀국자들의 도착부터 생활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다뤘다. 자극적인 보도도 적지 않았다. 언론은 합의가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대체로 '영구귀국'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입장이 많았다.


이때 일본 정부에서 앞장서서 '영구귀국'을 주장한 사람이 바로 현총리인 아베 당시 관방부장관(총리실에서 근무하는 참모역할)이었다. 


아베는 당시 북일정상회담에 부정적이었지만, 고이즈미의 요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동행하고 있었다(아래 유튜브 동영상).


아베는 시종 "납치 피해자를 돌려보내선 안된다"고 주장하고는 고이즈미를 설득해 관철시켰다. 당연히 북한은 크게 반발했고, 국교정상화 회담도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지금까지도 양국은 제대로 된 협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금 위안부합의에서 보듯 납치문제에 관해 일본정부가 '여론에 굴복한(혹은 여론을 이용한)' 모양새가 된 셈이다.


아베는 2002년 이후 본인이 납치피해자들을 영구 귀국시킨 것에 대해 자랑스레 말하고, 일본 국민들에게도 그로 인해 큰 인기를 얻는다. 실제 납치피해자와 가족을 빈번히 만나며 '일본과 일본인의 주권'을 지키는 정치가임을 어필해간다. 아베가 부상한 것도 시점상 이 때로, 결국 합의 파기가 그의 출발점인 셈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합의 파기와 일본 여론의 반응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국 영토내에서 납치당해 몇십년간 타국에 강제로 산 일에 대해 분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북한이 저지른 건 명백한 범죄행위다. 공작원을 일본열도에 침투시켜 커플, 중학생 할 것 없이 납치해갔다는 건 용납될 수 없다.


그럼에도, 아베가 이번에 위안부합의 이행을 요구하는 걸 보면 '이중잣대'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약속을 성실히 지키라는 말도, 아베가 할 말은 개인적으로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의 과거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다.


이 당시의 양국 합의 파기에 대해, 일본 내 유명 언론인인 타하라 소이치로는 2003년 3월 참고인으로 일본 국회에서 용기 있는 발언을 한다. 일부를 옮겨본다(일본 국회회의록 검색시스템 참고). 구어를 그대로 살린다.


'적어도 제가 취재한 한에서는, 이건 꽤 정확한 취재라 생각합니다만, 북한에서 5명이 돌아왔다, 그건 일시귀국이었습니다. 돌려줄 것을 약속해서 데려오고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이건 북한이 나쁘다, 좋다가 아니라 외교라는 건, 역시 약속한 일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정부안에서도, 자민당(여당)안에서도 나오지 않거니와, 왜 그 약속을 깼는가 하는 것도 설명이 없어 크게 불만입니다.


정부도, 혹은 외무성 사람들도, 제가 오프 더 레코드로 취재하면 전부 그렇게(즉, 약속을 지켰어야 한다) 말합니다. 그걸 왜 공공에는 말하지 못하는가. 말하면 큰 일이 벌어진다고. 큰 일이 벌어진다고 말하는 건, 그건 정치가가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불만이 모두에게 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田原総一朗参考人 

  少なくとも私が取材をしている限りでは、これはかなり正確な取材だと思いますけれども、北朝鮮から五人が帰ってきた、あれは、外務省は、一時帰国だったはずです。だから、帰すということを約束して連れてきて、帰さなくなった。これは、北朝鮮が悪い、いいじゃなくて、外交というものは、やはり約束したことは、この約束を守るべきだ。ところが、あの約束を守るべきだという意見が、私は、政府の中からも自民党の中からも出てこないし、なぜその約束を破ったかということも説明がされない、大いに不満です。

  政府もあるいは外務省の人たちも、私なんかがオフレコで取材すると、全部そう言います。それを公共でなぜ言えないのか。言ったら大変なことになると。大変なことになると言わないんじゃ、そんなものは政治家じゃないよ、こう言いたい。そういう不満がみんな募っていると思います。よろしいですか。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약속을 깬 선봉에는 아베 신조가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부산영사관앞 위안부 설치 자체가 합의 파기라고 볼 수 있는지도, 양국이 정확히 따져야할 부분이다. 대체 '해결'이 뭔지, 민간의 움직임을 정부가 막을 수 있는지, 역시 애초 합의 자체가 애매한 상황에 하나하나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지만, 북일 납치문제에 관해서는 명확히 귀국자를 '돌려보낸다'고 날짜까지 합의가 이뤄져있었다. 고이즈미도 김정일도 동의한 부분이었다. 일본은 그 뒤 납치 문제를 이유로 경제적 지원도 미루고, 오히려 제재를 시행한다. 사실상 이 때부터 일본 외교는 대북 강경파에게 잠식되기 시작한다.


당시 아베가 보수계 잡지 「제군!諸君!」(03년 2월호)에서 한 말은 흥미롭다.


"국가적 범죄를 저지른 입장의 나라와, 피해자의 입장의 우리나라를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논리의 기초가 애초 잘못돼있다"


이 얘기는 이번 합의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문제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엉터리 합의를 덜컥 받아들인 박근혜 정부와 그 일당들에게 있다. 일본에서는 정권교체가 되면 합의가 뒤집힌다고 벌써부터 신뢰 운운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합의를 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외교를 국내 정치에 활용해 인기를 얻은 아베는, 오히려 이번 위안부합의를 역이용하고 있다. 두손 두발 다 놓고 있는 한국 정부의 상황이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추스려서 명확한 외교적 방침을 견지할 지도자를 세워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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