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밀착, 적극적 자체 홍보... 하지만 쉽지 않은 음식점 경영
지난번 글(도쿄 소규모 음식점들의 비명)에 이어, 이번엔 살아남은 가게들을 다뤄보겠다.
도쿄 상공회의소 보고서 말미에 실려있는 성공 사례들을 중심으로, 어떤 요인이 있었는지를 정리해볼까 한다. 물론, 체인점이 아닌 개인경영 가게들이다. 가게들 위치도 수록돼있어, '맛집탐방' 정보 가치도 있으리라고 본다.
보고서 다운로드 주소 : https://www.tokyo-cci.or.jp/soudan/inshoku/pdf/hokokusho.pdf
일단 실려 있는 업체들의 특징을 간략히 보면
① 주인과 손님들의 연대의식이 끈끈하다. 주인이 손님의 대략적인 사항(이름, 직업 등)을 기억하는 곳이 대다수다.
② 가게가 위치한 지역과 어울리는 분위기를 하고 있다. 해당 지역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굳이 눈에 띄지 않는 디자인으로 조화를 꾀하고 있다.
③ 메뉴에 대한 공부는 기본에, 자세한 내용을 자체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굳이 맛 정보 사이트(타베로그 등)에 의존하지 않고도 가게에 대한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다.
등이다. 해당하는 가게에 대한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겠다(아주 오래된 곳, 점주가 건물주인 경우는 일단 뺐다).
- 로스터 카페 아란차토(ロースターカフェ・アランチャート)
한국에서 무분별하게 탄생하고 있는 카페부터 보자.
해당 카페는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으며, 1998년 창업했다. 종업원은 2명(부부)이다. 정보가 충실한 홈페이지를 갖추고 있다.
위치는 관광지로도 유명한 지유가오카. 케이크 등도 수제라고 한다. 커피와 음식질이 좋은 건 일단 기본으로 깔고 있는 셈이다.
가장 중시하는 건 역시 손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단지 가게사람들과 손님의 커뮤니케이션 뿐만 아니라, 가게를 중심으로 한 '손님들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시하고 있다. 커피교실을 마련해 '기초편' '실천편' '테이스팅편' 등을 통해 손님들의 취향에 맞추고 있다.
지유가오카 관광객을 노린 게 아니라, 지역 밀착형을 추구한 결과라 하겠다. 실제 남성 주인은 커피 공부만 30년을 해와 전문성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한국 내 신도시나 교외에 가면 디자인에만 신경쓰고 '그 이상은 없이' 종업원에게 맡겨두는 일이 많은데, 확실히 다른 모습이라고 하겠다.
- 센다기 로지(千駄木 露地)
도쿄 분쿄구 센다기 지역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다. 2007년 창업했고, 종업원은 9명이다.
특징은 고민가(古民家)를 개축해, 지역에 녹아들도록 했다는 점. 가게 건물 자체는 무려 지어진 지 80년가까이 됐다고 한다.
가게를 처음 만들 때 중시한 것은, 지역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고. 식자재 공급처 역시 철저히 근처 상점을 이용하는 게 특징. 점주 자체도 센다기 지역에서 30년을 살았다고 한다.
반복해서 오는 손님이 50% 정도. 매번 오는 손님을 위해서도 매일 같은 메뉴가 아닌, 그날그날 바뀌는 메뉴를 준비중(日替わり). 가격도 불필요하게 비싸진 않다.
홈페이지 역시 매우 깔끔하다. 한국의 오래된 음식점은 홈페이지가 대체로 부실한데(그렇기 때문에도 여러 이유로 블로그 정보가 넘친다), 홈페이지 자체 정보 신뢰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이처럼 고민가를 개조한 업체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데, 개인적인 단골 카페가 도쿄 나카노에 한 군데 있다. 여기는 추후 브런치 매거진(동네 카페 방랑기)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 리코푸아(リコプア)
2012년 문을 연, 카레 전문점. 종업원은 5명이다. 도쿄 시부야 오모테산도에 있다. 영업시간이 11:00~16:00로 런치영업만 한다.
가게를 연 것은 부부로, 열기 전부터 남편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지인들에게 의존해 부동산 정보와 인터리어 정보를 얻어, 역시 지역밀착형을 추구하고 있다고.
오모테산도에 여러 곳 있는 다른 카레 음식점들과 '경쟁'보다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점도 특징. 예를 들어, 정보교환을 하거나, 다같이 '카레 페어'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서로 비슷한 업체끼리 경쟁하면 다같이 망한다는 교훈을 얻고 있다고.
야간 영업을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라고 한다. 다른 곳과의 교류와 새로운 매뉴 개발, 야간 배달 등을 하기 위해서. 가게 규모가 작은 관계로 테이크 아웃에 힘을 쏟고 있다.
- 야키토리 코마츠(焼鳥 小松)
도쿄 분쿄구에 위치한 7명 종업원의 이자카야다. 2001년 개업했다.
가게의 주요 방침은 '손님을 기억하기'에 있다. 점주는 물론, 종업원도 손님들을 기억하고 맞아준다고 한다. 이름을 외우기 위해서, 전표에 아예 손님 이름(일본에서는 성만 적는 일이 많다)을 써둔다. 그리고, 연령대나 성별도 동시에 기호로 적어둬, 고객 분석에 활용한다고.
또한, 손님이 오면 점주가 직접 홀에 나가 인사한다. 그럴 때마다 음식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종업원 채용도 되도록이면 근처에 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단지, 손님과 종업원 뿐만아니라, 종업원 사이의 유대관계도 배려하기 때문이라고. 손님이 대체로 오래 있는 점도 있어서, 평균 객단가가 한 사람당 3500엔을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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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식으로 꾸준히 영업했으면 좋았을텐데, 재미난 반전(?)은 이 정보가 실린 직후, 이 가게마저도 폐점했다는 데 있다. 아래 블로그에 관련 내용이 실려있다.
- 2014년 6월 26일 폐점했다고 하는데, 이유는 실려있지 않다. 보고서의 주요 사례(단지 10곳)로 언급된 업체마저 문을 닫을 정도로, 일본 자영업 상황은 녹록지 않은 것이다.
결론은, '가게 혼자서만 살아남지 않기'에 있다고 봐도 좋을 듯싶다. 지역, 그리고 자주 오는 손님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해야 살아남지, '벌어들일 궁리'만 해서는 좋은 가게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2000년대 후반부터 일본 이자카야 분위기를 본딴 술집들이 한국에도 다수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오래가지 못한다. 이유는 당연히 '분위기만 어설프게 가져왔기 때문'이다. 홍대 지역 이자카야의 흥망성쇠는 거의 전쟁 수준이지만, 롱런하는 곳은 보기 힘들다. 손님을, 나아가 지역 커뮤니티를 생각하지 않으면 생존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관련 내용은 2년전 글(<심야식당>서 엿보는 일본의 공동체)에도 적어뒀다. 이 당시 느꼈던 내용과 일본 가게들의 성공비결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 새삼 주목하고 싶다.
물론, 이런 식으로 나름의 가치를 추구한 일본 가게도 모델로 소개된 지 얼마 안돼 문을 닫는 모습으로 볼 때, 자영업의 길은 그만큼 고되고 힘들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