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온통 별 잔치다. 새끼손톱만한 개별꽃들이 숲 전반에 걸쳐 하얗고 작은 꽃들을 낮게 낮게 피웠다. 별꽃들이 퍼지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야생의 별꽃들이 온통 숲에 그득하다.
물가 근처의 길섶에는 긴병꽃풀이 청보라의 작은 꽃으로 지나는 사람의 눈을 가득 채운다. 호젓한 양지엔 둥굴레가 옅은 옥색 귀걸이의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고 반그늘진 산자락엔 어김없이 연보랏빛 현호색이 낮게 깔려있다. 해가 강한 곳엔 거의 흰색에 가까운 색을 띤다. 머리를 들고 조금 멀리 산등성이를 바라보면 언뜻언뜻 보랏빛이 보인다. 작은 각시붓꽃이 사람들의 손을 탈까 조심스러운 듯 등산로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져 피어 있다. 집 마당에 피는 붓꽃과 비슷한 모양과 색이지만 꽃의 크기와 줄기의 길이가 절반 정도로 작다. 붓꽃을 발견하는 순간 여기저기 흩어진 채 피어 있는 붓꽃들이 발견된다.
병꽃나무는 휘듯이 뻗는 줄기들이 얽힌 제법 큰 나무이다. 손가락 크기 정도의 작은 나리꽃 모양의 꽃이 피었는데 햇살의 양에 따라 크림색으로 분홍빛으로 혹은 좀 더 진한 주홍색으로 꽃들을 달고 있다. 어떤 가지는 꽃의 무게로 가지가 휘었다. 병꽃나무는 욕심껏 자손을 보려나보다. 병꽃나무 아래 햇살을 가득 받고 괭이눈들이 칵테일에 꽂는 우산 모양으로 그득하다. 이름이 왜 쥐오줌풀꽃일까. 뿌리의 향이 강해 담배에 첨가하는 향으로 쓰인다고 한다. 토끼풀처럼 무리져 가느다란 줄기 끝에 사랑스러운 꽃을 피웠다.
숲의 꽃들
아토피, 습진과 같이 피부질환에 탁월한 애기똥풀은 너무 흔해 무시당하지만 막 피기 시작하는 애기똥풀의 꽃은 참으로 예쁘고 사랑스럽다. 줄기와 잎을 말린 가루는 벌레 물린 데 사용하기도 한다는데 너무 흔하다 보니 그저 잡풀로 치부된다. 숲에서 무언가에 물렸다면 애기똥풀의 잎을 떼어 노란즙을 바르면 된다. 별꽃인가 했더니 봄맞이꽃이다. 별꽃은 잎이 한 덩어리에서 5개로 갈라지고 봄맞이 꽃은 낱장의 잎으로 되어 있다. 둘 다 흰색으로 작아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르다.
분명 뿌리는 하나로 시작하는 모습인데 엉킨 나무기둥이 두 개로 갈라졌다. 산벚꽃과 으름나무가 서로의 기둥을 두어 번 휘감고 엉켜있다. 각각의 껍질을 보니 확연히 다르다. 벚꽃나무는 껍질에 작은 입술 같은 무늬가 그득하고 으름나무는 맨들 거리는 느낌의 껍질이다. 으름나무의 꽃이 덩굴을 이루며 매달려 있는데 으름꽃은 처음 본다. 오늘의 수확이다. 청개구리 발가락처럼 다섯 개로 벌어진 가지마다 잎이 나 있고 잎의 색은 맑은 연둣빛이다. 꽃은 우아하며 비밀스럽다. 내 손이 이들의 색을 따라가지 못해 서운하다.
으름나무 꽃
으름 못지않게 올봄에 처음 발견한 꽃이 또 있다. 바로 구슬봉이다. 잡풀 더미 속에서 범상치 않은 빛이 있어 덤불을 헤쳐보니 꽃이다. 처음엔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 근처에 난다는 그 용담인 줄 알았다. 에이, 백두산이 아닌데....가슴이 두근거린다. 청색을 품은 보랏빛이 고고했다. 남편이 찾아보더니 용담과에 속하는 구슬봉이라고 한다. 한참을 꽃 앞에 서서 바라보았다. 이 숲에 구슬봉이가 있을 줄이야! 더러 자생하고 있었겠지만 귀한 모습때문에 사람들 손을 탔겠지. 그래서 개체수가 적은 거라며 남편이 혀를 찬다. 벌이나 나비에게만 그 모습이 드러나기를 바라면서 덤불을 다시 슬쩍 덮어주고 돌아섰다.
찾아보니 구슬봉이라 한다
때죽나무엔 때 아닌 흰눈이 덮여있고 전나무 숲에는 양치식물들이 마치 우산을 뒤집어 놓은 듯 군락을 지어 자라고 있다. 영화 쥐라기 공원에 나오는 거대한 나무 모양을 닮은 이 양치식물들은 크게는 1m 정도까지 자라는데 무리 진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듯하다. 지난여름 나는 이 전나무 숲에 앉아 양치식물을 바라보며 지구의 중심으로 들어간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언젠가 전나무 숲의 양치식물을 그려봐야지.
4월의 숲에선 달콤한 향이 난다. 흰색과 보랏빛, 노랑과 분홍 또 다른 보랏빛과 연초록의 향연으로 풍요롭다. 숲은 아무일도 없는 듯 무심한데 제비나비만이 홀로 분주하다.
제비나비
나는 가능한 조용히 이 숲에서 깊고 다정하며 충만하고 감사한 숨을 길게 길게 내쉰다. 오늘과 같은 숲은 오늘 뿐이니 숲의 초록과 향기, 투명한 햇살과 달콤한 바람을 오래 오래 만끽한다. 햇살이 이파리들을 투명하게 관통하며 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