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치킨드림』
어느 날 아침, 출근을 준비하며 옷을 갈아입는데 이를 구경하던 은호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며 말한다.
어? 엄마 벗었네! 아이 창피해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깨달은 하와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이가 말하기 전까지는 분명 아무렇지 않았는데, 아이가 던진 말에 나는 조금 창피해졌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듯 급히 옷을 마저 입는다.
아주 예전, 어느 철학 책에서 읽었던 ‘사르트르’의 ‘수치’에 대한 정의가 생각났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보았다. 타인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 나는 주체에서 객체가 되어,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게 되며 수치심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빠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한다. 꿈속에서 자신이 팬티 바람 그대로 집을 나섰다고,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아서. 아이는 팬티 바람으로 학교도 가고, 동네도 돌아다닌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달아 깜짝 놀라 꿈에서 깬다. 꿈이었다는 걸 알고 안도한 후에도 ‘수치심’에 휩싸여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이 책의 작가는 ‘불안’으로 인해 벌거벗은 꿈을 꾸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무엇이 불안한 걸까. 그 불안은 왜 ‘팬티 바람’으로 구현되는 걸까. 나는 이 책의 이야기를, ‘내 안의 욕망을 마주하게 된 자기 인식의 순간과 그럴수록 더욱 거세게 느껴지는 타인의 시선, 그리고 수치심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왜냐면 나도 ‘팬티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꿈을 자주 꾸니까.
‘팬티 바람’ 꿈을 자꾸만 반복하는 나의 무의식은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걸까. 내 안에 오랜 시간 묵혀있던 ‘나를 드러내는 일에 대한 공포’, ‘평가받는 상황에 대한 불안과 수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발목을 항상 붙잡는 ‘나서는 것이 부끄러워!’, ‘이 정도 실력 가지고 나서면 안 되지!’라는 내 안의 말과 다르게, 나의 진짜 욕망은 ‘온 세상이 나를 좀 알아줬으면.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민감하기에 늘 도망쳐 다니기 바빴던 내가,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해 두려움과 수치를 느꼈던 내가, 꿈속에서 완전한 자기 노출의 상태인 ‘팬티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다.
이 책의 아이와 내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팬티 바람’을 깨닫고 놀라기보다는 조금은 멋쩍은 마음을 가진 채 내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아낸다는 점이다. 꿈속에서는 나의 ‘팬티 바람’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이 닿기도 전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하며 불안해한 것은 다름 아닌 '너 자신'이라고 꿈이 말해주는 것만 같다.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이 나에게는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아이의 꿈 이야기를 들은 아빠는 자신도 같은 꿈을 자주 꾸었노라고 고백한다. 아빠는, 이건 어차피 꿈이니 마음대로 행동해 보았다고 말해준다. 팬티만 입은 채로 뛰어다니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려보기도 한다.
‘나’를 안다는 것, 그리고 나의 ‘욕망’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다. 그러니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이 아빠는 꿈속에서 ‘팬티 바람’으로 온전하게 나를 만났고 욕망 대로 행동해 봤다. 욕망을 가진 나를 인정하니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그 꿈 이후 다시는 이런 꿈을 꾸지 않았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물었을 것이다. '아빠, 이게 다야?’ 아빠가 대답한다 ‘응! 이게 다야!’
자신을 받아들인 아빠와 아이는 ‘불안’이 덕지덕지 붙은 ‘치킨’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을 세상에 꺼내 놓는다. 나도 그들과 함께 가면을 벗는다. 그리고 진짜 ‘나’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치킨드림>ㅣ 지은이 장세정, 장세희 ㅣ 한장두장
※’ 내가? 감히 내가 글을 쓴다고?’란 마음으로 미루고 미루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습니다.
‘나’의 욕망을 깨닫고 ‘나’를 세상에 꺼내 놓는 일에, ‘타인’의 축하가 더해진 날을 기념하며 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