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토츠바시대학 축제와 언론의 자유?
극우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인사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인터넷이나 페이스북 등에서도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게 됐지만 아무래도 원조는 일본이라 하겠다.
한국의 극우 인사들은 대체로 국내에 있는 적들(현 여당과 지지자들->종북)을 대상으로 삼지만, 일본은 주로 한국과 중국(+인)이 대상이라는 게 차이랄까.
일본 극우 인사 가운데서도 발언의 정도가 심한 축에 속하는 한 인사가 6월 중순에 있는 한 대학 강연회에 초청받았다. 필자가 다니고 있는 히토츠바시 대학이다. 주인공은 햐쿠타 나오키(百田尚樹)라는 유명 소설가 겸 방송작가다.
햐쿠타의 이력을 간단히 소개해본다.
1956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도시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일찌감치 소설에 눈을 떠 다양한 책을 냈는데, 그 중에서 유명해진 계기는 '영원의 제로永遠のゼロ'(2006년)라는 전쟁 소설이다. 전쟁을 미화한다는 비판-카미카제 특공대의 자살을 미화-을 받았지만 꿋꿋이 팔려나가 판매부수 200만권을 넘겼다.
한국에도 많은 책들이 번역되고 있고 개중에는 작가의 성향과 무관하게, 무난한(?) 내용이 담긴 작품도 꽤 있는 듯하다. 검색해보니 적잖은 블로그에서 서평을 싣고 있다. 필자는 아직 한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작품과 작가를 따로 떼어봐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다. 다만, 이 블로그글에서는 작가 개인의 성향과 최근 일어난 소동을 연관지어 몇 자 적어볼까 한다.
히토츠바시에서는 매년 6월경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취지의 '코다이라제(小平祭)'라는 축제를 연다. 2학년이 중심이돼 1학년을 참가시키는 형태의 축제다. 올해로 21회를 맞이했다. 강연회나 여러 서클 등이 이벤트를 여는 게 주된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6월 10~11일 열릴 예정이다.
그러다 지난 5월부터 강연 초청 인사를 두고 잡음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햐쿠타 나오키를 강연회에 초청한다는 소식때문이었다. 관객들을 모은다는 차원에서 '미디어 문제에 대한 얘기를 듣는' 취지로 불렀다는 게 위원회의 생각이라고 한다. 햐쿠타는 실제로 아베 정권에서 NHK 경영위원회에도 참가했다.
(작금의 한국 KBS와 MBC 상황을 생각해보면 우리로서도 남의 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에 학교측에선 소란이 일어날 수 있으니 "경비를 강화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실제 히토츠바시대학에서는 몇년여전 히토츠바시대학 출신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전 도쿄도지사가 강연하러 온 때 반대 소동이 일어난 일이 있다)
아래 히토츠바시대학 신문 내용을 참고로 했다.
하지만 햐쿠타 나오키가 그간 온오프라인에서 해온 발언을 그냥 두고 일방적인 강연회를 여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도 분출하기 시작했다. 대학원 자치회에서는 강연회 반대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아래 그림이다. 성차별적 발언, 인종차별주의적 발언, 역사수정주의 발언 등등이 비판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능하면 서명해달라는 요구도 적혀있다.
햐쿠타 나오키의 발언 수준이 어땠길래 이토록 다들 반발하고 나선 걸까. 몇 가지 옮겨본다.
남경대학살은 없었고 종군위안부는 거짓말
재특회(혐한, 반중단체)가 하는 것을, 국가단위로 하고 있는 게 한국과 중국
'미국인이 진짜 싫다'라고 해도 아무 말도 안듣는데, '한국인이 진짜 싫어'라고 하면 바로 레이시스트 라는 소릴 듣는 건 왜인가
"
전후 긴 기간, 한국도 위안부에 대해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한국이 사죄, 배상을 꺼내는 것은 아사히신문이 날조 기사를 썼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것은 아사히신문이 만들어냈다고 할수 있다. 남경대학살도 아사히신문이 써낸 것으로 중국이 편승해왔다
왜 한국은 일본의 정책에 하나하나 말을 하는 건가. 왜 언제나 내정간섭을 하는 건가.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들은 지금도 일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
등등. 아래 발언록(?)을 참고로 했다.
결국 이처럼 논란이 확산되고 학교 차원으로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자, 위원회가 강연회를 중지하기로 했다.
このたび本講演会を中止することになった理由についてですが、「本講演会がKODAIRA祭の理念に沿うものでなくなってしまったこと」が挙げられます。当学園祭は一般の学園祭と異なり、「新入生の歓迎」を第一義とするものです。当委員会の企画のために、新入生の考案した企画や、新入生の発表の場である他の参加団体の企画が犠牲となることは、当委員会では決して容認でき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이번에 본 강연회를 중지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강연회가 코다이라제 이념에 맞지 않게 됐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저희 축제는 일반 학원축제와 달리, '신입생 환영'을 제 1로 합니다. 저희 위원회 기획을 위해, 신입생이 고안한 기획이나 다른 단체의 기획이 희생되는 것은, 용인할 수 없었습니다.
当委員会は本講演会を安全に実施するため、これまで幾重にも審議を重ね、厳重な警備体制を用意していました。しかし、それがあまりにも大きくなりすぎたゆえ、(いくつもの企画が犠牲となり、)「新入生のための学園祭」というKODAIRA祭の根幹が揺らいでしまうところまで来てしまいました。
저희 위원회는 강연회를 안전히 실시하기 위해, 몇 번씩 심의를 거듭해, 엄중한 경비체제를 준비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치게 돼버렸기 때문에 '신입생을 위한 축제'라는 근간이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게 됐습니다.
- 대략 이런 내용으로 전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일이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자 이번에는 인터넷 우익 등이 반발하고 나섰다. 한마디로 '좌익과 대학측의 압박에 언론의 자유가 탄압됐다'는 주장이다. 정당하게 얘기할 권리마저 빼앗는 게 자유의 전당인 대학 이념에 반한다는 게 주된 근거다.
아래는 히토츠바시대학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한 우익 졸업생의 투고 내용이다.
"좌든 우든, 자유로운 언론의 장을 막지 않는 것이 본 대학의 좋은 면이었던 것은 아닌가?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 소박하게 알고 싶습니다. 실행위원회의 결정으로 돼있긴 하지만, 대학 당국에 따른 '조언' '시사'는 없었을지"
댓글에는 동일 인물이 "사회에서는 히토츠바시대학이 좌익세력에 굴복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해당 인물의 페이스북에는 한국과 중국을 깎아내리는 각종 공유글과 자신의 감상이 올려져 있어, 대략적인 성향은 파악이 가능했다.
햐쿠타 나오키 본인은 오히려 이를 계기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적극적으로 시전하고 있다. 트위터를 원래 활발하게 했지만 신이 난듯 더더욱 많은 글을 올리고 있다.
황당하면서도 인식수준을 드러내는 트위터 하나만 소개해본다.
듣자하자 히토츠바시대학에는 중국유학생이 약 300명, 한국유학생이 약 100명 있다고 합니다. 그밖에 재일(비하적 의미)인 중국인, 한국인도 다수 있습니다. 100명 모였다고 하는 강연중지집회의 팸플릿은, 한글과 중국(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주최자 단체의 대표는 한국(조선) 이름인 사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위원회의 한심한 인식 수준을 지적하고 싶다.
여러 경로로 듣자하니, 별문제의식 없이(우익 경향 학생이라기보다는) 유명한 사람을 누구든 초청하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일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자 지레 겁먹고 포기해버렸다고.
그 결과, 오히려 극우 집단과 햐쿠타 본인에게 정당성을 주는 희한한 결말이 나버렸다. 양식있는 교수들은 "애초 기획을 할 거면 치열하게 고민하고 상대편을 붙이는 토론을 하든지 했어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필자도 강연회가 차라리 열려서 소동이 일어나는 게 나았으리라고 보고 있다.
극우작가이면서도 나름대로 결기가 있던 인물 가운데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있다. 동경대 법학부 출신으로 60년대 학생운동이 정점에 달할 때, 도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있던 학생 무리에 당당하게 홀로 들어가 논쟁을 펼쳤다. 1969년의 일이다.
논쟁 내용은 철학적이고 쓸데없이 현학적이라 재미는 별로 없지만, 이 정도 기개가 있어야 양측의 합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책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참고를.
이 일이 있고 다음해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자위대 본부에 들어가, "궐기하라"고 외치며 자살하는(수행원을 데리고 가 할복한 뒤 참수) 황당한 일을 벌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미시마 유키오의 이 행동이 잠자던 우익의 눈을 깨웠다는 평도 나온다.
아래는 당시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다.
이번 소동이 크게 확산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이지만, 일본 대학 지성이 그 나름대로 작용하고 있음과 동시에, 극우 세력의 강고함도 새삼 느꼈다. 물론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사회현상으로도 생각되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