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색
넷플릭스의 한 시리즈에서 색약인 인물이 나온다.
근데 그게 조금은 과장 된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신호등의 극명한 차이까지 구별 못하진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랬다면 평택 위로 1톤 트럭을 제일 잘 모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기적이겠지.
물론,
색약을 가진 사람마다 보이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나의 색약은 어떠했더라.
풍경화를 그릴 때 하늘을 분홍색으로 칠하게 한다거나,
사람 얼굴을 초록색으로 칠하게 한다거나,
가끔씩 아빠 칫솔과 내 칫솔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러고보니 어쩌면...
화가를 꿈꿨던 어린 시절 나에겐 신호등을 구별 못하는 것이
차라리 덜 치명적이었을지 모른다.
심혈을 기울여 그린 나의 스케치 위에,
내가 알지 못하는 색을 칠한다는 건 언제나 공포였다.
또한 용기를 내서 칠한 색을 보고
난감해 하는 주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은...
그 반응을 보고도 모른 척,
일부러 그 색을 선택한 척하는 것은 큰 스트레스였다.
색은 나에게 늘 스트레스였다.
때문에 색을 설명하는 나의 방식은 늘 두루뭉술했다.
푸른색, 누런색, 벌건 색, 노을 색, 빛바랜 종이 색, 구름 색, 저기 저거 같은 색.
그런 표현은 정답도 아니고 오답도 아니기 때문에 틀릴 일도 없었고
느낌만 통하면 되는 나에게는 설명이 되는 방식이었다.
이제 더 이상 화가가 꿈이 아닌 내게,
색약은 그저 하나의 특이한 감각으로만 남게 되었고
영화감독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주었다.
왠지 더 골치 아픈 것으로 바뀐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화가에서 만화가로, 만화가에서 애니메이터로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꿈이 점점 바뀌어가던 여정에서 색약은 항상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내 감각 속에서 꿈틀거렸다.
나는 색약이 마치 하나의 지표라도 되는 양,
꿈을 꾸고 도전하다가 색약으로 인해 멈출 수밖에 없게 되면
거기 가만히 서서 나아갈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았다.
치료도, 훈련도 할 수 없는 색약이
갈 수 있겠다 하면 가고, 이건 안될 거 같은데 하면 돌아갔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영화감독이라는 꿈에 다다랐다.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기도 했고
시나리오를 쓰는 지금도 그림은 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색약을 원망하거나 저주 한 적은 없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을 손으로 직접 빚어 만드신 분은 실수가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림이라는 달란트와 색약을 동시에 넣어 만드신 이유가 있겠지.
실수는 아니었겠지.
그러니 색약은 분명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맞을 것이다.
색약은 치료도, 훈련도 할 수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사람에게는 '눈치'라는 것이 있다.
30년을 넘게 색약으로 사니, 이제 뭔가 느낌이 온다. 느낌이.
이게 아마 분명 하늘색이 아닐까... 하는 느낌 말이다.
아님 말고.
슈퍼맨 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