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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쉐어 Jan 19. 2018

<작은 여행> 하루의 빈틈으로 가는 시간

[책 |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를 이야기하다



책이 발간되고 주구장창, 


이거 좋은 책입니다. 

그림도 아주 좋습니다. 

이렇게 떠들고 다니고 있는데 

정작 그래서 무엇에 왜 좋은지를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지르기형 인간이 늘 그렇듯, 

앞서기는 쉬우나 디테일이 아쉽습니다.


고백하건대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는 

여행을 잘 가자는 내용이 사실 아닙니다.


오히려 '여행을 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제안하는 책입니다. 

.. 하지만 그 대안 제시는 꽤나 디테일합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한 번 말해보겠습니다. 






메리사에서 천천히 끓이는 주전자







전 사실 여행보다는 내가 하는 일, 프로젝트로

아이덴티티를 표출하려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20대 내내 좀 더 내 영혼에 맞는 일,

내 젊음에 부끄럽지 않은 일을 찾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 서른이 되어 어렵사리 자리 잡은 인하우스 광고대행사 자리를 팽개 치고

홍대의 한 음반기획사 A&R로 이직을 했죠.


하지만 이건 웬걸.. 

모든 경력 업종 전환자가 그렇듯,

열심히 하면 할수록 삽질 왕이 되었습니다.  






삽질정신..







자존심 회복하려고 회사에서 밤낮 용을 쓰는데

갑자기 집안 일도 빵빵 터졌습니다.

당시 경제적으로도 커리어적으로도 망가진 제게

워라밸, 복지, 휴가 이런 건 제게 아주 아주 먼 단어였습니다. 


'여행' 달콤한 단어지만, 

당시에는 솔직히 생각나지도 않았습니다. 


'도망'도 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장남, 장녀이고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사정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요..









그런데 그렇게도 코너로 몰아붙여 

매일 밤 몸의 밧때리가 5% 미만으로 떨어져 집으로 돌아올 때 즘,  


나도 잊고 있던 내 안에 자정 작용이

제게 소주 한 잔을 내밀었습니다. 



"야, 니 안에 네가 너무 눈물 흘린다."

"신경 좀 써 줘라."



365일 중 360일을 일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투잡에 쓰리잡까지 하며 통장을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여러 번 울고 있는 걸 봤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덮어뒀던 '나'를 바라봤습니다. 


멍~ 한 기분이었어요. 

뭐한다고 이렇게 살까 싶었습니다.














1)  

우선 좀 씻었습니다. 

나를 구제해 줄 적극적인 힘도,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물에 가만히 나를 넣어두고, 

물이 내 몸에 붙은 번잡함을 씻어내는 과정을 바라보며

가만히 갭gap 타임을 가졌습니다. 


에어비앤비 게스트로 만났던 유럽 친구들에게 배운 리추얼이었습니다.  

아무 생각을 안 하는 시간을 가지니,

한결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2) 

그리고 할 만큼 한 내 하루에 사표를 썼습니다. 

이제 잠들기까지 남은 1시간 은 내 인생의 덤이었죠. 


이때부터 약간 머리가 이상해졌는지, 

집 근처로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꼭 멀리 가야만 여행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나름의 패러다임 쉬프트였습니다. 


편안한 옷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집 앞 카페로, 공원으로, 영화관으로 

1시간짜리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간 고생한 나를 위한 최소한의 보상이었습니다. 




3) 

아무도 모르는 곳에 여행을 온 기분이었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매일 가는 단골 카페고 바인데,

여행을 왔다고 생각하니 많은 것이 새로웠습니다.


오랜만에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부로 친절한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만히 시간과 의식의 흐름에 나를 맡겼죠. 


걷고 싶으면 걷고, 앉고 싶으면 앉고, 쓰고 싶으면 썼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4)

이후 '작은 여행'은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퇴근을 하면 1시간씩 꼭 상상 여행을 떠났고, 

대체 휴가가 주어지면 옆 동네로 숙소를 잡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몇 가지 새로운 취미를 배웠습니다. 

자기개발이 아니라 그 세계로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즐겼습니다. 


여행 중에는 낯선 사람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가식 없는 대화가 삶의 큰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친한 친구에게도 못할 이야기들이었는데

참 신기한 일이었죠. 


혼자만의 작은 여행, 

사실 아무것도 아닌 잉여의 시간이었지만, 

세계 여행이나 인도 여행만큼 큰 숨구멍이었습니다.













그럼 작은 여행을 반복한 이후 삶은 좀 나아졌을까요?

딱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삶은 모르는 것 투성이에,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건들 천지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유한한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쓰기 위해

여전히 혼자 머리가 아프고, 몸은 쉽게 고갈됩니다






하지만 버티는 삶에서 벗어났습니다.

스트레스와 욕심(=놓지 못함)을 좀 느슨하게 풀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요?

힘든 일이 있다면 오늘 밤에 있을 여행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퇴근 후 작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덕분에 '번잡함과 고요함', '고갈됨과 채워짐'의 순환을

조금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그냥 나 같은 보통 사람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이유로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도

세상과 사람에 지치고 내가 점점 희미하게 느껴지시는 분들.

다 내려놓고 여행이라도 가고 싶지만, 쉽지 않으신 분들이요. 


하지만 그렇게 바쁘고 앞이 캄캄할수록, 


내가 만든 빈틈 속으로(고요 속으로)

더 적극적으로 나를 데려다 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고생한 내 하루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충전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에서는  


일상에 빈틈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그 안으로 여행하는 방법들을 다양하고 디테일하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일반 에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또 책 읽을 시간도 없는 우리를 위해 얇게 썼습니다.

길게 읽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나사가 하나 빠진채로

계속 덜그덕 달리고만 있다고 느껴지신다면


그런분들에게 자기를 점검할 수 있는 지침서, 

그리고 잃어버린 것을 발견하는 보물 지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불교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불교에는 '심출가'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몸은 속세에 있지만 마음으로는 출가하는 보살을 뜻합니다. 


우리의 몸은 여전히 바쁜 일상 속에 있지만,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여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관점을 바꾸면 여행이 시작됩니다. 

퇴근 길에, 이번 주말에 바로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글쓴이 최재원 드림. 












[ 전시 |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 현재 진행 중입니다. 


글을 쓴 최재원과 그림을 그린 드로잉메리가 느슨하게 준비했습니다.

퇴근길에, 주말에 가벼운 산보 가듯이 놀러 오세요.


일정 :  ~ 1월 21일(일), 오후 4시 ~ 9시 30분

장소 : 서울시 용산구 우사단로 10길 3, 2F '메리사'

도슨트 : 1월 19일(금), 20일(토) 저녁 8시 

상세 : https://www.facebook.com/events/142068929814410

   * 1월 20일(토) 저녁 9시, 특별한 공연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 라이프 셰어 | 나를 바라보는 낯선 대화 ] 모집 중입니다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에 등장하는 라이프 셰어를

실제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가 준비되어있습니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로 나를 바라보고, 일상을 여행으로 만들어보세요. 


일정  : 2018년 1월 25일(목) 저녁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 TASTE(빈브라더스 강남점) 3층

인원 : 50명 

상세 : 29CM >  TECH+  >  Culture  > 티켓 ( https://goo.gl/Q4KuR9 )


최재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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