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지지 않기 위한 플레이"로의 전환 대화법
이전 챕터에서 우리는 '이 길이 아님'을 깨닫고 스스로 방향을 트는 '전략적 피봇(Pivot)'을 선언했다. 하지만 격변은 때로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2008년의 금융 위기나 2020년의 팬데믹처럼,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대한 쓰나미로 밀려온다. 자금 시장이 얼어붙고, 시장 전체가 침체에 빠지는 순간이다. 이때 창업가는 조직 전체의 운영체제를 '성장(Growth)'에서 '생존(Survival)'으로, '평화시(Peacetime)'에서 '전시(Wartime)'로 전환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투자사로부터 '수익성 집중' 경고 메일이 연달아 도착한다. (마치 2008년 세쿼이아가 보낸 'R.I.P. Good Times' 메모처럼). 하지만 우리 팀은 여전히 금리 인상 이전, 혹은 팬데믹 이전의 '성장'을 위한 다음 분기 예산안을 짜고 있다. 당신은 전사 회의에서 "여러분, 파티는 끝났습니다. 이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합니다"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장'을 외쳐왔던 당신의 목소리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창업가의 본질은 '비전'과 '희망'을 파는 사람이다. 팀원들에게 '생존'이나 '효율성' 같은 방어적인 단어를 꺼내는 것은, 리더로서 패배를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건 일시적인 현상일 거야", "우리 팀의 사기를 꺾을 순 없어"라고 생각하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인정하는 대화를 미루고 싶은 것은 팀을 보호하려는 리더의 본능이다.
하지만 그 침묵과 망설임은 조직을 가장 빠른 죽음으로 이끈다. 당신이 '희망'을 말하는 동안, 회사는 '평화시'의 속도로 현금을 소진(Burn)하고 있다. 이 대화는 선택이 아니다. 이것은 시장이라는 '전쟁터'의 규칙이 바뀌었음을 선언하는 '전시 사령관'의 첫 번째 명령이다. 당신이 이 대화를 회피할수록, 회사가 생존을 위해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시간(Runway)'만 의미 없이 타들어 간다.
"팀의 사기를 지켜야 한다"는 명목 아래, 창업가는 시장의 위험 신호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축소한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이건 월스트리트만의 문제'라고 축소하거나, 2020년 초 '이건 두 달이면 끝날 독감'이라고 애써 외면했던 리더들처럼 말이다. "괜찮아질 겁니다", "우리는 다릅니다"와 같은 '근거 없는 낙관론'을 퍼뜨린다. 하지만 팀원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시장의 찬바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창업가의 이 '가짜 낙관론'은 팀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리더가 현실 감각을 잃었다"는 가장 치명적인 불신을 심어준다.
이 고통스러운 결정을 피하기 위해 창업가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한 번의 깊은 삭감 대신 '조금씩 여러 번' 예산을 줄이고 인력을 조정하는 것이다. "일단 이번 달엔 마케팅비 10%만 줄여보고..." 이 방식은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런웨이'를 확보하지도 못하면서, 조직 전체를 만성적인 불안감과 공포에 시달리게 한다. 명확한 방향 전환 없이, 조직은 서서히 피를 흘리다 죽어간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치르는 가장 값비싼 대가다. 진짜 비용은 줄줄 새는 현금이 아니다. 이 '가짜 낙관론'과 '모호한 긴축' 속에서 조직의 'A급 기준' 자체가 붕괴된다는 사실이다. A급 인재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결단을 미루는 리더를 존경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존'이라는 명확한 목표 아래 고통을 분담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리더의 '희망 고문' 속에서 서서히 가라앉는 배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결국, 가장 먼저 탈출하는 것은 언제나 최고의 인재들이고, 조직에 남는 것은 '현실 안주'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당신은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결단을 미루다가, 이 침체기를 기회로 만들 유일한 자산인 '탤런트 밀도(Talent Density)'를 잃게 된다.
이 대화의 목표는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기대치를 재설정(Reset Expectations)'하는 것이다. 창업가는 가장 먼저 'brutal facts(가혹한 현실)'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승리'의 정의를 '시장 점유율'에서 '현금 흐름'으로, '성장 속도'에서 '생존'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는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플레이'라는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라는 명확한 프레임을 설계해야 한다.
시장의 변화를 숨기거나 축소하지 않고, 가장 가혹한 현실을 투명하게 공유한다. "2019년의 플레이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자금 시장이 얼어붙었고, '성장'에 돈을 쓰던 시대는 끝났다."
승리의 목표를 '성장'에서 '생존'과 '효율성'으로 공식적으로 전환한다. "앞으로 18개월간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런웨이'를 확보하고 '수익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기는 새로운 방식이다."
새로운 목표에 맞춘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즉시 선언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오늘부로 채용을 동결하고, X 예산을 50% 삭감하며, 오직 수익성이 검증된 Y 제품에만 집중한다."
회사가 생존할 수 있는 시간. 침체기에는 이 지표가 모든 KPI 중의 왕(King)이 된다. 당신의 대화는 모든 팀원이 이 '시간'을 인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드는 것. 과거에는 '성장'이 A급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효율성'이 새로운 A급 기준임을 선언해야 한다.
평화시(Peacetime)의 '비전 제시형' 리더가 아닌, 생존을 위해 빠르고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명령형' 리더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당신의 대화도 그만큼 단호해져야 한다.#현실직시 (Brutal Facts): 근거 없는 낙관론이 아닌, 가혹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공유하는 태도. 이것이 신뢰를 잃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 피해야 할 표현 (평화시의 언어) :
- "조금 어렵지만... 우리는 여전히 3배 성장을 목표로 합니다." (혼란스러운 메시지)
- "다 같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해봅시다." (구체적인 계획 없는 공허한 구호)
- "이건 일시적일 겁니다. 곧 괜찮아질 거예요." (가짜 낙관론)
✓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전시의 언어) :
+ (현실 직시) "오늘부로 '성장'이라는 우리의 북극성 지표는 '생존'으로 바뀝니다. 2008년, 그리고 2020년이 그랬듯, 시장이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승리 재정의) "우리의 새로운 경쟁자는 A사가 아니라, 우리의 '현금 소진율'입니다. 이 적을 이기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승리 조건입니다."
+ (새로운 행동 강령) "따라서, 수익성이 불확실한 모든 신규 프로젝트를 '즉시' 중단합니다. 이는 고통스럽지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길입니다."
2008년 10월,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금융 위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전설적인 벤처캐피털 세쿼이아는 포트폴리오 창업가들을 긴급 소집했다. 그들은 "R.I.P. Good Times (좋았던 시절이여, 편히 잠드소서)"라는 제목의, 묘비 그림이 그려진 충격적인 56페이지 슬라이드를 공유했다.
그들은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어설픈 위로나 '가짜 낙관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가혹한 현실(Brutal Facts)'을 직시하라고 강요했다. 그들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이것은 단순한 불황이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한 '리셋(Reset)'입니다. 자본은 비싸지고 생존은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들은 창업가들에게 '성장'이라는 과거의 플레이북을 버리고 즉시 '전시(Wartime)' 모드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모든 비용을 삭감하십시오.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것' 외에는 모두 제거하십시오. 현금이 왕입니다. 런웨이를 무슨 수를 써서든 확보하십시오."
이 대화는 창업가들에게 고통스러운 진실을 전달했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성장'이라는 부담을 내려놓고 '생존' 에만 집중할 수 있는 명확한 '행동 강령'과 '심리적 허락'을 주었다.
이 패턴은 정확히 12년 뒤인 2020년 3월, 팬데믹 초기에 그들이 '혹독한 시련의 순간(Crucible Moment)'이라는 제목의 메모를 공유했을 때도 반복되었다. 그들은 "이것은 블랙 스완(Black Swan)이며, V자 반등을 기대하지 말라"라고 경고하며, 창업가들이 수익, 고객, 공급망, 채용 등 비즈니스의 모든 가정을 즉시 재검토하고 '생존'을 위한 비상 계획을 세울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세쿼이아의 대화 설계는 '가짜 낙관론'이 아닌 '명확한 현실 인식'만이 조직을 생존으로 이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사례다.
"리더의 첫 번째 의무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명명하는 것이다."
침체기에 '희망'을 말하는 리더는 팀을 죽음으로 이끌지만, '현실'을 말하는 리더는 팀에게 생존할 기회를 준다.
[ ] 나는 시장의 가혹한 현실(2008년, 2020년과 같은)을 팀에게 투명하게 공유했는가?
[ ] 나는 회사의 '승리 조건'을 '성장'에서 '생존'과 '효율성'으로 재정의했는가?
[ ] 새로운 목표(예: Tearnway 확보)에 맞춘 구체적인 '행동 계획'(예산 삭감, 채용 동결 등)을 제시했는가?
[ ] 이 고통스러운 변화가 왜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함께 제시했는가?
[ ] 나(창업가)부터 사치성 경비를 줄이는 등, 이 변화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가?
✓ (해외 도서) 벤 호로위츠(Ben Horowitz), 『하드씽 (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s)』: '평화시의 CEO'와 '전시의 CEO'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정의한 최고의 책.
✓ (해외 아티클) Sequoia Capital, "R.I.P. Good Times" / "Crucible Moment": 시장 침체기에 세쿼이아가 창업가들에게 보낸 전설적인 프레젠테이션 자료.
✓ (해외 아티클) NFX, "The Psychology of Founders Who Win in Downturns": 침체기에 승리하는 창업가들의 심리적 특성을 분석한 글.
시장의 격변(22장)과 피봇(21장) 속에서 회사의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이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창업가는 매일 수십 번의 '선택'에 직면한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선택 중 하나는 '하지 않을 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다음 챕터에서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대화: 집중력을 지키는 법"을 통해, 새로운 전략을 지키고 회사의 가장 귀중한 자원인 '집중력'을 보호하는 대화법을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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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brunch.co.kr/brunchbook/leader-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