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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국 Mar 05. 2023

제게 재능이 있는 것이 맞습니까

몰두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을 즐기는 것'이 가장 큰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일까.

매일 눈을 뜨면 해야 할 일들이 발치에 쏟아져 내린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니.

하루하루,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즐거울 것만 같다.


무언가에 대해 몰두하는 것.

몰두.

내가 처음 '몰두'를 경험하는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학교에서 소풍 간 사진을 인화해서 나눠줬는데,

그 당시 친구들이 너무 좋았어서

그 단체사진을 연습장에 꼼꼼히 베껴 그렸다.


친하건 친하지 않건,

얼굴 하나하나 특징을 살려서 그려냈다.

마지막 친구까지 다 그린 후에 고개를 들어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에 대해 몰두한 경험이었다.


그때 그 그림을 어머니께 보여드리며 자랑했는데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그림을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때 책상 앞에 앉아있던 두 시간이라는 시간과

엉망이지만 끝까지 그려낸 그 그림이...

훗날,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신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다.


그 후 살면서 몰두에 대한 경험은

영화 VFX일을 하며,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를 찍으며 느낄 수 있었다.

한바탕 그것에 몰두하다가 정신을 차리면

명확하게 내가 어떤 것에 특출난지 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이런 일을 좋아하는구나, 이런 일을 하고 싶구나 하는 것은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알게 된 슬픈 사실 한 가지.

초등학생 때 몰두 하면서 느낀 그 기쁨과 지금의 기쁨은 조금 다른 기쁨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의 기쁨에는 근심이 따라붙었다.

"역시 이런 것이 적성에 맞는구나"라는 문장 뒤에

"그런데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문장이 어느샌가 따라붙은 것이다.


그래도 먼저 떠오른 앞문장에는 성취감과 기쁨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여전히 시나리오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머릿속에 떠오른 앞문장으로 기뻐하며 웃는다.

그러다 뒤이어 떠오르는 뒷문장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공책을 덮고

내일 있을 출근을 준비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뒷문장을 소화해 내지는 못했다.

매일 , 들뜬 나를 다시 잠재우는 갑고 근심 가득한 뒷문장.

그럼에도 힘들거나 지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행히도

명확하게

늘 변함없이

쓰고 그릴 때마다

내게는 앞문장이 떠오른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


나는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을 즐기는 것'이 가장 큰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몰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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