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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스타벅스에 채용되다

바리스타 도전기

by 재다희

토론토에 살 집도 마련했고 취업비자와 SIN 넘버도 모두 다 갱신되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바로 취직이다. 3년짜리 취업비자를 받았으니 지난번 피자집 파트타임 알바처럼 단순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파트타임을 하더라도 한국에 돌아갔을 때 혹은 앞으로 살면서 유익한 경험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하나 있었다.



토론토에서의 활동 경력이 없다.


사니아와 한국에서의 활동 경력만 있고 토론토 내에서의 경력이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하지. 방금 막 이사 왔으니 경력이 있을 리가 없다. 한국에서 아르바이트 한 경력은 있지만 캐나다에서 인정은 거의 되지 않았고, 사니아에서 활동한 경력은 사니아를 사람들이 잘 몰라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토론토에서 나름 이름 값하는 파트타임으로 시작하여, 그 경력을 바탕으로 정규직 풀타임으로 이직을 하는 방법이었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파트타임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결정했다.



캐나다 스타벅스에 들어가자







"한국인 워홀러들의 로망, 캐나다 스타벅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캐나다 스타벅스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캐나다로 오는 많은 한국인 워홀러들의 로망이 캐나다 스타벅스 바리스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캐나다 스타벅스에서 일하게 되면 받을 수 있는 혜택들과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스타벅스에 지원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에도 혜택과 분위기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네임벨류(Name Value)


한국에서도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같은 아르바이트 경력이라도 특정 대기업에서 아르바이트 한 경력이 좀 더 주목을 받는다. 캐나다도 이런 점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네임벨류가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게 더 이득인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캐나다 스타벅스는 최적의 직장이었다. 스타벅스가 가진 이름값과 대중성은 다른 가게나 직장에 비하면 상당했었고, 커피업계 중에서 업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내가 가진 활동 경력으로 충분히 지원해볼 만했었다.




"I was so ready for it!"


만약 내가 아무런 경험이 없이 토론토에 막 온 사람이었다면 분명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거나 인터넷에서 후기글을 검색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사니아에서 100장이 넘는 레쥬메를 돌리면서 어떻게 해야 캐나다에서 파트타임 잡을 수월하게 구할 수 있을지 몸소 겪어보았다. 그래서 스타벅스에 지원하기로 한 순간, 그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바로 계획을 짤 수 있었다.



토론토에서 인쇄를 하려면 Shoppers라는 드럭 스토어에 가거나 사설 인쇄 업체에 가는 방법도 있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공립 도서관(Public Library)에 가는 것이다. 도서관에 가서 회원등록을 하면 카드를 하나 주는데 이 카드에 돈을 충전해놓고 인쇄를 할 수 있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지만 상당히 저렴했던 걸로 기억한다. 마침 집에서 가까운 곳에 공립 도서관이 하나 있었고 간단한 회원등록 후 레쥬메를 인쇄했다. 먼저 대략 20~30장 정도를 인쇄한 후, 집 근처나 지하철로 통근이 가능한 스타벅스 가게들의 위치를 알아보았다.



캐나다 스타벅스는 원칙적으로는 온라인 지원만을 허용한다. 레쥬메를 제출하려 방문을 해도 바리스타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온라인 지원은 했니?'이다. 그래서 먼저 관심 있는 매장들에 전부 온라인 지원을 한 후에 레쥬메를 들고 찾아갔다. 미리 온라인 지원을 한 덕분인지 대략 10개 가게에 레쥬메를 모두 제출할 수 있었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곳을 빼고는,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나마 연락이 온 한 곳은 인터뷰를 하러 간 날 매니저가 나에게 별도의 연락도 없이 병가를 내고 출근을 안 해서 헛걸음만 치고 돌아왔다. 준비를 많이 하고 갔었는데 너무 허탈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기에 신고식 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다른 스타벅스 가게에 들어가서 전략을 다시 세워보기로 결정했다.




"여기를 왜 지원 안 했지?"


그때 갔었던 스타벅스 가게는 내가 온라인 지원을 안 한 가게였다. 그런데 이상했던 점은 위치가 너무 좋은 가게였는데 내가 지원을 안 했다는 거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지하철 1 정거장 차이였고, 비즈니스 빌딩 안에 위치한 가게라 유동 인구도 상당했다. 바로 자리에 앉아서 캐나다 스타벅스 사이트에서 가게를 검색해보았다. 구글 맵에 등록된 주소로 검색해봤는데 결과가 나오질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서 마침내 앞을 지나가던 스타벅스 바리스타 직원에게 가게 주소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주소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구글 맵에 등록된 주소와 캐나다 스타벅스 내에 등록된 주소가 달랐었다. 그래서 내가 이전에도 이 가게에 온라인 지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주소를 알게 되자마자 바로 온라인 지원을 했다. 어차피 레쥬메는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음료를 주문하면서 직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관찰했는데 유독 매니저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들은 보통 초록색 앞치마를 입는데 그 사람만 검은색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물어봤다.



안녕! 반가워! 너 왠지 이 가게 매니저일 것 같아!


그리고 그 사람의 대답은 어땠었냐면...



맞아. 나 여기 매니저야!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매니저였던 것이다! 너무나 들떠서 그 자리에서 이 가게에 온라인 지원을 했다고 얘기했다. 보통 이렇게 얘기하면 예의상 파트타임인지 풀타임인지만 간단히 물어보고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만 말해준다. 그런데 이 때는 달랐다. 첫 출근 가능 날짜, 근무 가능 시간, 과거 경험들을 즉석에서 물어봤다. 바로 직전에 그 취소되어버린 인터뷰를 위해서 연습을 많이 해놨었기 때문에 그 질문들에 당황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더니 매니저가 바로 다음 주 월요일에 정식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극적이었다. 기분이 좋아서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인터뷰 준비를 시작했다. 첫인상을 완벽하게 심어줬으니 대면 인터뷰에서 큰 실수 없이 쐐기를 박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대면 인터뷰 또한 무난하게 진행되었고 인터뷰 종료 후 2시간 후에 전화로 연락이 왔다.



합격했어! 너 이제 스타벅스 바리스타야!


7.jpg 캐나다 스타벅스 파트너 카드



그때가 2018년 9월이었고, 그 날부터 나의 기나긴 스타벅스 바리스타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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