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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주영 Oct 11. 2023

기록에 의미를 더해

요새 저는 땅을 보고 걷습니다.

어지러운 전선이 보기 싫은 건지, 맑은 하늘을 보면 눈이 시려 눈물이 흐를까, 누군가의 눈을 마주하기가 어려워서 혹은 그냥 사람의 얼굴을 보기 힘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읽었던 책은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인데요.

카뮈의 책은 주말 낮에 도서관으로 향하며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낭독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지나가는 분들은 저를 조금 이상하게 봤을까요. 걸으며 휘릭휘릭 펼쳤던 페이지에서 발견한 마음에 든 구절입니다.


“알제에 살던 시절, 겨울이 되면 나는 늘 참고 기다렸다. 서늘하고 순결한 2월의 어느 날, 레 콩쉴 계곡의 아몬드나무들이 단 하룻밤 만에 하얀 꽃으로 뒤덮이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나는 눈꽃같이 연약한 그 꽃들이 그 모든 빗줄기와 바닷바람을 견디는 것에 경탄하곤 했다. 꽃들은 매년 열매를 맺을 준비에 딱 필요한 만큼씩 버텨냈다.”


앨리스 먼로의 책은 카페에서 만난 지인의 책을 잠깐 빌려 읽었습니다. 책에 마음에 든 구절이 표시되어 있어서, 그 부분만 빠르게 읽었는데요. 유독 눈을 잡아끄는 문장이었어요.


“그 꿈은 밴쿠버 날씨와 흡사했다. 침울한 그리움. 비에 젖은 꿈결 같은 슬픔. 심장 주위를 서성이는 무거움.”


두 책을 동시에 읽지는 않았지만, 두 문장이 왠지 모를 위안으로 남았습니다.

딱 필요한 만큼만, 버틸 수 있는 만큼만 비통한 슬픔이 다가온다면 좋을 텐데요.



요즘 저는 소통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회사에선 감성적인 글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기회만 되면(?) 혹은 어디선가 틈틈이 제 마음이 실린 글이 뾰죽 고개를 내밀곤 합니다. 본성이란 어쩔 수 없는 건가, 머리를 갸웃거리면서도 싫지만은 않아요. 어쩌면 그게 저라는 사람일테니까요.


나를 이해받고 싶은 욕심과 타인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하는 날들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소통에는 솔직함과 곧은 용기가 필수인 것 같아요.


한동안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사실 지금도 그렇긴 합니다만, 기록에 의미를 더해보려고요.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나를, 이 순간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져서요.


너무 빨리 돌아온 것 같아, 민망하지만 이렇게 인사해봅니다.


무탈하셨나요.



그리웠어요.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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