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담그기

색연필 그림일기

by Eli

"오늘 햇살이 좋으니 고추장 담자~

내가 엿기름 빻아다 담가놨어"


한껏 명랑한 전화가 아침잠을 깨웠다.

엿기름을 물에 담가놓았다는 건 이미 고추장을 담그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에구, 어머니 급하시긴.

갈 때까지 그저 기다리시라고 신신당부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웬 과속 감시 카메라는 그리 많은지. 집에서 횡성까진 약 80분. 카메라 피해 1시간 만에 달려 도착하니 어머니 태연히 커피 드시고 계신다.


어쩐 일로 기다리셨냐 물으니 이번 고추장은 나더러 직접 담가보라고 하신다. 그래야 나중에 - 이 나중이 무얼 의미하는지 우린 길게 얘기하지 않는다 - 나 혼자 담글 수 있다면서.


고추장을 담그려면 엿기름을 물에 불려 앙금을 내야 한다. 방앗간에서 빻아 온 엿기름을 면포 자루에 넣고 물에 불린 후 손으로 조물조물하여 앙금을 만든다. 그런 후 엿기름 푼 물에 찹쌀가루를 넣고 끓이는데 처음엔 찹쌀가루가 냄비 바닥에 쉽게 눌어붙으니 주걱으로 잘 저어주어야 한다. 그러다 엿기름에 의해 찹쌀가루가 삭으면서 말간 국물이 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땐 주걱으로 젓지 않아도 눌어붙지 않는다. 엿기름물이 손가락 하나 길이만큼 졸아들어 끈적끈적해지면 불을 끄고 식힌다.


"이 상태로 계속 끓이잖아? 그러면 그게 바로 물엿이 되는 거야.

식혜는 엿기름 가라 앉히고 위에 말간 물 있었지?

그걸 고슬밥에 붓고 따뜻하게 하룻밤 두면 식혜가 되고."


식은 엿기름에 집간장, 메주가루, 고춧가루, 소금, 물엿, 소주를 적당량 비율에 맞춰 넣고 나무주걱으로 잘 섞이게 저은 후 하룻밤 두었다가 항아리에 담는다. 주걱으로 젓는 이 과정이 힘이 든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 자신이 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였다. 소주를 왜 넣느냐 여쭈니 곰팡이가 잘 생기지 않는단다.


" 요즘 사람들은 짜게 안 먹잖아. 된장, 고추장이 옛날에 비해 엄청 싱거워졌어.

너부터 된장 짜다고 싫어하잖니. 근데 장이 싱거우면 곰팡이가 펴요.

그래서 소주를 부었더니 곰팡이가 잘 안 생기드라고. 저을 때 농도도 조절하고. "


동생에게 간을 보라고 했더니 짜다고 했다. 우리는 눈을 찡긋한 후 소금을 한 움큼 더 넣었다. 동생은 입맛이 싱거워 짜다고 해도 싱겁기 때문이다.


" 맛있을까? 소금 더 넣어야 할까요? "

" 아니야~ 됐어. 네가 담갔으니 엄청 맛있을 거야. "

" 과연 내가 담근 건가??"

" ㅎㅎㅎ 그럼~~ 네가 담근 거지. 나는 너랑 고추장 담근 게 너무 좋아. 행복하다. 후~후~"


앉았다 일어섰다 하시느라 힘드셨나보다. 호흡이 또 가빠지셨다. 내게 고추장 담그는 것을 알려주신 어머니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추장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신다. 그저 딸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순간 눈물이 핑 돈다. 괜히 강아지 조이를 부른다.

언젠가 고추장을 보면 또 어머니가 생각나겠다......


고추장 담그시는 어머니
keyword