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갈수록 잘하는 어른이 돼야지
아빠는 지금 내 나이(서른)보다도 젊었을 때, 돈이 없어서 15일 동안 삼시 세끼를 라면만 먹으며 굶주림을 이겨내셨다고 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아빠는 오 형제 중 제일가는 장난꾸러기이자 똑똑한 아들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돈이 없어 대학에 못 보내준다는 할아버지의 벼락같은 선언에 바로 공부를 포기했다는 아빠. 가슴 아프게도 그는 공부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착실한 학생이었다. 아빠가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여유로운 집에서 태어났다면 학생 때 걱정 없이 공부하고 대학생활도 즐기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성공하셨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린 나이에 군 복무를 마친 아빠는 할아버지를 따라 농사일을 2년 동안 했다. 여러 차례 손익을 계산해 보며 농사로 돈을 버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한 아빠는 진로 소주 공장에 취업했다. 무거운 소주 박스를 들어 올리고 내리는 일을 하며 자신이 꿈꿨던 미래와는 다른 현실을 견뎠다. 그러다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는데 타 지역에서 집을 구할 돈이 없어서 무작정 상경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친구 집에 얹혀사셨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한 와중에 친구분이 잠시 고향으로 내려가야 하는 시기가 있었고 텅 빈 집에서 아빠는 15일 동안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아빠의 말을 빌리자면, 라면을 먹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온몸에서 밀가루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고 한다. 꽃다운 나이에 인생의 갈피를 잃고 고뇌하던 그의 차가운 젊은 날을 상상하면 내 심장까지 얼어붙는 기분이다.
친 조부모님께서는 셋째 아들에게 넉넉한 돈을 물려주실 수 없었지만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할 줄 아는 투지와 끈기를 물려주셨다. 덕분에 아빠는 지금까지도 라면을 맛있게 드신다. 부모님 세대인 5060 세대가 으레 그러하듯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성실하게 일해서 자수성가한 아빠께 라면의 역한 밀가루 냄새가 트라우마로 남지 않고 딸들에게 들려줄 무용담으로 남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