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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윤 변호사 Aug 27. 2019

뚱뚱해지는 아내와 말라가는 남편

출산을 앞둔 아내와 바디 프로필 사진 촬영을 앞둔 남편의 눈물겨운 이야기

우리 부부는 건강과 활력을 찾고자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함께 PT를 시작했더랬다.


올해 초였다.

남편과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함께 큰 맘먹고 PT를 시작했다.

한동안 일에만 파묻혀 살면서(사실 이것도 핑계란 것 안다) 운동과 담쌓고 살다 보니

활력을 잃어가는 것을 몸으로 느끼던 차였다.


우리 부부는 상의 후 함께 PT를 받기로 했다.

비용이 부담되지만 그 비용보다 우리가 되찾을 활력과 건강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판단했기에.

그리고 돈이야 또 열심히 벌면 되지 않는가(.... 말은 쉽다).


그렇게 굳은 결심으로 함께 PT를 받으면서,

초반의 근육통을 이겨내고 우리는 점점 몸이 단단해짐을 느꼈다.

스쿼트 개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고, 우리의 허벅지는 말랑함을 탈피하는 듯 했다!!!




아뿔싸... 둘째의 임신, 그리고 PT 중단


그렇게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나의 PT는 갑작스런 둘째 임신과 함께 중단되었다.

하지만, 내가 중도하차한다고 해서 남편까지 그렇게 되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한테 말했다.

"내가 출산 때까지 더 열심히 하면 돼. 내가 적극 지원해 줄 테니 당신은 계속 열심히 PT 받아봐"

내가 임신했다고 해서 남편의 계획이 변경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나 때문에 눈치 보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는 PT 중도하차 후 점점 뱃속의 아이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났고,

남편은 내 몫까지 더 열심히 PT를 받으며 몸이 슬림해져 갔다.




남편, 관장님으로부터 바디 프로필 촬영 제안을 받다


남편이 성실하게 PT를 받다 보니 몸에 근육이 자리 잡고 지방이 제거되어 그럴듯해지면서

헬스장 관장님께서 욕심이 나셨나 보다.

남편에게 바디 프로필 촬영 제안을 하셨단다.


"관장님께서 바디 프로필 찍어보는 게 어떠냐고 하시는데...

당신 배도 점점 불러오고 힘든데, 그리고 애 낳기 전에 더 아껴야 할 텐데

그냥 안 한다고 하고 PT도 그만둘까 봐."


남편이 출산을 앞둔 나에게 미안한 모양이다.

아내는 임신해서 고생하는데, 남편은 자신을 위해서 시간과 돈을 쓴다는 것이 걸렸던 모양이다.


게다가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려면 PT도 계속 받아야 하고, 구릿빛 피부를 위하여 태닝에 투자를 해야 하며 프로필 사진 촬영 비용 등등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갔다.


"아니 왜? 지금까지 한 게 아깝지도 않아?

이왕 계속해 온 거 제대로 끝까지 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봐~!

돈이야 몇백 더 들겠지만 그것보다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경험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

더 나이 들기 전에 몸 이쁘게 만들어서 사진 남겨두면 얼마나 좋아?

돈이야 벌면 돼!(역시나 말은 쉽다..)"

나는 남편의 말을 단칼에 자르며 지원사격을 다짐했다.


우리는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지만, 동시에 여전히 각자의 삶 또한 존중받으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임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남편이지만,

남편 개인의 삶 또한 인정해주고 지지해주고 싶었다.




남편, 본격적인 바디 프로필 사진 촬영 준비에 돌입하다.


바디 프로필 사진 촬영 준비를 시작하면서,

남편은 관장님으로부터 철저한 식이요법까지 코칭을 받았다.

짜고 매운 것, 지방이 많은 것, 밀가루류는 피하고 닭가슴살 같은 순수 단백질 위주로 먹어야 한다는 것.


아...

나는 배가 불러올수록 먹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매운 게 자꾸 당기는데...

다른 사람보다 남편이랑 편히 맘껏 먹고 싶은데...

하지만 지원사격을 결심한 터라 티를 낼 수 없었다.




우리 부부, 서로의 눈치를 보다.


남편은 바디 프로필 촬영일이 가까워질수록 운동 강도도 세지고 식사량도 극도로 줄이면서

점점 살이 빠지고 그에 비례하여 기력 또한 잃어갔다.

아무렴,, 먹지도 않고 고강도로 3시간씩 운동하는데 기운이 있을 리가 있을까?


게다가 하루 종일 배가 고프니 예민해질 수밖에...

그런 와중에도 막달이 되어가는 아내한테는 힘든 티 안 내려고 억지로 웃고 어떻게든 집안일 등을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기특하고 짠했다.


남편은 임신한 아내와 먹을 것을 함께 먹지 못하고, 혼자 먹게 해서,

기운이 없어서 전보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하지 못해서,

전보다 의욕 있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혹시나 예민해져서 안 그래도 더 힘들 아내한테 짜증을 낼까 봐

미안해하고 걱정하며 내 눈치를 보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 또한 결국 나의 지원사격으로 바디 프로필 촬영까지 하게 된 남편인데,

나 때문에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나 혼자 맛있는 것 먹어서,

남편이 내 눈치 보게 만드는 것이 더 미안해서,

그래서 미안해하며 나 또한 남편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눈치를 보고 미안해하며 출산 막달과 바디 프로필 촬영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디 프로필 사진 촬영 전, 만삭 사진을 찍다


65kg 아내와 58kg 남편의 만삭 사진...

이건 진짜 억울하다.

남편이 먹는 거 못 도와줘서 그렇게 맛있는 거 많이 먹은 기억도 없는데,

출산 1달 정도를 앞두고 50kg에서  65kg까지 몸무게가 는 것이 아닌가.

막달 한 달 동안 또 얼마나 찔지 모르는데...


반면 남편은 PT를 받기 시작했을 때 몸무게 63kg에서 58kg까지 빠졌다.

게다가 구릿빛 피부로 태닝까지 하니 더 슬림해 보이는 모습..


안 그래도 하얀 피부인 나와 대조되는 남편의 구릿빛 피부..

퉁퉁하고 둔한 내 몸과 대조되는 슬림하고 탄탄한 남편의 몸


어흑, 그나마 흑백사진이라 차이가 좀 덜 보인다.




바디 프로필 사진 촬영 이틀 전..


그렇게 우리는 계속 서로의 눈치를 보며 버텨갔다.


그런데 바디 프로필 사진 촬영 임박해서는 남편이 닭가슴살과 5리터의 물만 먹어야 했고,

촬영 3일 전부터는 아무 반찬도 없이 햇반만 하루에 3개씩 먹으며 계속 고강도의 운동을 해야 했다.


아...

남편이 기력 다 빠지고 햇볕에 바짝 말라비틀어진듯한 모습으로 구부정하게 앉아

햇반을 모래 씹듯이 씹어 삼키는데,

그 모습을 보니 너무 안쓰러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금이라도 그만둬! 나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이럴 수는 없는 터.


마지막 남편이 기운 내도록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 생각 난 아이디어.


'그래! 바디 프로필 촬영 때 입을 빤스(드로즈) 좋은 걸 함께 사러 나가보자!'

드로즈 괜찮은 거 사놓으면 좀 더 의욕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게 기운 없는 남편을 이끌고 백화점에 갔다.


비싼 빤쓰 한번 질러보자!!


남성 드로즈 비싸네... 허나 돈이야 벌면 된다!!(ㅠㅠ)


"하나만 하지 말고 이쁜 거 있으면 여러 개 사! 두고두고 입을 건데 뭐!"

남편을 부추겨본다.

자기가 입을 드로즈를 고르자니 약간 신났는지 남편이 이것저것 관심 있게 둘러본다.


"무난한 거 하나 사고 튀는 것도 하나 더 사봐봐!!"

계속 부추긴다.


결국 무난한 것, 튀는 것 하나씩 구입.


이제 정말 이틀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멋진 드로즈 입고 사진 찍는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운이 생긴 듯 보였다.  


미션 성공!




끝나자마자 너랑 짜장면 먹으러 갈 거야!!


이제 남편은 닭가슴살만 보면 속이 울렁거린단다.

그러면서, 바디 프로필 사진 찍으면 나랑 짜장면부터 먹겠단다.

남편이랑 밤에 소곱창과 불판에 바싹 들러붙은 기름진 볶음밥이 그렇게도 먹고 싶었다.


내일이면 우리 부부 사이 불편한 눈치 보는 일이 끝난다.

사람 잡는 바디 프로필 촬영이 드디어 끝난다.

짜장면도, 곱창도 함께 맘 편히 즐길 수 있다.


나는 출산예정일을 2주 앞두고 있다.


2주 내에 남편 바디 프로필 촬영 끝나면 함께 먹으려고 기록해 둔 음식 리스트대로 다 먹고 출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은 짜장면이다. 맛집 검색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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