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통해 더 단단해지다
스물아홉 봄이었다. 상상도 못 했던 불안감을 겪었던 시기. 불안이라는 감정이 극도로 심해져 가슴 두근거림을 동반하고 집중력까지 저하돼 일을 원만히 처리할 수 없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던 회색빛 나날의 연속이었다. 어렸을 때 키가 컸던 나는 큰 어려움 없이 학교 생활에 적응했다. 공부도 항상 중위권 이상은 유지했기에 누군가에게 얕잡아 보이거나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었다. 가끔 친구들과 갈등 상황에 놓이긴 했지만 성장기에 겪는 단편적인 에피소드 같은 일이었을 뿐 학교 가기 싫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큰 어려움 없이 28년을 살았다.
그러다 회사에서 인생 최대의 적수를 만났다. 그녀는 같은 회사에 재직하는 남편에게 "멍청해서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한다"라는 가스라이팅을 아무 죄책감 없이 시전 하는 안하무인이었다. 팀원이 주어진 일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장보다 먼저 퇴근하는 게 아니꼽다 말하고 신규입사자 면접에 들어가기 전에 고객사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면접자에게 풀고 오겠다는 하찮은 속내를 부끄럼없이 내뱉는 모자란 인간이었다. 그때 알았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겠다는 것을.
어렵사리 재취업한 회사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피해야 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버텼다. 월급을 위해 버티는 동안 심리적 불안감은 증폭됐고 자신감까지 결여돼서 고장 난 인간이 됐다. 바보같이 돈보다 더 중요했던 정신건강을 챙기지 못했다. 퇴근길에 여러 차례 울기를 반복하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퇴사했다.
다행히 단기간 내에 재취업에 성공하고 본받을 점이 많은 동료들과 지내며 불안감을 극복해서 더 강인한 사람이 됐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앞으로 다시 불안을 마주한다면 정면돌파하고자 하는 용기와 강한 의지도 생겼다. 말 못 하는 짐승보다도 못한 미성숙한 인간 하나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됐을 풍파를 겪었지만 그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재정립하고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