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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국 Mar 06. 2023

꼭 우산이 없는 날 비가 오더라

운수 좋은 날



그런 시기가 있다.

힘든 순간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례로 내 앞에 등장하며 뺨을 한 대씩 때리고 가는 시기가.


잠잠하다 싶더라니 

어디숨어들 있다가 이렇게   한시에 나오게 됐을까.

물밀듯 밀고 들어오는 힘든 순간들을 하나하나 온몸으로 받아내다 보면...

어느새 다시 잠잠해 지곤 하는데, 그것은 대부분 내가 바뀌어서였다.

힘든 순간들이 내 생각과 마음과 환경을 조금씩 바꿔 놓았다.

그런 일들이 이제 일상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느껴지도록.


일본에서 다니던 대학을 자퇴한 후,

외롭고 지친 마음을 달랠 새도 없이

곧바로 군대에 갔다.

부디 그동안의 객지 생활을 조금은 위로할 수 있게 끔,

부산의 부모님 집과 가까운 곳에 자대 배치를 받기를 바랐다.

힘든 순간들의 쉼표가 여기서, 지금 이 타이밍에 찍히길 바랐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인터넷 편지병이라는 보직을 받은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며 나는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에 있는 GOP로 향했다. 기관총 사수라는 보직을 받고서.


면회를 오기도, 휴가를 나가기도 쉽지 않은 군생활 덕분에

일본 생활을 포함한 4년 정도를 외롭게 보냈다.

19살까지 왁자지껄 떠들며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던 삶은

4년 동안 쏟아지던 쓸쓸함과 외로움 덕분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


더 이상 사람들을 만나 해가 지도록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생각한 것을 쓰는 것이 즐거움의 전부가 됐다.

4년 동안 나를 괴롭히던 외로움은

그것을 즐기고 선호하는 사람으로 나를 바꿔  것이다.

이제 혼자가 일상이   있도록.


우산이 없는 날 내린 비처럼,

그 예기치 않은 힘든 날들은 나를 흠뻑 적셨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더 이상 가릴 곳도, 가릴 필요도 없는 몸을 가지고

그 날씨를 맘껏 즐기게 만들었다.

그 순간만큼 나는.

마치  오는 날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뛰쳐나온 사람 같았을 것이다.


아직도 여전히

우산이 없는 나는 그 비를 즐기고 있다.

오늘도 퇴근 후에 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 시간을 가장 즐거워한다.

잠시 뒤, 컴퓨터를 끄고 이 방을 나가

나를 기다리며 티브이를 보고 있을 아내와 조용히 나눌 대화를 기대하곤 한다.


4년 동안 내리던 나만의 비가 나를 많이 바꿔 놓았다.


운수 좋은 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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