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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Nov 26. 2022

비상시 문 여는 방법

  나 같이 사지 멀쩡한 청년 남성은 사람 많은 전철에서 의자에 앉을 일이 별로 없다. 사람이 좀 있다 싶으면, 내 몸이 피곤하든 말든 앉을 생각도 마음도 안 든다. 그러고는 출입구 바로 앞 손잡이를 잡는 위치에 자주 게 된다. 또 난 전철에 타면 핸드폰을 잘 안 보려고 한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폰 보다가 내릴 역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워낙 뭐든 간에 한 곳에 눈이 팔려서 몰두하게 되면 주변 소리도 자극도 못 느끼게 돼서, 스스로 주의한다. 아, 내가 좌석에 잘 안 가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 같다. 좌석에 앉아서 몸이 편하게 되면 자연스레 핸드폰을 열거나, 창에 머리를 기대 꾸벅꾸벅 졸게 된다. 그러다 역을 놓치는 경험이 워낙 많아서,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나 보다.


  그렇다고 무언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깔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지하철에 붙어있는 온갖 광고 포스터나 전단지 글자와 그림을 별 잡생각들과 함께 뚫어져라 쳐다본다. 지하철 광고 소비는 나 같은 사람이 다 하는 것 같다. 나도 나중에 혹시나 책이라도 내면 지하철 광고에 좀 신경을 쓸까 싶다. 나 같은 사람들이 내 책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한다. 꼭 상업적인 것들 말고도 지하철 노선도나 출입문에 붙어있는 '손대거나 기대지 마시오' 문구 같은 것도 몰두하며 볼 때가 있다. 다행히 출입문을 노려보다가 역을 놓치는 일은 없다.


  '비상시 문 여는 방법'도 그런 맥락에서 눈에 띄었다. 이런 비상 장치들이 예전엔 손 닿기 어려운 곳이나 눈에 잘 안 보이는 좌석 밑 따위 위치에 있었는데, 점점 눈에도 잘 들어오고 접근성이 좋게 되었다. 이런 부분도 발전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 가지 거슬렸던 게 있다. '문 여는' 글자 부분이 '문여는'으로 띄어쓰기가 맞지 않게 쓰여 있었다. 계속 보기가 불편했다. 그 틀린 띄어쓰기가 며칠째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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