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살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당연히 쉬운 일이라 생각하진 않았지.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세상에 한발 내딛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뛰어도 다녔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게 힘들어졌다.
어느새 감독라는 꿈을 안고서는
두 발로 간신히 서있는 것조차 벅찰 나이가 됐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나도 움직여야 했다.
달력이 나를 30이라 부르는데 마냥 19살처럼 고집부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영화감독이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싶지는 않았다.
여전히 내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거꾸로 서서 살아간다.
낮엔 트럭을 운전해서 돈을 벌고
밤에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물구나무를 서서 살아가니,
덕분에 몇 발자국 움직이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비록 내 세상은 거꾸로 뒤집혔지만
그래도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곳에 서 있을 수 있다.
언젠간
옷을 똑바로 갖춰 입고 세상에 한 발 내딛어야지.
두 팔이 아닌, 두 다리로.
거꾸로 살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