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붉은색의 꽃다발을 선물 받았습니다.
아침에 화원을 나왔을 꽃들은 뜨거운 햇빛을 한참 쐬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긴 여정에 지쳤을까요. 꽃을 화병에 꽂을 즈음엔 이미 시들한 상태였습니다. 줄기 손질을 빠르게 하고 차가운 물을 가득 담은 화병에 넣어보지만, 조금씩 서서히 생기를 잃은 꽃을 되살리기엔 너무 늦었나 봅니다. 꽃에 손길이 살짝 닿자, 노란 수술을 중심으로 얇은 바늘처럼 겹겹이 쌓여있던 검붉은 꽃의 꽃잎이 바닥을 향해 우수수 떨어집니다. 한 겹이 아니라 꽃잎이 모조리 흩어지는 바람에, 저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한참 바라봤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떨어진 꽃잎 역시 다시 붙일 수 없죠.
꽃잎을 주워 담으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떠올려봅니다.
신뢰를 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럴까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순간, 두 사람을 단단히 묶어주던, 그들이 촘촘히 쌓은 이야기가 단숨에 여기저기로 흩어지죠.
제때 신선한 물을 공급하지 못했기에, 저는 꽃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주는 망각의 힘과 메마르고 건조한 사막에서도 움트는 싹의 강인함을 곱씹어봅니다.
떨어진 꽃잎은 다시 붙일 수 없지만,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이 지닌 힘은 거칠고 질긴 껍질을 지닌 씨앗에도 싹을 움트게 만드니까요.
저는 아무래도 사랑을 더 믿고 싶은 사람인가 봅니다. 새로운 꽃을 기다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