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도 좋은 게 있다
갓 스무 살이 되던 해, 엄마는 딸에게 커피를 권했다. "이제 어른이 됐으니까 아메리카노 마시는 거야. 시럽 들어간 거 먹으면 살찌니까 아메리카노에 익숙해져 봐" 엄마가 처음으로 사준 아메리카노는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맛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주한 나의 반응은 "엄마, 이걸 돈 주고 왜 사 먹어요?"였다.
첫인상과는 다르게 커피를 사랑하게 된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씁쓸하지만 깔끔한 그 맛에 언제부터 매료됐는지 모르겠다. 거의 하루에 한 잔씩 마셨으니 5,000원짜리 커피를 10년 내내 매일 마셨다고 가정하면 18,250,000원을 쓴 셈이다. 남들보다 잘 살려면 커피 값도 아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커피에 쓰는 돈까지 아껴가며 각박하게 살 수 없다. 가보고 싶었던 카페를 찾아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도달한 그곳에서 향도 좋고 맛도 좋은 커피 한 잔을 마주하게 되면 행복감은 극으로 치닫는다. 주 5일 동안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습관처럼 마시는 저렴한 대용량 커피는 잠시 잊고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 곱게 갈린 원두 향을 큰 숨으로 들이마신 후, 시간에 쫓기지 않은 채 여유롭게 내린 핸드드립 커피의 첫 모금을 삼킬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글을 쓰다 보니 평범한 커피중독자라고 생각했던 내가 커피 한 잔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첫인상과는 별개임을.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10년 이상 함께할 수 있는 것임을. 진정 좋아하는 것에 쓰는 시간과 돈은 남들이 뭐라고 해도 아깝지 않음을. 아무리 오랜 시간 함께해도 질리지 않는 것이 세상에 존재함을. 맛과 향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는 깊고 넓은 시야를 커피 덕에 갖게 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도 커피와 평생을 함께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