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자유시간
노조와 학교 측과의 협상이 결렬되어 다음 주부터 수업이 취소될 예정입니다.
이것이 내가 학교 측으로부터 받은 메일의 내용이었다. 이때가 10월 중순으로 중간고사가 끝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이 메일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정말 수업이 취소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들었던 생각은 바로,
학교 직원들도 파업을 한다고??
한국의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처럼 캐나다에도 교직원 노동조합이 있다. 온타리오 교직원들은 Ontario Public Services Employees Union이라는 곳에 속한다. 이 단체가 고용주인 학교 측과 협상을 하고 단체행동을 개시하게 되면 노조에 속한 온타리오 내 모든 교직원들이 단체 행동에 들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되어서 진짜로 파업이 진행되었고 예정되어 있던 수업들은 모두 취소가 되었다. 협상 타결로 파업이 끝날 때까지 약 3주 정도 시간이 소모됐는데, 이 3주 동안 학생들은 아무런 과제도 없이 뜻밖의 자유시간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서 교직원이 파업을 하는 경우를 들어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었다. 그래도 막판에 다시 협상이 돼서 수업이 진행이 되겠지 싶었는데 진짜 파업이 시작되다니...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파업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홀로 스케줄을 세워야 했다.
학교 수업은 취소가 됐어도 E-Sports 팀 활동은 계속하고 있었다. 수업 때문에 평일에 빡빡했던 팀 운영이, 파업 후 시간이 많아져서 팀 활동을 하기에는 더욱 수월했었다. 그리고 주말에도 꾸준히 알바를 나갔었다. 그러면 남는 시간에 뭘 해야 좋았을까? 친구들과 노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금방 포기했다. 사니아는 너무나도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호숫가에 가서 수영을 하거나, 홈파티를 하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 할 게 없다.
저녁에 주로 홈파티를 했었는데 다들 이 파업이 언제 끝나는지 답답한 마음들 뿐이었다. 너무 할 게 없고 심심하니까 학교를 다니는 게 제일 낫다는 거다. 물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진짜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학교를 다니면서 할 게 있는 게 더 마음이 편했다.
남는 시간에는 주로 영어 공부, 전공 공부, 운동 그리고 홀로 커피타임을 가지면서 파업 종료 이후를 준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 파업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무리 길어봤자 일주일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 협상이 계속 결렬되면서 파업 기간이 연장되기 시작했다. 파업 기간 동안은 어떠한 수업도 할 수 없기에 내 전공 수업들도 계속 취소 상태였다. 그러면서 매일 변화 없는 조용한 도시에서 똑같은 일상을 보내면서 내가 낸 등록금과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지루함과 권태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3주 차가 되던 때 노조와 학교 측의 협상이 타결되어서 수업을 다시 재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드디어 지루한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도 들었고, 다시 바빠질 학교 생활에 기대감으로 가득 찼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더 빡빡해진
학사 스케줄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업을 한 3주만큼 학사 일정을 늘려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3주만큼의 수업 내용과 과제, 시험 일정들을 남은 일정 안에 모두 소화해내야 한다.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에게도 절대로 쉽지 않았다. 어떤 과목은 기말고사를 없애는 대신 매달 시험을 보는 방식을 바뀌었고, 또 어떤 과목은 팀 프로젝트 과제의 비중이 더욱 올라갔다.
특히 매달 시험을 본다는 게 너무 힘들었었는데, 공부도 하면서 다른 과목 과제도 함께 병행했어야 해서 월 말만 되면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 없이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업 내용 역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됐었기 때문에, 미리 공부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따라잡기가 매우 힘들었다. 물론 과제의 수준이 악독할 정도로 어려웠던 것은 덤이다.
3주 간의 파업이 나에게 준 경험은 뜻밖의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계획하는 법, 그 과정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얻은 깨달음은 다른 무엇도 아닌,
나는 철저하게 대도시 사람 체질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