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이후로 정산을 찍고 내려오는 등산은 해본 적이 없다. 둘레길, 집 근처 공원, 한강 등 아무리 오래 걸어도 숨이 헐떡이지 않는 평지만을 골라 다녔다. 굳이 경사가 가파른 산을 오르며 심장이 터질듯한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눈이 두껍게 쌓인 한라산을 오르고 싶었다. 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상상 속에나 있을법한 산타마을과 닮은 눈 덮인 한라산을 유튜브 혹은 TV에서 봤겠지. 미남미녀에게 나도 모르게 마음을 뺏기듯 한라산의 아름다움에 매혹됐던 것 같다. 그에 더해, 산을 같이 오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힘든 여정을 함께하고 오래오래 추억팔이를 같이하고 싶은 사람말이다. 그래서 한라산에 갔다.
한라산 등반 전에 '서울에 솟아있는 어떤 산이라도 가야 하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을 행동에 옮길 의지는 없었기에 별 다른 준비 없이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등산을 위해 준비한 거라곤 제주공항 근처 한라산 등반 장비대여업체(빌리신)에서 빌린 등산화, 아이젠, 등산스틱과 같은 기본적인 등산 도구들이었다. 여러 유튜버들이 한라산을 오른 것을 보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등산을 시작하면 중도포기란 없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22년 12월 30일에 한라산 등반을 했는데 직전 주에 제주도에 폭설이 내려 비행기가 결항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주행 비행기를 못 타면 그냥 서울에서 푹 쉬자"라고 플랜 B도 생각했던 상황이었다. 우리보다 한 주 빠르게 제주도에 다녀왔던 회사 후배는 큰 우박이 떨어지고 재난영화처럼 눈이 와서 동문시장에 갈까 하다가 사고가 날까 봐 바로 차를 돌렸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제주로 향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초봄같이 따뜻하고 맑은 날만 지속됐다.
그러나 날씨만 좋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제주도에 도착한 이튿날에 한라산을 가기로 했는데, 첫째 날 남자친구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잠깐 시장구경을 가던 길에 내가 차에서 멀미를 했다. 두 사람 모두 메롱 인 상태로 호텔로 복귀해 등산 준비만 해놓고 빠르게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새벽 5시에 알람이 울리자마자 그가 먼저 일어났다. 다행히 둘 다 크게 아프진 않아서 한라산에 가기로 했다. 30분 만에 자기 전에 준비해 놓은 옷을 입고, 뜨거운 물을 끓이고, 장비를 챙겨 나와 택시를 불렀다. 한라산으로 가는 등산객이 많은 호텔에서 묵어서 그런지 새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택시가 잡혔다.
경사가 많은 관음사 코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등산이 용이하다는 성판악 코스를 택했다. 등산대여용품점의 사장님께서도 성판악으로 올라갔다가 성판악으로 내려오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다. 새벽 6시 반보다 이른 시각에 성판악 코스 초입에 도착하니 모든 등산객들이 다 아이젠을 끼고 있었다. 덩달아 우리도 아이젠을 끼고 대열에 올랐다. 직전 주에 눈이 많이 와서 그런지 등산길이 시작하는 곳부터 눈이 쌓여있었다. 이른 산행을 계획한 만큼 등산용 손전등을 가져갔어야 했는데 '다른 사람들 따라가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갔다가 핸드폰 불빛에 연명해 약 한 시간가량 어둠을 헤치며 올라갔다. 다른 등산객들이 가져온 빛을 따라갈 수는 있었지만 칠흑같이 어두운 산길이라 일정거리 이상 멀어지면 시야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역시 사람은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친구는 컨디션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함께 등산했다. 남자친구의 참을성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기 직전에 얘기하면 안 돼. 힘들어서 못 갈 것 같으면 바로 말해줘야 해. 내가 손 쓸 수 있을 때!"라고 강조해서 얘기했다. 몸에 열이 많은 남자친구는 땀이 자꾸 나서 이마에 계속 땀이 흐르고 옷이 땀으로 다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힘든 내색 없이 걸었다. 땀으로 겨울 외투가 젖어 무거울 것 같아서 솥밭대피소에서 남자친구의 보온병을 내 가방으로 옮겼다. 씩 웃으며 괜찮다고 올라가자고 하는 남자친구를 보니 한라산을 등반하자고 얘기했던 게 미안해졌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굴려졌고 남자친구가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건강히 잘 내려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눈이 어마어마하게 내렸었던 게 실감이 났다. 등산객들의 등산을 돕기 위해 잡고 올라가라고 설치해 놓은 로프높이까지 눈이 쌓여 그 위를 걸었다. 눈꽃이 핀 산의 아름다움만 생각하고 등산을 시작했다가 종아리 길이만큼 쌓여있는 눈 계단을 오르려니 '내가 왜 한라산을 오고 싶어 했을까'하는 자기반성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러면서 숨겨놨던 본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왜 왜 왜 왜~~~~~~~ 왜 한라산을~~~~~~~~"과 같이 스스로를 원망하는 타령을 하다가 그저 자연의 이치로 쌓인 눈에게 욕을 하기도 했다. 남자친구는 나의 본모습을 다 보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점점 괴팍해지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그는 스스로 '누구 탓을 해. 같이 따라온 내 업보지'라고 생각하며 걸었다고 했다.
울창한 나무 위에 하얀 눈이 10cm 가까이 쌓여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던 구간도 있었고 종아리 길이 이상으로 눈이 쌓여 "읏챠" 소리를 내지 않으면 오르기 힘든 구간도 있었다. 풍경이 예쁜 곳에서 추억용으로 사진을 많이 남기려고 삼각대까지 가져갔지만 '정상에 빨리 가야지'하는 마음이 더 커서 무용지물이었다. 진달래대피소에 도착해서 짐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라면을 먹었다. 보온병 두 개를 가져갔는데 물과 보온병의 무게 때문에 허리가 너무 아파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었다. 정상에 올라가서 정상에 오른 기쁨을 느끼며 먹을까 했지만 무게도 무게이거니와 어떤 유튜버가 정상에서 바람이 심하게 부는 가운데 밥을 먹는 영상을 본 게 생각나서 바람을 막아주는 대피소에서 라면을 먹었다.
엄청 큰 보온병에 4인 가족용 라면 물을 가져온 등산객,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오르는 부모님 등 을 한 명도 대단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주황색 감귤모자를 쓰고 우리와 비슷한 페이스로 올라가는 8살 어린 친구가 있었는데 징징대면서도 엄마를 따라 올라오는 게 기특했다. 8살 아이도 한라산을 오르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무엇인가. 라면을 먹고 심기일전하여 다시 등산길에 올랐다. 따뜻한 라면물로 속을 데우고 에너지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눈 계단을 다시 오르려니 아찔했다. 여차저차 올라 정상을 코앞에 남겨두고는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눈으로 뒤덮인 경사면에 굴러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구간을 만나 쫄보의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발을 내디뎠다. 아이젠 덕분에 걱정 없이 등산했지 아니었으면 절대 정상까지 가지 못했을 것이다.
정상에 도착하니 등반인증서를 위해 백록담 인증샷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벌써 진을 치고 있었다. 올라간 김에 인증서를 받아야 하니 바로 줄을 섰다. 정상에 도달한 기쁨도 잠시, 바람 부는 정상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체온이 점점 낮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줄 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등산객이라면 한문으로 쓰인 백록담 표식에서 사진을 찍는 것보다 한글로 한라산백록담이라고 쓰인 나무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방법이다. 약 30분가량을 기다려 백록담 인증샷을 찍고 빠르게 하산했다. 하산할 때는 남자친구의 컨디션도 나아져서 등산할 때보다 수월하게 내려왔다. 생각보다 아직은 젊은가 보다.
등산 전에 호기롭게 "빨리 내려오면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던 남자친구는 편의점 죽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역시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죽을 먹는 그를 보며 그가 크게 아프지 않아서 너무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등산 내내 90% 충전된 배터리 같았던 나는 호텔방에 도착해서 탱탱이 김치찌개(호텔 룸서비스로 흑돼지 김치찌개를 시켜 먹었는데 얼마나 자극적이었는지 다음날 얼굴과 손가락이 탱탱볼 같이 부어서 탱탱이 김치찌개라고 남자친구가 명명했다)를 먹고 방전됐다. 하늘이 도왔는지 둘 다 다음날 컨디션이 나아져서 3만 보 가까이 또 걸었다. 2023년 새해를 맞기 전, 힘든 산행을 함께한 사이가 된 만큼 앞으로도 서로 힘이 들 때 옆에서 든든하게 지탱해 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기원해 본다.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함께 겪고 같이 나누며 함께 나이 드는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